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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냐? 나도 아프다

대신할 수 없는 제자의 가슴앓이

by 교주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거침없이 선택해 성공한 매우 잘 나가는 제자가 있다. 스스로 가시밭 길만 선택해 걷던 딸이 편하게 살기를 원하던 부모의 속을 애태웠는데 지금은 딸의 성공을 본인의 성과인양 뿌듯해한다. 제자는 어느 날 내가 유학하고 있던 대학교에 불쑥 나타나 힘든 석사과정을 마치고 귀국을 했다. 한국에서는 장애인을 돕는 일에 헌신하며 직장을 다니며 사회사업으로 학사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일을 하며 아무의 도움도 없이 논문을 쓰는 것이 벅차기도 했겠지만 아마 자신이 필요로 한 복지행정에 관한 지식을 터득한 것만으로도 아무 미련 없이 박사과정을 떠나 행정고시로 5급 사무관이 되는 길을 택했다. 나의 첫 제자 중의 한 명이기도 하지만 장애가 심한데도 불구하고 편한 길보다 자기가 원하는 길을 택하는 모습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내가 처음으로 부임했던 학교에는 소아마비 학생과 뇌성마비 학생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두 집단 모두 지체를 맘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은 같지만 뇌성마비의 경우에는 남이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의 언어장애가 동반하는 사례가 있다. 중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언어장애가 있어도 친구들이 가끔 놀리는 경우가 있더라고 같이 웃고 서로 무시하기도 하며 그리 큰 소외감은 없이 지냈었다. 나는 잠깐 언어치료사로 일할 때 다양한 의사소통 장애에 대한 지식이 있어 언어장애가 있는 그 제자의 말을 다른 누구보다도 유난히 잘 알아듣고 무슨 말인지 되물을 필요 없이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자신의 주장을 확실하게 하는 그 제자를 나는 "쌍칼"이라고 불렀었다. 그러며 날이 무뎌지지 않게 늘 관리를 잘하라고 하며 서로 웃곤 했었다.


얼마 전 서울을 방문해 전화를 했다. 오랫동안 연락두절이었던 무정한 스승의 목소리에 한걸음에 달려왔다. 내가 대학 졸업 후 첫 제자여서 우리의 나이차이는 10살이 채 안되었다. 세상에 뛰어들어 활동적으로 일하던 그도 눈에 띄게 주름이 늘었고 움직임도 예전 같지 않았다. 학부형과 담임의 관계로 옥신각신했던 그의 엄마도 딸과 같이 예쁘게 치장을 하고 나온 제자의 엄마는 키 크고 눈부시게 화려했던 과거의 모습을 상기시켰지만 80이 넘어 왜소해진 몸이나 장애가 있는 딸이 안쓰러워 이래라저래라 귀찮게 하던 말수도 적어진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엄마도 평생을 딸을 생각해 장애인 관련 사업에 열심히 일을 했다. 한국의 복지상황에 대해 나에게 알려주는 동안에 내 제자는 말없이 맥주만 들이켜고 있었다. 맞다. 이 친구는 원래 술을 좀 좋아했다. 몇 마디 하는데도 언어장애보다도 상황을 말하지 않고 독백처럼 무심히 쏟아내는 짧은 말을 이해하는데 대략 난감이었다.


엄마의 방해(?)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못하고 헤어졌고 그 후 문자로 대화를 이어갔다. 공무원으로 자신의 의견에 따른 사업을 진척하는 과정에 겪는 어려움도 이야기를 했고, 여동생과 남동생이 자신들의 굴곡 있는 삶을 집으로 가져와 온통 집안의 대화의 중심이 되니 자신은 골방에 혼자 앉아있는 꼴이란다. 어떻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문자로 전달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예리하고 비판적이던 옛날보다 갑자기 주제를 바꾸며 자기주장을 접기도 하기에 "쌍칼"이 무뎌진 거냐고 물었다. 참고 있는 거지 아직도 속에 품고 있는 칼날은 예리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상황 설명도 없이 마구 고조된 어투로 "속이 문드러지는 걸 선생님에게 다 말할 수도 없고"하며 입을 닫아버렸다. 안다. 부모도 형제자매도 언어장애를 가진 언니의 말을 신경을 곤두세워 듣기도 힘드니 자꾸 피할 테고 시집도 안 가고 부모님과 살고 있는 사람과는 대화내용도 달라 점점 대화가 줄어들었을 것이다.


"장애인을 보는 비장애인들은 두 가지 상반된 기대치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하고 대학 때 한 교수님이 물었다. 다들 무슨 질문일까 하는 동안 나는 손을 들고 내가 겪는 일을 이야기했다. 늘 명랑하게 웃는 모습의 나를 보는 사람들은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자신의 불행을 모르고 저렇게 해밝게 웃느냐며 속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마치 장애가 있는 사람은 장애 상황을 슬퍼하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슴이 아프게 어두운 얼굴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기대감이 있다. 그런데 좀 생각에 잠겨 조용한 나의 모습을 보는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이 그렇게 자신을 비관하고 어두운 얼굴을 할게 아니라 명랑하고 밝은 표정으로 살아야 한다며 정반대의 기준을 제시하기 때문에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모르게 하는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다고 대답을 했다. 교수님은 연구에서 밝혀낸 결과가 바로 내가 말한 정답이라고 했다.


분명히 내 제자는 가정에서 느끼는 소외감과 답답함이 있겠지만 직장에선 더 크게 속이 터질 것이다. 이해관계가 없는 관계라면 비록 이중적 기대치를 가지고 있더라도 옆에서 위로하고 격려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5급 공무원으로 경쟁대상으로 이해관계가 맺어진 직장동료들은 이 친구의 학력도 부러울 것이다. 얼마나 노력해 이루었을까 보다는 장애 때문에 그에게 베풀어진 혜택이라 비하할 것이다. 물론 그에게는 좋은 직장동료가 몇몇 있기는 하지만 언어장애가 있어도 남의 생각을 뛰어넘는 비상하고 예리한 아이디어와 다양한 전략은 무시될 것이다. 그는 아무 잘못도 없이 무시당하며 사는 나날을 혼자 참아내고 삼키며 속이 하얗게 탔을 것이다. 제자가 말을 안 해도 나는 그 속을 느낄 수 있다.


겪지 않아도 될 세상의 아픔을 겪는 장애인 제자의 억울함과 외로움을 공감하는 내 마음을 2003년 MBC드라마 "다모"의 잊히지 않는 대사가 표현하고 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러한 주변에 아픔을 가진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장애를 가진 사람 옆에서 살아가는 한두 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따뜻한 마음으로 말을 걸고 대답을 기다려주는 것으로 시작해서 널리 우리가 사는 사회 구성원이 서로를 감싸주는 사회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장애를 가진 동료에게 조금만 시간을 내어 들어주고 대화를 통해 장애로 가려진 그의 인격을 만나는 것은 비장애인에게도 큰 위로와 행복을 나누는 인생의 귀한 친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장애로 인해서 말로 표현 못하고 마음 아파하는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시간을 내어 귀기우려 들어주는 마음에 여유를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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