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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주 Jun 08. 2021

냉기

내 아이가 따뜻함을 찾아 떠나기 전에..

겨울날 새벽의 차가운 공기는 등에 업혀 어디론가 이끌려 가는 나를 따스함을 찾아 업고 가는 사람의 등에 더욱더 바짝 달라붙게 했다. 뿌우연 새벽안개와 아직 동이 덜튼 탓도 있지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제대로 추적할 수 없을 정도로 잠이 덜 깨인 새벽녘의 나드리였다. 한참 동안 등에 업혀 그 흔들림에 익숙해질 때쯤 우리는 새벽 첫 아침에 문을 연 목욕탕에 도착을 했다. 아직 옷을 홀랑 벗기에는 탈의실의 냉기가 갓 피운 난로의 열기를 압도하고 있었다. 춥다고 바들바들 떠는 나의 옷을 벗긴 언니는 커다란 수건으로 나를 감싸 안았다.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자 탕 안의 뜨거운 수증기가 사람보다 먼저 나를 반긴다. 따스한 수증기에 감싸여 나온 건강한 체구의 엄마는 수건으로 감싸인 나를 받아 안고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새벽잠을 설친 것도,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신 것도, 엄마의 품에 안기자 다시 살포시 잠이 들 것만 같았다. 엄마는 커다란 수건에 싸인 나의 몸에 따뜻한 물을 조심스럽게 끼얹어 주셨다. 수건은 그 따뜻함을 나에게 좀 더 오래 간직해 주었다. 엄마품에서 크지 못하고 우유로 유모와 살아온 나는 평소에 말이 없고 가까이 안아주는 적이 없는 엄마의 냉정한 모습에 주변만을 돌며 살았었다. 그러나 새벽의 목욕탕 나들이는 엄마에게 가장 가까이 가는 날이었고 엄마의 냄새도 엄마의 미소도 확인할 수 있는 날이었다. 엄마는 따뜻한 물을 부어가며 손으로 소아마비로 혈액순환이 나빠 얼음장처럼 차가운 나의 왼쪽 다리가 따스해질 때까지 사랑스럽게 문질러 주었다. 참 행복했었다. 그 시간이 멈추고 지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 나는 항상 눈을 꼬옥 감고 있었다. 


평소 내뿜던 엄마의 냉기를 녹여낼 수 있던 그 기억 속의 따스함은 지금도 내가 살아가며 부딪치는 세상의 냉기를 녹여주는 에너지로 작용을 하고 있다. 해리 할로우 (Harry Harlow) 박사는 우유병이 설치된 철사로 만든 엄마 인형과 우유병은 없는 부드러운 융으로 만든 엄마 인형을 놓고 어린 원숭이를 풀어놓아 실험을 하였다. 배고픔을 채우는 동물의 기본 욕구 때문에 어린 원숭이는 우유병을 가진 쪽으로 선택하리라 생각했지만 어린 원숭이는 우유가 나오는 철사 엄마를 마다하고 융으로 덮인 부드러운 엄마 곁으로 갔다. 먹는 것에 대한 동물의 기본 욕구에도 불구하고 원숭이는 부드러운 엄마를 선택한 것이다. 유아교육에 중요한 시사점을 마련하는 연구였다.


냉정한 엄마들이 많이 있다. 일반적으로 타고난 기질이란 이유로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엄마 중에 이성적 판단을 앞세워 냉정한 경우도 있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엄마들이 자식을 향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냉기를 뿜게 된다. 기질적이라 해도 자식에게 필요한 변화를 해야 한다. 다행한 것은 타고난 기질의 기본까지 바꾸어 온갖 정을 매 순간 소상히 표현하는 사람으로 변화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성인의 이성적인 수준에 비춘 대화만을 고집하고 자녀를 비판할 것이 아니라 가끔 아이 수준에서 단순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또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엄마도 짧은 순간이 질 높은 따스함을 자녀에게 전해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엄마의 기분에 따라 유동적이고 산발적으로 아무 때나 표현하는 것보다 일관성 있게 특정한 때나 사건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관성은 자녀들에게 엄마의 반응을 예상할 수 있게 하고 그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일관성 있는 반응으로 자녀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안정감을 얻게 된다. 


성격적인 이유뿐 만 아니라 여의치 않게 집안 살림 외에 직장생활까지 해야 하는 바쁜 엄마들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냉정하게 변하게 된다. 집안에서뿐만 아니라 세상의 냉기를 인지하고 경험하게 되는 중고등학생이 되면 그들은 따뜻함을 찾아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엄마의 따뜻한 순간을 항상 기다리고 있는 자녀들을 위해 자신이 표현하고 있는 냉정함과 온화함의 정도를 점검해보자.


이글은 2001년 11월 23일 자 미주 중앙일보에 게제된 내용을 업데이트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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