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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May 20. 2023

7. 도벽이 병일까?

다른 아이

7. 도벽이 병일까?     


지우는 여섯 살 여자 아이입니다.  속옷에 고름이 묻어날 정도로 아토피가 심해서 어린아이의 보드라운 피부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 지우도 앞니가 하나 빠진 이빨을 드러내며 해맑게 웃을 때는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첫째 아이에게 무한 사랑을 쏟아붓듯이 DNA가 다른 아이로 만난 첫 번째로 만난 지우에게 남다른 관심이 갑니다.     


경부암 수술 후 7년째 되던 해 정기검진을 하러 서울대학 병원을 향해 가던 고속버스 안에서 수양부모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교육을 받은 후 정릉까지 가서 만난 아이입니다. 지우는 세 자매 중 맏언니로 작은 체구와는 다르게 다부진 구석이 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세 살 동생을 업고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넘어질 같아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데 지우는 불안한 기색 하나 없이 동생을 업고 왔다 갔다 합니다. 세 자매가 뿔뿔이 흩어져 다른 집으로 보내진다는 것을 아는 지우가 동생과 헤어지기 싫다고 비틀거리며 동생을 업고 있었던 것입니다.     

담당 선생님은 지우를 불러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저를 소개했습니다. 지우는 곁눈으로 한번 힐끗 보고는 동생이랑 같이 가겠다고 웁니다. 네 살인 동생은 다른 위탁가정으로 가고 세 살 동생은 입양을 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순전히 어른들의 결정이었습니다. 지우와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았고 어른들 마음대로 결정해서 동생들과 헤어져야 하는 것이 화가 납니다. 가지 않겠다고 울고 떼쓰며 주저앉아 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지우는 세 살 동생을 내려놓고 처음 만나는 낯선 아줌마를 따라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타며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갑니다. 지우는 이제 아는 사람도 없고 길도 모릅니다. 엄마를 놓치지 않으려고 손을 꼭 잡고 따라옵니다. 엄마는 지우에게 사탕을 하나 건넵니다. 달콤한 맛이 지우의 떨린 가슴을 진정시키며 착한 아줌마라는 생각에 안도합니다.     


시골의 전원주택은 지우에게는 천국입니다. 동생과 떨어지기 싫어 울고불고 난리를 쳤던 기억은 아스라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마당에서 뛰어놀다 만나는 나비, 방아깨비, 메뚜기, 지렁이, 개미 등 지우를 놀라게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며칠 지나자 4학년 언니를 따라 병설 유치원에 다니도록 해주고 피아노 학원에도 보내줍니다. 망나니처럼 거침없이 뛰고, 올라가고, 내달리며 살다 보니 피고름이 묻어나던 속옷이 깨끗해지기 시작합니다. 지우는 가렵지 않고 보드라운 자기 피부가 신기해서 자꾸만 만져봅니다.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저는 밝고 귀여운 지우를 바라보며 행복하고 동생도 못 낳는 바보라고 나도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4학년 언니는 소원대로 동생이 생겨서 행복하고 지우는 마음껏 먹을 수 있고 놀 수 있어 행복합니다. 시간은 순식간에 흐르고 몇 개월 지속되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4학년 언니가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을 팽개치며 “내가 창피해서 학교에 못 다니겠어요. 지우가 무슨 짓을 한 줄 아세요. 문방구에서 쫄쫄이를 사다 4학년 오빠들에게 주고 돈도 나누어 주고 그랬어요. 돈이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고 자기 친구들하고 놀지 않고 3~4학년 오빠들을 따라다녀요” 저는 너무 놀라 유치원 가방을 열어 보았습니다. 동전 몇 개 천 원짜리 지폐 두 장, 오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 있었습니다. 이 돈이 왜 지우가방에 있는지 물었지만 말이 없습니다. 앙다문 입술이 말을 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줍니다. 저는 회초리를 가져와 지우의 종아리를 때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지우의 종아리를 세대 아프게 때려주었습니다. 그때야 지우는 학교 선생님 가방에서 가져왔다고 이실직고했습니다. 남의 물건을 만지고 몰래 가져오면 절대로 안 된다고 단단히 가르치고 종아리를 아프게 세대 때려주었으니 다시는 남의 돈을 훔치지 않으리라 믿었습니다. 그 믿음은 저만의 믿음이었습니다. 다음 날 외출했다 돌아온 저는 가방을 거실 한 구석에 던져 놓고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순간 얼음이 되었습니다. 지우가 저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순간 저와 눈이 마주쳐 지우도 얼음이 되었습니다.      


지우는 저의 지갑뿐만 아니라 옆집 구멍가게의 일곱 살 오빠를 꼬드겨 금고에서 돈을 가져오게 하고 유치원 선생님 가방에서 돈을 훔치는 등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려서 될 일이 아님을 파악하고 모든 가능한 환경을 차단하기 위해 주변의 협조를 구했습니다. 저도 가방을 지우의 눈에 보이지 않는 높은 곳에 넣어 두고 선생님께도 가방을 캐비닛에 넣고 잠가 놓으시면 좋겠다는 부탁을 했습니다. 옆집 구멍가게에는 금고를 항상 잠가 놓거나 자리를 비우지 않기를 부탁하며 협조를 구했습니다.      


도벽은 참 무섭습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물건을 훔치는 경지까지 가면 도벽은 정신건강 장애로 간주되며 충동조절 장애로 분류됩니다. 지우는 그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발견되어 저와 선생님과 동네 어른들이 함께 유기적으로 협조하였습니다. 지갑이 든 가방은 지우의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 보관하고 금고를 잠그도록 부탁함과 동시에 지우가 혼자 있어 외롭지 않도록 했습니다.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나자 아토피가 서서히 사라지듯 다른 사람의 지갑에 손을 대던 습관도 사라졌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는 것은 그 아이를 둘러싼 환경과 그 환경을 만들어가는 모든 사람이 함께해야 합니다. 내 아이만 잘 키운다고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잘못 성장한 한 아이가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성장한 불특정 다수를 해칠 수도 있으니까요. 한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고, 안전하게 놀 수 있으며, 적극적으로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열린 지역사회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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