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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주 Sep 30. 2023

평양감사

빈정 상해서 안 해


왓슨은 심리학 기초 교재에 등장하는 유명한 "아기 알버트"이야기의 연구자이다. 알버트는 털이 달린 장난감을 잘 가지고 놀던 생후 9개월 된 아기로 장난감을 만질 때마다 뒤쪽에서 쇠파이트를 두드려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실험에 참가했다. 몇 번 지나지 않아 알버트는 털 달린 장난감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실험실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생활과 평생 털 달린 것에 일반화된 공포심을 보었다. 평생 공포심을 야기시킨 이 무서운 연구결과로 인해 1974년에는 피실험자들을 보호하는 법이 제정되었다 (National Research Act, 1974). 한발 더 나아가 왓슨은 "건강한 12명의 어린아이를 주면 아이의 능력이나 인종, 어떤 조건에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의사, 변호사, 예술가뿐만 아니라 거지나 도둑으로 만들 수 있다" (Behaviorism (2009) [1958], p. 82)라고 극단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조롱을 받기도 했다. 나중에 그는 그의 주장이 인종에 구애받지 않고 인간이면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인종차별을 빗댄 표현이었다고 부연설명했다.


맞다. 사람은 누구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배운다. 보상을 가지고 있는 통제자의 의도된 방향으로 shaping이 된다는 행동주의 이론은 강력하고 매력적이다. 우리도 쉽게 백점 받으면 원하는 게임 사줄게라고 자녀를 격려한다. 조건이 있고 그 조건에 맞춰 움직이면 "보상"을 준다는 행동주의적 방법이다. 이론이라는 게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을 최소한의 짧은 공식으로 설명해 내는 것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던 전략을 한 공식으로 묶어 S-R (자극-반응)으로 시작하여 한 발짝 더 나아가 R-S (반응-보상자극)으로 보상이 주어진 반응은 지속되고 보상이 없는 것은 사라진다로 발전되어 누군가를 움직이려면 "당근"과 "채찍"을 활용하는 것이 핵심인 이론이다. 그런데 이 보상이 행동주의학자들 간에도 이견이 분분해지고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평양감사라는 우리나라 제일의 보상이 주어줘도 내 "싫으면" 안 하는 사례가 보상이면 움직인다는 이론을 흔드는 것이다. 얼마동안 개그에 유행어였던 "기분 상해서.. "라는 상황이 보상이론으론 설명이 되지 않는 "감정" "이성적 판단" "개인적 차이" 요인들도 이론에서 설명을 해야 한다. 


나는 행동분석자이면서도 행동이론에서 사람에게 일을 조건으로 제시하고 보상을 제공하는 외부권력의 존재를 매우 싫어한다. 행동주의 치료법은 1960-70년도에 장애인 시설에서 수용자들을 통제하는데 큰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통제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점점 더 비인도적 행위까지 서슴지 않는 일들이 치료라는 미명하에 "통제자"들의 권한으로 자행되었고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일어날 수 없는 잔인한 통제사례들이 성행하자 80년대에 들어 행동주의적 치료가 비판을 받으며 힘을 잃는듯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기 얼마 전부터 갑자기 자폐에 대한 관심과 진단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행동주의는 재조명을 받게 되었고 보상을 손에 쥔 통제자들이 귀환했다. 다행한 것은 행동주의 이론을 발전시킨 것이다. 사람이나 동물이 어떻게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는가 하는 학습이론의 좁은 틀에 있던 행동주의가 엄격한 전문가 윤리와 교육을 시키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했고, 눈에 보이는 행동만을 다루고 보상이라는 통제권을 가진 사람의 외부존재를 중심으로 한 이론에서는 타부시 될 정도로 설명이 부족했던 인간의 언어를 행동체계로 설명하도록 이론을 새롭게 정립하며 교육과 치료법으로의 큰 발전을 했다. 아무리 발전을 했어도 그래도 행동주의이론에 등장하는 "통제자"들의 존재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자격을 철저히 교육하고, 검증하고, 윤리강령을 마련하고, 재교육을 지정하고, 이론적 발전을 추구하며 철저한 행동주의에 "인지와 감정"과 "자기 통제"의 중요성이 마련되고 있는 것이 매우 긍정적이다.


이 보상을 통해 학습된다는 이론을 알고 있던 모르고 있던 우리 교육환경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아동이 좋은 행동을 유지하기 위해 칭찬을 하고 보상을 주고 우리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나쁜 행동은 벌을 주어 그 행동이 줄어들게 하는 것은 거의 모든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흔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행동이론의 실천인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론이라 그런가 한국에 꼭 맞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인간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한국사람도 당연히 이론대로 학습을 하고 나쁜 행동을 줄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기적 생명체와 환경 간의 보상으로 학습이 이루어진다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의 삶의 모습뿐만 아니라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회문화적 환경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적 의지나 태도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보상이라고 해도 그 보상물과 보상의 강도는 개인적으로 다 다르기 때문에 아동에게서 내가 원하는 행동을 보상하면 아동은 그 행동을 학습하고 지속하리라는 믿음은 오히려 순진한 생각이라고 본다. 


강의에 나는 늘 강조한다. "평양감사도 나 싫으면 안 한다"와 "빈정상해서 안 해"라는 표현이 바로 어느 누구에게는 남들이 다 우러러보는 평양감사자리도 그 행동을 학습하고 유지하게 하지 못한다. 수업 중에 아무리 좋은 것을 준다고 해도 아동이 하기 싫으면 안 할 것이다. 그래서 농담 삼아 미국 이론이라 한국사람에게 적용하려면 좀 변형을 해야 하니 어떻게 변형해야 할지를 연구하거나 우리나라 학자들도 우리나라 사람을 대상으로 이론을 만들고 설명하면 좋겠다고 말을 한다. 또한 행동이론은 무서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힘든 약자를 대상으로 일어나고 있는 학대는 자존감이 낮은 통제자들을 통제하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이러한 사건을 자주 접하고는 한다. 아동이 스스로 주변과 상황을 탐구하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교육방법이 그래서 중요하다. 아동의 학습에 교사나 부모가 간섭이라는 통제권에 의지해 강요하려고만 들지 말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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