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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주 Oct 08. 2023

아프냐? 나도 아프다

대신할 수 없는 제자의 가슴앓이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거침없이 선택해 살아온 잘 나가는 제자가 있다. 누가 봐도 사회적으로 성공을 한 사람이다. 자신이 물려줄 재산으로 편하게 살기를 원했던 부모도 아무도 선택하지 않을 가시밭 길을 찾아 걷던 딸의 성공에 이제는 본인의 성과인양 뿌듯해하기만 한다. 내가 미국 미네소타에서 유학을 할 때 어느 날 그 제자가 나타나 특수체육으로 석사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으로 돌아가서는 장애인을 돕는 일에 헌신하며 사회사업에 대해 좀 더 배우고 싶다며 직장을 다니면서 2년의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일을 하며 아무의 도움도 없이 논문을 쓰는 것이 벅차기도 했겠지만 아마 자신이 필요로 한 복지행정에 관한 지식을 터득한 것만으로도 아무 미련 없이 박사과정을 떠나 자신이 계획했던 행정고시를 준비해 5급 사무관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이런 제자가 나도 자랑스럽다. 내가 70년도 말에 특수교사로 처음 부임했을 때 첫 제자 중에 한 명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애가 심한데도 불구하고 편히 사는 길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길을 택하는 모습이 너무도 자랑스러운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부임했던 학교는 지체장애 학교였다. 지체장애에는 다양한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있지만 그 당시 우리 학교에는 소아마비 학생과 뇌성마비 학생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두 집단 모두 지체를 맘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은 같지만 소아마비와는 달리 뇌성마비의 경우 흔히 남이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의 언어장애가 동반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중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언어장애가 있어도 친구들이 가끔 놀리는 경우가 있더라고 같이 웃고 서로 무시하기도 하며 그리 큰 소외감은 없이 지냈었다. 나는 언어치료사로 일하며 다양한 의사소통 장애를 경험한 적이 있어서 언어장애를 가지고 그 제자의 말을 다른 누구보다도 유난히 잘 알아듣고 무슨 말인지 돼 물을 필요 없이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고 자신의 주장을 확실하게 하는 그 제자를 나는 "쌍칼"이라고 불렀었다. 그러며 날이 무뎌지지 않게 늘 관리를 잘하라고 하며 서로 웃곤 했었다.


각자의 일로 바쁘게 살다 보니 한동안 서로 소식을 전하지 못했었다. 지난 5월에 서울을 방문했을 때 전화를 했다. 수십 년 동안 연락도 하지 못했던 무정한 스승의 목소리에 한걸음에 달려왔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특수교사가 되었었으니 사실 그 제자와의 나이차이는 10살이 채 안되었다. 세상에 뛰어들어 활동적으로 일을 하던 그도 눈에 띄게 주름이 늘었고 움직임도 전과 같지 않았다. 중 고등학교 때 담임이었던 만큼 학부형과 담임의 관계로 옥신각신했던 그 제자의 엄마도 날 기억하고 딸과 같이 달려왔는데 키도 크고 화려했던 만큼 그날도 치장을 하고 나온 제자의 엄마는 눈부시게 화려했던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게는 했지만 80이 넘어 왜소해진 몸매나 장애가 있는 딸이 안쓰러워 이래라저래라 귀찮게 하던 말수도 적어진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엄마도 장애를 가진 딸 덕분에 평생을 장애인 부모협회등에서 은퇴하기 얼마 전까지 여러 직책으로 열심히 일을 했었다. 오랜만에 한국에 온 나를 위해 한국의 복지상황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알려주는 동안에 내 제자는 말없이 맥주만 들이켜고 있었다. 맞다. 이 친구는 원래 술을 좀 좋아했다. 얼마 지나 몇 마디 하는데 언어장애도 있는 데다가 상황을 말하지 않고 무심히 쏟아내는 짧은 말을 이해하는데 대략 난감이었다.  


