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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May 24. 2023

9. 내가 나하고 노는 시간

다른 아이

9. 내가 나하고 노는 시간     


인간은 놀고, 먹고, 자고, 일하고를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아이들은 놀면서 배우고 어른들은 노는 것에서 쉼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우리 삶에서 노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데 어떻게 노느냐는 사람마다 각기 다릅니다. 김 정운 교수는 [노는 만큼 성공한다]에서 잘 노는 아이들이 창의력도 높다고 주장하며 아이들이 잘 놀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노는 것이 잘 노는 것일까요?     


어떤 아이는 혼자 노는 것을 무척 싫어합니다. 누군가 같이 놀아주거나 엄마가 함께 놀아주어야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혼자 있으면 무엇을 어떻게 할지 몰라 심심하다고 징징거리며 엄마치마꼬리를 잡고 따라다니며 보챕니다. 바구니 가득 장난감이 있고 책장에 책이 넘쳐나도 그것은 누군가와 함께 놀 때 필요한 도구일 뿐입니다.     

 

혼자 노는 것이 싫다고 말하는 영우에게 어떻게 하면 혼자 노는 즐거움을 알게 해 줄까 고민하던 저는 말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혼자 노는 것이 아니고 내가 나하고 노는 시간이 시간이니까 네가 너하고 재미있게 놀아주라고 했습니다. 듣고 보니 혼자 노는 시간이라고 했을 때는 왠지 외롭고 쓸쓸하고 심심해서 따분하게 노는 것처럼 느껴졌던 시간이, 내가 나하고 노는 시간이라고 말을 바꾸니까 꼭 누군가와 함께 노는 시간 같았습니다.      

주말 오전과 오후에 한 시간씩 내가 나하고 노는 시간이 있는데 보통은 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종이접기를 하는 등 주로 놀잇감을 가지고 놉니다. 그런데 지난 주말에는 모두가 책을 들고 거실 탁자로 모여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여섯 살 아랑이는 아직 글씨를 읽지 못해 그림만 봅니다. 마치 도서관에 온 것 같습니다. 저는 내가 나하고 노는 시간이라고 아이들을 각기 분리하고 혼자 노는 방법을 찾아가도록 한 지난 1년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감동했습니다.


5분만 있으면 몸이 근질거리는 초등학교 저학년 영우가 과연 몇 분이나 버틸까 궁금해졌습니다. 열 살 하늘이는 요즈음 WHY 책에 빠져 있습니다. 1학년 영우도 형에게 지고 싶지 않아 책을 읽습니다. 영우가 “한 시간 되려면 얼마나 남았어요.”?라고 물어서 시계를 보니 50분이 지났습니다. 저도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다 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습니다. 저는 폭풍 칭찬을 해주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으로 보상해 주었습니다. 저의 칭찬에 하늘이와 영우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우리 엄마 최고라고 추켜세우며 재잘거립니다.     


어려서 나하고 노는 시간이 없었던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도 나하고 놀 줄 모릅니다.      


어제는 통합교육반에서 수업을 받는 지적 장애를 둔 엄마들을 대상으로 학부모 연수가 있었습니다. 지적 장애 아이가 있는 엄마들의 일상은 보통의 엄마들보다 훨씬 힘이 듭니다. 한두 번 말해서 될 일도 열 번 스무 번 아니 그 이상 말해도 기억하지 못하고 어리바리할 때가 많으니까요. 영우는 종합심리검사에서 100점 만점에 55점을 받아 지적장애 중증 진단을 받아 이해를 해야 수업이 가능한 수학과 과학 시간에는 통합교육반에서 공부합니다. 다행히 저의 무한반복 교육으로 한글을 읽게 되어 통합교육반에서는 우수한 학생으로 칭찬받는 날이 많습니다. 


안성시에 있는 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는 아이들의 엄마를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학부모 연수를 하는데 가보시면 좋겠다는 통합 교육반 선생님의 권유로 신청하고 몽실학교에 갔습니다. 열다섯 명의 엄마들이 모여 있으나 말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통합반 아이를 둔 엄마들이라 서로가 조심스러워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엄마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오늘은 누구의 엄마 어떤 남자의 아내가 아닌, 오롯이 나로 쉼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문을 열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으로 나만의 공간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골방이 있다는 사람도 있고 베란다가 나만의 공간이라거나 주방, 또는 화장실이 내 공간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물었을 때 차를 마시거나 책을 보거나 멍 때리거나 한다는 말에 선생님은 차를 몰고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펑펑 운다고 했습니다. 목이 쉴 때까지 울고 나면 시원해진다고 한번 해보라고 권하며 오월의 장미꽃 같은 웃음으로 마음을 녹여주었습니다.      


엄마는 울고 싶을 때 마음대로 울 수도 없습니다.    

  

비단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육아를 경험한 엄마라면 하루 종일 동당거리며 치우고 또 치워도 티가 나지 않고 아이를 잘 가르쳐보겠다고 정보를 찾아 쫓아다녀보지만 우리 아이만 뒤 떨어진 것 같아 불안합니다. 나는 없고 엄마와 아내로 살아가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이 길면 길수록 나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30대 중반에 암으로 수술하고 호르몬의 변화가 급격하게 오면서 심한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3일을 계속해서 울었고 그 순간 죽으면 딱 행복할 것 같아 길을 건너며 차가 와서 탁 치여 죽여주기를 바랐습니다. 안타깝게 여긴 지인이 저를 노래방에 데리고 갔습니다. 처음으로 가본 노래방에서 잃어버렸던 저를 만나 화해의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음악을 좋아해서 피아노 반주에 멍 때리고 드럼 소리에 심장이 떨리던 저는 삶의 치열한 전쟁터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눈에 띄지 않는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눈물과 함께 툭 튀어나온 또 하나의 저는 왜 나를 방치했느냐고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 있는 거라고 토닥이며 이제 한 번씩 자기를 돌아보며 함께 잘 살아보자고 했습니다.  그냥 슬퍼서 3일을 계속 울었던 제가 이번에는 저를 잃어버리고 살아온 지난 시간이 슬퍼서 더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결혼한 여자는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공간과 시간과 에너지를 내어주고 나면 나만을 위해 사용할 것들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부스러기들을 긁어모아서라도 내가 나하고 노는 시간과 장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며느리와 딸로, 엄마와 아내로서의 삶이 아닌 내가 나로 살아갈 이유가 살아 움직입니다. 살아갈 이유가 살아 움직이니 우울증의 늪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엄마도 사람이고 힘들고 지치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 내가 나를 토닥토닥 위로하며 쉼을 얻고 재충전할 수 있는 내가 나하고 노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곳이 차 안이거나 화장실이거나 베란다라도 상관없습니다. 그곳에 내 이름을 붙여 놓고 나만의 공간으로 줄을 그으면 나만의 공간이 됩니다.  

    

지금 당장 어디에라도 내 공간임을 표시하는 줄을 긋고 내 이름을 붙여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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