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안에서 크는 품 밖의 아이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누가복음 10장 36절)
우리는 살면서 수도 없이 강도 만난 사람을 만나요. 간절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그때 도움을 받아본 사람이나 그런 뉴스를 접할 때,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이웃을 돌보는 사람들이 있어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고 말해요. 그러나 내가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살기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선한 사마리아인의 삶은 돈의 많고 적음, 배움의 깊고 낮음과는 상관없이 누구나 선한 이웃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왜 내가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살아야 하는가?
예수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겠다고 고백한 우리는 위대한 삶이 아니라 선한 삶, 섬김을 받는 삶이 아니라 섬기는 삶을 살도록 부름 받았기 때문이에요. 누가복음 10장 25~37절에 어떤 율법 학자가 예수를 시험하려고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느냐고 물었어요. 예수님은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느냐고 반문하고 율법 교사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너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합니다.라고 대답해요. 예수님은 맞다 그렇게 행하여라. 그러면 살리라고 답하고요.
그와 함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맞아서 거의 죽게 된 것을 강도들이 버리고 갔다. 마침 그 길을 지나가던 한 제사장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한 레위인도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으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그곳을 지나가다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다. 이튿날 주막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주며 이 사람을 돌보아주고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올 때 갚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그렇다면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어요. 율법학자는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답해요. 예수님은 가서 그 사람이 한 것같이 하라고 해요.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간 제사장과 레위인은 만약 내가 여기서 멈춰 이 사람을 돕는다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를 생각했고 선한 사마리아인은 내가 이 사람을 돕지 않는다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를 생각했어요. 아동 청소년 공동생활가정 ‘즐거운 집 그룹홈’을 운영하는 저에게는 학대로 이곳에 오는 아이들이 강도 만난 사람이에요. 저에게 연결되는 모든 아이를 잘 돌보아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하도록 돕기 원하지만 때로는 제 의지와 상관없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해요. 그때마다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를 먼저 생각하지는 않는지 생각해보게 돼요.
지난 2001년 1월 26일, 신오쿠보역 선로로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한국인 유학생 故 이수현(고려대 무역학과 93) 님의 희생은 당시 일본 사회에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올해로 20년을 맞는 그의 희생은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 일본인의 마음에 큰 울림이 되고 있어요.
나카무라 사토미(中村里美) 감독은 이수현을 소재로 한 영화 ‘가케하시’ 제작해 2016년부터 상영했고, 이후 2편까지 제작에 일본 곳곳에서 상영했습니다. 일본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 부교재에 이수현의 이야기가 실리고 그의 이름을 딴 'LSH 아시아 장학회'가 설립되어 2002년부터 현재까지 ‘일본어 학교’에 다니는 아시아 각국의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지요. 지난 2020년 2월에는 KBS 1TV ‘다큐멘터리 3일’, 故 이수현 추모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일본인은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고 이수현 씨의 희생은 깊은 울림으로 감동을 주고 있어요.
정말 잘 들어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공동번역 요한복음 12장 24절)
왜 내가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위대한 삶, 성공한 삶이 아닌 선한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