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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주 Jan 06. 2024

새해 새 기쁨

새 청중 새 희망!

새해의 시작을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에서 맞았다. TV에서 예고하는 제야의 타종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꼭 보고 싶고 듣고 싶어서 두 눈을 부릅뜨고 시간을 보니 아직도 서너 시간 기다려야 한다. 도착한 지 며칠이 되지 않아 피곤함을 이기려는 노력으로 다시 두 눈을 부릅 떠보니 아직도 큰소리로 떠들고 있는 TV소리가 귀에 들리기는 하는데 이미 서너 시간 전에 새해가 밝았고 제야의 종소리는 퍼져 사라지고 말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미리 계획한 하고 싶거나 해야 할 일들도 없었고 만나려고 계획한 사람도 없이 그냥 시작했으니 제야의 종소리를 못 들었어도 계획에 없었으니 그리 아쉽지만은 않다고 스스로 위로를 했다. 


그냥 며칠을 창밖에 보이는 잿빛 서울의 겨울을 내려다보며 LA에서의 생활과 별로 다르지 않게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지난 11월에 미국으로 시설견학을 왔었던 팀도 만나지 못했고 여러 번이나 같이 식사를 하자는 모임에도 나가질 못했기에 아무리 약속을 하지 않았어도 한국에 왔다고 소식을 전해야만 할 듯 한 사회복지 시설의 기관장님이 있었다. 지금 짧게 서울에 왔지만 미국에서 보자고 인사말만 간단한 문자로 보냈다. 늘 에너지 넘치고 연락에 진심이던 그분은 식사라도 하자고 문자로 여러 번 권유했지만 단호히 거절에 거절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직원분들과 시설장님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부탁하시는 문자가 왔다. 나의 답장은 두말할 것도 없이 "언제요?"였다. 그분은 나를 너무 잘 아시고 계신가? 이제는 강의 일선에서 떠난다는 생각을 굳히기도 전에 나는 바로 강의미끼를 물었다. 


강의를 하게 될 것이라는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은 상황인 데다가 강의에 참석하는 청중이 어떤 사람들 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강의 주제만을 중심으로 바로 준비를 시작했다. 하루는 강의를 설계하고 다음날 하루종일 강의자료를 만들었다. 보통 나는 청중이 누구인지를 중요시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너무 시간이 짧아 대충 맞을 듯한 내용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중심으로 준비했다. 그 주제는 새해에 이 브런치에서 소개하려고 계획했던 내용으로 오히려 미리 알아보는 마음으로 준비를 했다. 그런 데다가 평소에도 별로 가꾸지도 않고 화장도 하지 않아 추리해 보이는데 이번에는 아예 아무 준비도 없이 왔으니 정말 내가 봐도 마음에 들지 않은 모습으로 강의실에 도착을 했다. 평소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서서 강의를 하는데 이번엔 설 수도 없었다. 죄송한 마음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내용은 미국의 사회복지 제도를 한국의 사회복지 제도와 비교하며 전달하는 것이었다. 솔직이 이 주제는 내가 꼭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특수교육을 전공으로 하는 교수들이 잘 모르는 미국사회 전반의 직접적이고 실천적인 복지제도를 다루는 내용이기 때문이라 다른 교수들이 잘 전달하기 힘든 주제라는 점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강의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미국은 잘하고 있고 한국은 아직도 낙후되어 있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고정관념을 양국의 제도를 좀 더 객관적으로 비교 분석해서 깨 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내가 미국 제자들에게 강의 중에 강조하고 있는 미국이 배워야 하는 우리나라의 강점과 잘하고 있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그것은 내가 미국에 남기로 한 개인적 목표 중에 하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좀 더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많은 정보를 비교분석해 가며 강의를 해야 했지만 갑자기 짧은 시간에 준비를 한 내용이라 버벅대며 시간을 채워가고 있었다. 사실 강의를 해보면 듣고 있는 사람들이 내가 하는 강의 내용을 얼마만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수긍하는지 바로 느낄 수가 있다. 지난 수년동안 코로나로 인해 대부분 줌을 통해 강의를 하며 그러한 피드백이 점점 어려워짐을 느끼기도 했지만 꼭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반응도 너무 좋고 내가 몰라서 묻는 내용도 답을 해서 채워주는 너무도 다이내믹 한 상황에 신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도 강의 중에 그 정도의 상호작용은 순간에 나를 기분 좋게는 할 수 있지만 진짜 청중이 원하는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지는 잘 알 수가 없다. 나는 교사로서 늘 신념으로 믿고 강조하는 게 있다. 나는 제자들에게 "듣는 사람이 원하는 내용을 가르쳐 주는 것이 교육이지 네가 아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라고 늘 강조를 하며 그들이 가르치는 학생의 교육적 욕구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일 년 내내 가르치는 학생들도 아니고 한두 시간 가르치는 강의의 경우는 청중으로부터의 질문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일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유치원 초등까지는 열심이던 질문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질문을 하지 않는다. 어느 때는 혼자 떠들며 목이 아픈 나를 가엽게 생각을 해서라도 좀 쉴 수 있고 물도 마실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 질문을 하는 게 예의라고 농담을 해도 질문의 입을 떼지 않는다. 챗GPT의 발전과 AI의 제4차 혁명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덕목이 "질문"인데 챗GPT가 우리의 원하는 답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려면 질문을 잘해야 하고 그것이 미래교육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고 아무리 강조를 해도 입을 열지 않는 것이 한국강의를 할 때마다 겪는 딜레마이다. 하여간 새해 첫 강의에서도 이런저런 강조를 하며 대충 내가 준비한 내용을 마무리 지었다. 나는 간절한 마음이면서도 당연히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실망과 포기의 마음을 갖고 "질문 있으시면 하세요"라고 상투적인 말로 강의의 끝을 알렸다. 


