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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Apr 20. 2020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찬희에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사람마다 다른 대담이 나올 거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 나를 사랑하는 것, 욕심을 버리는 것, 지금의 교육제도를 바꾸는 것, 사랑을 지키는 것 등 자기가 직면한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지. 엄마에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아이를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키우는 거라고 말할 거야.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묻는다 해도 엄마 대답은 똑같이 아이를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키우는 거라고 말할 거야.     


아이를 키우는데 수학 공식 같은 모범 답안은 없어. 복제 인간이라고 해도 복제 대상이 된 사람과 뇌까지 똑같을 수는 없으니까. 뇌는 태어나기 전부터 어머니의 태내 환경 속에서 성장하고 태어난 후에도 특정한 시간과 공간이라는 환경 속에서 성장하게 돼. 그동안 뇌세포는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되며 사람마다 다른 뇌로 자라기 때문이야. 이렇게 다른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로 느껴지기 때문이야.    

1년 전 다섯 살 아이가 입소했어. 네 살까지 말을 못 했고 밥을 잘 먹지 않아 그때까지 우유병을 물고 잠을 잤다는 아이는 너무 작고 가벼웠어. 목욕을 시키려고 옷을 벗겨보니 아프리카 난민촌에서 온 아이처럼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어. 다섯 살 아이의 몸무게가 13kg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렇게 작은 아이가 안하무인인 것에 놀랐어. 여섯 살 형에게 “야, 너 이거 해, 저거 해”는 기본이고 5학년 형에게도 “네가 그랬잖아”라고 하며 모든 것을 자기가 주도하려고 하는 것에 너무 놀랐어. 일단 위, 아래 질서를 잡아줘야 할 것 같아. 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형을 형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도록 하는 데 10개월이 걸렸어.    


형을 형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되니까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어. 다른 사람 물건을 마음대로 만지고 갖고 싶으면 몰래 가져가는 거야. 왔을 때부터 내 것, 네 것 구분하지 않고 만지는 것에 대하여 계속 얘기해서 내 것과 네 것은 구분하지만, 내 것은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 물건은 아무렇지도 않게 만지는 것이 여전하고 갖고 싶으면 가져다 감추어 놓는 일이 반복되어서 바로잡기로 했지.    


뭐든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 되면 ‘아니에요, 싫어요’ 안 할 거예요’를 반복하면서 우는데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때까지 우는 것과 다른 사람 물건을 마음대로 만지고 가져가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기로 했어. 집에서 어떻게 지도할까를 생각하면서 놀이치료, 미술치료, 상담치료, 독서치료 중에 아이에게 맞는 것을 하나 선택해서 심리치료도 병행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몇 군데 문의했더니 어떤 곳에서는 아이가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서 사랑받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고, 하고 다른 곳에서는 역할에 대하여 인지가 부족한 것으로 보고 역할놀이를 통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어.    


엄마에게 오기 전 환경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지. 심리치료 기관에서는 그 환경에 대하여는 알지 못하고 엄마가 말한 지금 현재 아이의 상태에 대한, 이야기만 듣고 판단하여 개입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거야. 엄마는 조금 달라. 엄마가 전해 들은 아이의 성장 과정과 지금의 행동에 대한 연관성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에 대하여 고민했어.     


아이는 완전 방임으로 3년을 살고 완전 허용으로 9개월을 살았어.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이 없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괜찮았기 때문에 안 되는 것에 대한 인지가 없는데 아무리 말을 해도 이전의 경험이 고착되어 있어서 입력이 안 되는 거야. 그런 경우 엄마는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고…’라는 성경 말씀을 떠올리고 입으로 시인하도록 해. 


가령 형 물건을 마음대로 만져서 망가뜨려서 형이 화를 내고 아이가 우는 상태일 때 아이에게 형 물건을 만지면 안 되는 거라고 말해도 듣지 않고 계속 울어. 그런 경우 ‘네 알겠습니다’를 따라 하도록 해. 처음에는 따라 하지 않고 울지. 그럼 이름을 한 번 불러서 시선을 끌고 다시 ‘네 알겠습니다’를 따라 하도록 해. 그다음에 “형 장난감을 만지고 망가뜨려서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내 것만 가지고 놀겠습니다”를 따라 하도록 했어.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 세 번 반복하지. 일관되게 그렇게 반복하면 신기하게도 고집부리고 떼쓰며 울던 아이도 자기가 시인한 대로 자기 것만 가지고 놀고 울며 떼쓰는 일이 사라지는 거야.    


엄마가 처음부터 이런 방법으로 아이의 행동수정을 한 것은 아니야. 너를 포함해서 17명의 아이를 키우며 경험치가 쌓이다 보니 지혜가 생긴 거지. 그중에 네가 가장 많은 경험을 하게 했어. 아마도 네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아이들을 이해하거나 포용하지 못했을 거야. 네가 어려서 정말 많이 울고 떼쓰고 고집부렸으니까. 지금은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하여 큰 어려움은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 엄마에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아이를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키우는 것이라고 말할 거야. 그렇게 어려운 일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네 덕분이야. 네가 엄마의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무조건 저를 지지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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