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주 Jan 21. 2024

"신도"님과의 만남

나의 활동명 "교주", 그래서 나의 팬님들은 "신도" ㅎㅎ

멋있는 연예인들의 이름이나 부케명에 따라 팬그룹 이름이 생긴다. 방탄소년단에게는 "아미"가 있고, 가수 비비에게는 "비비탄," 가수 임영웅에게는 "영웅시대"라는 팬클럽이 있다. 나는 연예인이 아니면서도 "교주"라는 이름으로 전환교육을 알리는 활동을 오래 했기에 나에게는 "신도"가 있다. 젊었을 때는 꽤 많은 신도들이 있었다. 한국을 가면 꽃다발을 들고 공항까지 나와주는 "환영 신도팀"이 있었고, 하루에 7-8명의 신도미팅 스케줄이 잡혀 있었으며, 빼곡히 짜여있는 전국 강의스케줄로 이동하는 동안에라도 대화를 하겠다고 "차량대기 신도팀"도 있었다. 당연히 출국날에는 공항에서까지 "대~한민국"을 외쳐주던 "환송 신도팀"이 따로 있었다. 그동안 신도수가 줄었지만 거의 30여 년 가까이 지금까지 환송해 주시는 열혈 "부부 신도"팀도 있다. 물론 나도 그분들의 제1 팬이다. 곧 박사과정을 시작하는 자칭 "제1 신도"도 있다. 일타 강사도 아니고 유명인은 아니어도 늘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고 살아가며 그런 경험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큰 복이라서 늘 감사하고 있다.


얼마 전에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행동문제가 있는 학생을 관찰하고 어떻게 통합예배를 할 수 있을지 의견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내가 관찰을 해야 하는 아이는 6살 된 자폐아동이었다. 방에 들어서자 많은 초등학생들이 있었고 맨 뒷줄에 한 꼬마가 바닥에 누워 뒹구는 것을 보자 나에게 의뢰된 아이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보다 조금 덩치가 큰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건장한 남자의 무릎에 앉혀있던 그 아이는 무척 얌전했고 장애아라고 보이지는 않았는데 대충 열두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다 큰 아이가 무릎에 앉혀있는 것이 뭔가 어색해 보였다. 장애가 있던 아이의 관찰이 끝나자 목사님한테 그 큰 아이에 대해 물었다. "어디가 아픈가요?" 하자 "장애아동이에요"라고 답한다. 지체장애로 인해 근육에 문제가 있으면 무릎에 앉힐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떠나려는데 그 아이가 일어섰고 웃으며 걸어 다니는 것이었다. "뭐지?"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아빠가 너무 좋은 사람이고 그 아이의 엄마는 교회에서 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계시는 좋은 가정이라고 했다. 교회에서는 장애가 있는 아동들의 통합예배를 위해 봉사자를 구하지만 늘 도움의 손이 부족하여 통합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다행히 그 아이 아빠는 지적장애가 있는 아들을 위해 매주 주일학교에 같이 참여해 자신의 아들을 철저히 안고 있다는 것이다. "혼자 못 앉는 것도 아니고 마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문제행동도 없다면서 왜 안고 있죠?" 집요하게 질문을 했다. 그 아빠는 자녀의 행동이 남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안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빠의 안아주는 봉사 때문에 그 아동이 통합예배에 참여할 수 있어 참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내 머릿속에서 "도움?," "통합?," "좋은 아빠?," 아닌데… 무릎에 안고 있는 것은 "도움"이 아니라 "구속"인데… 다른 아이들과의 통합을 "절벽방어"로 막고 있는데… 이 정도면.. "아버지가 아주 나쁜 사람이네요"라는 직설적이고 과격한 말이 튀어나왔다. 나는 그 애 아빠를 꼭 만나 보고 싶어 했다.


얼마 후 교회의 봉사자와 목회자를 대상으로 특수교육 방법과 행동치료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됐다. 강의 후 그 아이의 엄마와 아빠와 이야기를 했다. 아들을 왜 무릎에 안고 있는지에 대한 아빠의 장황한 설명을 귀담아 열심히 들었다. 나는 질문을 했다. “아들의 덩치가 아빠만큼 커지면 어떻게 안고 계실거죠!” “아빠가 늙어 할아버지가 되면 아들을 어떻게 안고 계시죠?” 그 아빠는 거기까지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다며 그저 지금 현재 남에게 폐를 안 주려고 안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라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그럼에도 그 아빠는 남에게 폐를 끼치면 절대로 안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먼저 아동을 내려놔야 아동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있고, 그중에 남에게 폐가 되는 행동을 알아내고, 그래야 남에게 폐가 되지 않는 사회적 행동을 가르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아빠 품에 "묶여"있던 아이에게서 다른 아이들을 유심히 바라보던 호기심, 따라 하고 싶어 하던 동기유발, 잠시 내려놓았을 때도 이상행동이 보이지 않던 점, 그리고 아빠를 돌아보며 "말"을 하던 의사소통 능력등을 가늠해 볼 때 나는 그 아이에게서 무한한 교육가능성을 보았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나의 첫 처방은 단순했다. "아이를 내려놓으세요."