마치 평생의 처음인 듯했다.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이었다. 진짜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질문으로부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을 알린 것이나 그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알려줬다는 생각보다 너무도 좋았던 것은 질문을 통해 내가 알고 있던 한국의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내용보다 훨씬 더 너무도 열심히 잘하고 있는 모습을 느끼며 한국의 복지가 열심히 발전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한국에서 필요한 내용이 뭔지도 좀 더 확실하게 알게도 되었지만 무엇보다도 그렇게 장애인의 복지 프로그램을 정성과 열성을 다하는 분에게 소위 말하는 "전문가"의 입장에서 칭찬할 수 있어서 내가 강의한 내용보다 더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진짜로 그분들의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 질문이었고 내가 질문에 흥분할 정도로 기뻐했다는 사실을 그분들은 모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통해 그분들이 너무 잘하고 있고 질문하는 수준은 한국최고였다는 진심을 전하고 싶다. 


유튜브를 통해서 또는 뉴스를 통해서 교사와 학부모의 대립, 노인과 장애인을 향한 무관심과 잦은 망언, 너무도 만연한 개인주의와 경쟁주의등으로 한국이라는 사회가 주춤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마음이 무거웠는데 나는 그것이 다 그저 우려에 지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새해에 우연히 하게 된 첫 강의를 통해 강사로서 너무도 너무도 행복했고 잠시나마 낮아졌던 마음이 다시 장애인을 위한 교육과 복지에 대한 새로운 희망과 긍정적으로 도약하는 멋있는 첫날을 열게 되었다. 더 나아가 오늘 추위를 뚫고 혼자서 기억 속에 있는 책방을 찾아갔다. 가는 길은 너무도 바뀌고 새로운 건물들로 생소한 느낌이었지만 책방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사진에 꼭 담아 미국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책방이 꽉 차있는 것이었다. 아동코너에도 사회과학이나 자기 계발등 모든 분야의 서적 앞에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내 가슴도 꽉 차올랐다.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보는 기쁨으로 시작하는 새해가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


내가 본 희망찬 미래가 내가 느끼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 우리 모두가 함께 미래의 희망을 한걸음 가까이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질문"을 시작해야 한다. 내가 강의에서 만난 그분들은 일반화된 청중은 아닐 것이다. 그분들은 너무도 특별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는데 그 모습을 모델로 한국의 모든 사람이 질문하는 능력을 키워 미래를 준비해야 하고 그 준비의 최일선에 있는 사람은 첫 번째가 엄마들이고 두 번째가 모든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교육자들에게 주어진 새해 임무라 강조하고 싶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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