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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주 Oct 24. 2023

미주 한인사회의 큰 움직임

2023년 한인교회 발달장애 컨퍼런스

한 중국인 친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중국사람은 2-3 사람이 모이면 식당을 여는데 한국사람들은 2-3 사람이 모이면 교회를 만든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호들갑을 떨어 주위사람의 관심을 받았다. 사실이다. 미국으로 이민을 온 사람들이 꾸리고 사는 한인사회에는 이민 초창기부터 적응하고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 교회가 큰 역할을 해 오고 있다. 캘리포니아에는 한국을 빼고는 세계에서 제일 한국인이 많이 사는 곳이다. 미국 전체에 한인인구가 200만 명 정도인데 그중 28%인 50만 정도가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다. 여기에 주재원, 영사관, 서류미비자등을 합치면 비공식적으로 거의 백만 명에 육박한다고 말을 하기도 한다. 교회는 남가주에만 1000개가 넘는다고 하니 최근에 교회가 줄어들고 타 종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 하더라도 엄청 많은 교회가 이민자들이 손과 발이 되기도 하고 외롭고 힘든 이민생활 중에 마음의 의지가 되어 주는 곳이다. 


미국의 장애학생수가 전체 학령기 아동 중에 10% 정도가 되는데 그중에 반은 장애로 쉽게 식별이 되지 않는 학습장애를 가진 학생들이다. 발달장애와 자폐 학생들과 성인 장애인 수를 추론해 보면 한인 인구의 5-6%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남가주에만 2-3만 명의 장애인이 산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언어 소수자인 이민자로서 겪는 어려움에 더해 장애로 인해 같은 이민사회 속에서도 소외되는 이중의 벽에 부딪혀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규모가 큰 교회를 중심으로 장애인들이 예배를 볼 수 있는 특수목회를 시작한 지도 20-30년이 넘었다. 초기 멤버들 중에는 50대를 훌쩍 넘긴 장애인 분들도 많다. 이렇게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캘리포니아에도 변화의 물결이 들이닥쳤다. 초기 이민자들의 2세들이 부모가 되며 자폐뿐만 아니라 다른 발달장애를 가진 유 초등아동들의 수가 늘어난 것이다. 초장기 특수목회는 교회에 마련된 한 켠의 방에서 예배와 찬양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사회활동의 장이 되고 있는데 2세 부모들의 요구가 달라진 것이다. 그들은 영어권이고 미국문화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통합이 삶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다. 그동안 1세대 이민자들이 주도했던 교회에서 마련하고 있는 특수목회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야만 하는 때가 온 것이다. 


미주 복음방송의 주관으로 첫 한인교회 발달장애 컨퍼런스가 지난 주말에 성황리에 열렸었다. 자동차로 수십 시간을 운전해 오기도 하고 4-5시간 비행기를 타고 미국 전역에서 오는 열정이 컨퍼런스 장에 가득했다. 나도 발표할 시간이 있었다. 특수교육을 전공했고 특히 발달장애인들의 사회생활과 직업생활, 지역사회 생활등을 연구하는 전환교육이 나의 주된 연구제목이기도 했지만 나는 남가주에 있는 풀러신학대학 (Fuller Seminary)에서 목회학을 수료했기에 교회가 짊어져야 하는 특수목회의 사명에 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에 있는 큰 교회들이 특수목회에 사용할 수 있는 자료개발이나 복음성가등이 미주 교회보다 발전해 있다고 생각이 든다. 나의 발표는 나름대로 "성서적 특수교육"이라 이름을 붙여 혼자 자가발전을 하고 있는 작은 목소리이기는 하지만 청중들이 잘 들어주어 무사히 마쳤다. 한 어머니는 교수가 발표를 한다고 해서 학문적으로 원론적인 이야기만 할 것 같아 안 오려고 했는데 내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하나하나 다 자신에게 맞는 말을 해서 친구의 권유로 오기를 너무 잘했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캘리포니아에서 멀리 떨어진 조오지아주의 아틀란타에서 온 친구가 인사를 하는데 전혀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한 15년 전쯤에 보고 처음일 텐데 목걸이에 걸린 이름을 보고서야 "아틀란타!"라고 생각이 났다. 너무 놀랐다. 그 친구는 자원봉사자인데 그 많은 세월을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한결같이 장애인 도우미를 자처하고 여태까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감복을 했다. 너무도 반갑고 고마웠다. 컨퍼런스가 끝나고 저녁에 다시 만나 다른 분들과 대화를 가졌다. 그중에 나의 셋째 오빠 이름과 같은 이름의 목사님이시라서 그냥 정겨운 분도 있었다. 대여섯 시간을 운전해 북가주에서 참가하신 분이었다. 그분이 사역하는 지역에 한 자폐학생이야기를 하셨다. 자폐가 있어도 예배인도를 너무도 잘한다는 것이었다. 교회에 간사로 일자리를 주어 함께 동역하고 싶은데 교회의 일꾼이 되려면 적어도 신학교에 등록이라도 하고 수업을 듣는 전도사여야 한다며 안타까워하셨다. 그래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온라인 수업 등을 찾고 계신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장애인들도 목회자로도 일할 수 있도록 하고 특수목회를 전문적으로 하는 과정이 신학교에 개설되어야 한다고 미래를 말씀하셨다. 너무도 공감이 가는 목표이고 변화가 생겨야 한다. 


이 큰 새로운 물결을 일으킨 복음방송 사장님이신 목사님은 특수목회 사역을 하시는데 나는 옆에서 몇 마디씩 던지는 역할을 하면서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분이었다. 처음 목사님의 전화를 받았을 때 이런 구상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고 두어 번 줌(Zoom)으로 준비하시는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냈었다. 미국 주류사회에 장애인 사역에 관심이 있고 크게 주목을 받고 있는 미국인들도 강사로 세우셨다. 미국땅에 같이 살고 있으면서도 이런 일이 처음인 것이다. 그 목사님은 이렇게 없는 일을 계획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일을 저지르는 리더로서의 역량이 대단하신 분이다. 내가 컨퍼런스 행사장에 도착했을 때도 다가와 인사를 건네셨다. 대단히 바쁘신 분인데 나한테까지 신경을 써주시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주말 동안 그 큰 행사로 엄청 힘드셨을 텐데 오늘 나에게 전화를 하신 것이다. 너무 깜짝 놀랐다. 바로 이런 것이 큰 영향력 있는 리더의 모습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연배가 있으리라는 생각은 했지만 나보다 무려 6살이나 많으시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나는 오늘내일 은퇴를 계획하고 있는데 그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할 사람이 없다고 자꾸 하라고 해서 할 수 없이..."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상투적인 이야기이다. 그분이 맞기는 하다. 능력이 되기도 한다. 또 돌아보면 그만큼 할 사람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밀려서 또 잡기보다는 단호히 뒤에서 돕겠다며 후배를 내세우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아마 컨퍼런스 주제가 "차세대 장애사역 리더양성"이었던 것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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