나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서로 폐도 좀 되고 서로 도움도 되며 사는 것이지 전혀 폐를 안 주겠다는 것은 오히려 타인의 포용력과 배려심에 대한 믿음이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한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아이가 좀 폐를 끼쳤을 때 바로 내치겠느냐"라고 물었다. 사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모두 함께" 자녀들의 교육에 대한 책임이 있다. 물론 타인을 배려하여 평소에 "폐끼침"을 피하려는 진정으로 좋은 사람인 아빠를 우리는 배워야 한다. 하지만 아이의 교육을 고려할 때는 "폐끼침"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자유로운 교육환경의 마련을 우선으로 하여야 한다. 모든 상황에서 남에 대한 배려를 우선으로 하는 부모의 "착한"사고는 자녀를 무릎에 꽁꽁 잡아 묶어놓았고 그것은 자녀의 배움의 기회를 박탈하고 다른 배려심 가득한 좋은 친구들을 만날 기회를 잃게 한다는 것이다. 늘 남을 배려하는 일에만 초점을 두며 내 자녀의 교육기회가 희생을 당하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반년쯤 지났을 때 목사님이 그 아동의 변화한 모습의 성공사례를 발표하시는 것을 들었다. 아빠가 변한 것이었다. 언제나 남에 대한 배려심으로 남편에게 말 걸기 조차 힘이 들었다는 부인도 아빠가 변하니 가정생활 모두가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사람이 변하기 쉽지 않은데 자녀를 위해 변할 수 있었던 그분은 "진짜"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지난달에 아무 계획 없이 잠깐 한국에 갔던 사이에 새"신도"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동행한 두 대학생 딸들이 엄마를 닮아 예쁘고 상큼한 모습으로 첫 대면부터 기분이 좋았다. 대학생 딸을 둔 엄마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전공을 찾아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좀 늦게 시작하는 것이니만큼 공부와 실습을 병행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말했다. 그의 대답이 나를 자극했다. 충분한 지식을 섭렵한 후에 해야 실습기관과 피험자에게 폐가 안된다고 생각해 미루는 중이라는 말을 듣자 나는 위에 말한 그 아빠가 떠올라 "나쁜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학생인 딸들이 내가 미래의 계획을 물었을 때 확실한 목표를 말하지 못했던 것이 엄마의 영향이었구나를 알 수 있었다. 맞는지 안 맞는지 그들의 생활환경과 습관등도 배제한 채 "전환교"설법을 떠들어 댔다. 5년 후의 목표를 잡고 그 목표를 향한 각 단계가 무엇인지 적은 후에 각 단계에서 할 일과 날짜까지 구체적으로 적는 방법을 이야기하며 엄마의 생각에 따르지 말라고 강조에 강조를 했다.


한참을 떠들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났고 우리는 헤어졌다. 엄마와 두 딸은 감사하다고 했고 나는 열심히 움직이라고 응원했다. 그들과 헤어진 후 호텔 방으로 돌아와서부터 미국으로 돌아온 지금까지 엄마신도님의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두 딸을 그렇게 곧고 바르게 키운 것이 자랑스럽다. 그런데 왜 내 마음의 한편에는 짠하고 무거운 감정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잘하고 있다는 것과 훌륭한 엄마인 것이 사실인데 아마 비중 있게 "나쁜 엄마"라는 말을 많이 하고 좋은 점을 강조하는 데는 너무도 인색한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되돌아보며 지금까지 마음이 너무 아프다. 살아오며 많이 힘들었을 텐데... 아이들을 모두 대학에 보내고 그 와중에 자신의 꿈을 찾는 일에 게으르지 않은 그 사람은 내 기준에서 보면 이 세상에 오직 소수의 사람만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을 가는 "최고"인 사람이다. 느려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실천가이며 대학생 자녀들과 "대화"가 가능한 의사소통가이며 사회에 폐가 되지 않도록 자기의 굳건한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범시민인데 그런 칭찬을 다하지 못했다.


여태 살아온 모습도 훌륭하고 아름답지만 지금 나에게 주는 에너지는 또 다른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 강조해 주고 싶다. 나는 많은 사람에 둘러 싸이는 것보다 한 사람씩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미래와 변화에 대한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변화는 쌍방향이다. 나도 사람과의 만남에서 많이 배우고 깨닫고 용기를 얻는다. 나는 그 세 모녀 신도님들이 나에게 너무도 많은 힘을 주는 사람들인지 꼭 알았으면 좋겠다. 내 글을 열심히 읽어주기도 하고 가끔씩 댓글도 남긴다. 그들이 브런치에 들어왔다 갔다는 흔적은 나에게 세상과 연결해 주는 끈이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다. 신도님들이 나에게 더 큰 희망과 에너지를 주는 것이다. 나는 "교주"라면서 "신도"들에게서 삶이 충전되는 것을 감사하고 있다. 그래서 이"교주"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와 차별화가 되는 것 아닐까? 어떠면 나의 팬들은 "신도"가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지켜 주시기 위해 보내준 "천사"인가? 천사님들! 당신들 때문에 살맛이 납니다. 하하하!

작가의 이전글 나의 유학 방랑기 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