엄마의 방해(?)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못하고 헤어졌고 그 후 문자로 대화를 이어갔다.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자신의 의견에 따른 사업을 진척하는 과정에 겪는 어려움도 이야기를 했고,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여동생과 남동생이 자신들의 굴곡 있는 삶을 집으로 가져와 집안이 온통 그들의 문제가 대화를 이루니 자신은 골방에 혼자 앉아있는 꼴이란다. 하지만 어떻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모두 문자로 나누고 위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주변 상황을 예리하고 신랄하게 비판적인 의견을 피력하던 옛날보다 말을 하다가 그냥 주제를 바꾸기도 하고 자기주장을 접는 것을 보고 마음에 품고 있던 쌍칼의 날이 무뎌진 거냐고 묻자 참고 있는 거지 아직도 속에 품고 있는 칼날은 예리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알아들을 수 없게 상황 설명도 없이 마구 고조된 어투로 문자를 쓰다가 "속이 문드러지는 걸 선생님에게 다 말할 수도 없고"하며 입을 닫아버렸다. 안다. 부모도 형제자매도 언어장애를 가진 언니의 말을 알아들으려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니 자꾸 피하게 될 테고 장애로 인해 시집도 안 가고 부모님과 살고 있는 사람과는 대화내용도 달라 점점 대화가 줄어들었을 것을 안다. 또 가족들이 할 말만 하고 언어장애가 있는 내 제자의 답변을 기다리지도 않을 것이다. 


"장애인을 보는 비장애인들은 두 가지 상반된 기대치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하고 대학 때 한 교수님이 물었다. 다들 무슨 질문일까 생각하는 동안 나는 손을 들고 내가 겪는 일을 이야기했다. 늘 명랑하게 웃는 모습의 나를 보는 많은 비장애인들은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자신의 불행을 모르고 저렇게 해밝게 웃을 수 있냐며 나보고 속이 없다고 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은 뭔가 스스로의 상황을 슬퍼하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조용하게 가슴이 아픈듯한 어두운 얼굴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기대감을 내 비친다. 그런데 좀 생각에 잠겨 조용한 나의 모습을 보는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이 그렇게 자신을 비관하고 어두운 얼굴을 할게 아니라 명랑하고 밝은 표정으로 살아야 한다고 또 다른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라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어 살아야 하는지 모를 정도로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다고 대답을 했다. 교수님은 연구에서 밝혀낸 결과가 바로 내가 말한 바로 그 정답이라고 했다.


분명히 내 제자는 가정에서 느끼는 소외감과 답답함이 있겠지만 직장에선 더 크게 속 터지는 일이 있을 것이다. 이해관계가 없는 관계라면  비록 이중적 기대치를 가지고 있는 비장애인 친구라도 옆에서 위로하고 격려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5급 공무원으로 경쟁대상의 이해관계가 맺어진 일반직장에서 동료들은 이 친구의 학력도 부러울 것이다. 얼마나 노력해 이루었을까 보다는 장애 때문에 그에게 베풀어진 것이라 비하할 것이다. 언어장애 때문에 말로 발표하지는 못해도 비상하고 예리한 생각으로 적어낸 다양한 전략과 사업계획이 채택이 되면 일말의 자비도 없이 그가 장애로 인해 혜택을 입는 것이라며 왕따를 시킬 것이 분명하다. 그나마 언어장애가 없으면 대화를 하기도 하고 토론을 해서라도 이해를 시킬 수 있지만 말로 표현해 내지 못하는 그는 아무 잘못도 없이 무시당하며 사는 나날을 그냥 혼자 참고 삼키며 속이 문드러질 것이다. 나는 제자가 말을 안 해도 그 맘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듣는 나에게도 대화의 문을 닫고 말았다. 


나는 겪지 않아도 될 세상의 아픔을 겪는 장애를 가진 제자의 억울함과 외로움에 2003년 MBC드라마 다모의 잊히지 않는 대사가 찢어지는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러한 주변에 아픔을 가진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장애를 가진 사람 옆에서 살아가는 한두 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따뜻한 마음으로 말을 걸고 대답을 기다려주는 것으로 시작해서 널리 우리가 사는 사회 구성원이 서로를 감싸주는 사회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장애를 가진 동료에게 조금만 시간을 내어 들어주고 대화를 통해 장애뒤에 숨겨져 있는 그의 인격을 만나는 것은 비장애인에게도 큰 위로와 행복을 나누는 인생의 귀한 친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장애로 인해서든지 아니던지 말로 표현 못하고 마음 아파하는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 천천히 시간을 내어 귀기우려 들어주는 마음에 여유를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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