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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May 21. 2023

8. 시가 50만 원 킹크랩을 먹던 날

8. 시가 50만 원 킹크랩을 먹던 날     


저는 킹크랩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특별히 무엇이 먹고 싶다거나 맛 집을 향해 달려가지도 않습니다. 가난하게 살아온 지난 세월이 단지 먹을 것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살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이 장성해서 외식을 하자고 하면 딱히 갈 곳이 없습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메뉴도 없고 먹는 양도 작아 몇 만 원씩 주고 밥을 먹고 나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합니다.     


4살 때 가정위탁으로 만난 형제는 그런 저를 누구보다 잘 압니다. 여덟 살에 원 가족 복귀를 준비하라는 말에 고아원에서 성장하여 가정을 모르는 아빠에게 돌려보내지 않기 위해 방법을 찾다 공동생활가정에서는 형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대학원에서 아동가족복지를 전공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즐거운 집 공동생활가정을 개소했습니다.      


그 사실을 아는 형제는 저에게 항상 고맙고 평생의 은인이며 존경하는 사람의 1호라고 합니다.     


형제는 가난하게 사는 것이 싫었습니다. 부자로 살고 싶고, 저에게 좋은 차를 사주고 싶고, 자기처럼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찌감치 대학진학은 포기하고 취업을 위해 **공고 전기과에 진학해 도제를 신청했습니다. 도제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산학협력 프로그램'으로 산학일체형 도제학교라고 하며 독일과 스위스에서 발전한 도제교육을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 때 우리 현실에 맞게 수정하여 도입했습니다.      


학생들이 직접 기업에서 일하며,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실제 업무에 적용하고, 기업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현실적이고 직무 지향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제도입니다. 기업에서는 성실하고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는 계기가 되고 학생들에게는 실질적이고 유익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교와 기업이 협력하여 학생들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한 달에 2주 동안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2주 동안은 회사에 가서 일을 하고 실습비를 받는 형태로 학습이 이루어집니다.      


형제는 도제 제도에 대한 설명회에 참석하여 진지하게 듣고 망설임 없이 도제 반에 들어갔습니다. 형제만 도제 반에 들어가고 싶다고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동의서에 서명을 해야 하고 집과 회사의 거리가 멀면 주말에 회사에 데려다주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정해진 시간에 회사에 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합니다. 저는 형제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했는데 담임선생님은 근심이 가득합니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하고 어울리지 않고 도서관에 박혀 책만 보거나 책상  위에 엎드려 있던 형제가 과연 회사에 가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만들어가고 맡겨진 일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형제는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저와 반신반의하는 담임선생님을 뒤로하고 열일곱 살에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저 또한 열일곱 살에 독립해 좌충우돌하며 살아냈으니 형제도 잘 살아 내리라 굳게 믿었습니다. 선생님의 의심은 기우였고 저의 믿음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형제는 2년 동안 실습을 잘 마치고 졸업하자마자 그 회사에 정사원으로 취업이 되었습니다. 


첫 월급을 받으면 엄마 먹고 싶은 것 사드리고 싶다고 하던 형제, 첫 월급을 받았다고 뭘 드시고 싶으냐고 자꾸만 물었습니다. 첫 월급 받았다고 밥을 사주겠다니 말만으로도 고맙다고 해도 꼭 사드려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메뉴를 고르라는 말에 할 수 없이 육식보다는 해산물이 더 좋기는 한데 하고는 말끝을 흐립니다. 해물탕, 굴비정식, 갈치조림, 생선정식, 회덮밥 등이 떠오르지만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쥐꼬리만 한 첫 월급인데 점심 값이 너무 많이 나가면 안 될 것 같아 망설입니다. 결정 장애를 가진 사람처럼 망설이는 엄마에게 “알았어요. 그럼 제가 고를게요.”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예약해 놓았다고 수원으로 오라고 해서 그냥 가볍게 점심을 먹고 올 생각으로 형제를 만나러 갔습니다. 함께 간 곳은 킹크랩 요리 전문점이었습니다. 저는 킹크랩을 먹어 보지 않아 값이 얼마나 하는지 맛은 어떤지 모릅니다. 형제는 주방장과 함께 가서 랍스터를 고르고 저는 방으로 안내되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랍스터 요리가 눈앞에 있습니다. 시가 50만 원이라고 합니다. 186만 원 첫 월급을 받아 점심 한 끼 밥값으로 50만 원을 지출합니다. 제 배짱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이놈의 자식 돈 무서운 줄 모르나?)하는 마음을 감추고 그냥 웃으며 한 끼 밥값으로 이 많은 돈을 써도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웃음 속에는 눈물이 숨어있습니다. 형제는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께 꼭 한번 좋은 식사 대접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지금 아니면 언제 대접하겠습니까. 돈은 벌면 되는 거니까 걱정 마시고 맛있게 드세요” 합니다.


 잘 자라준 형제가 감사이고 기쁨이고 보람이기에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 같았습니다. 형제는 어머니가 자기를 키워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고 합니다. 어머니께는 무엇을 해드려도 아깝지 않다고 합니다. 형제가 살아갈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하고 언제나 응원해 주며 용기를 주는 어머니는 세상에 둘도 없는 단 한 사람입니다.  형제는 자기를 100%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단 한 사람이 있어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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