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길 조경희 May 29. 2023

생후 6일

다른 아이

10. 생후 6일     


아기가 태어나서 6일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기다림의 끝에서 태어나 축복 속에서 행복한 시간을 맞이한 아기도 있고 아기를 집어 삼길 기회를 찾는 저승사자의 혀끝에 위험천만하게 놓여 있는 아기도 있습니다. 생후 6일 만에 저승사자의 날름거리는 혀끝을 간신히 피해 저에게 온 아기가 있습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려 온 세상을 평화로 덮어 버리고 도로를 마비시킨 1월의 어느 날 새벽, 아기는 작은 이불에 싸여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배꼽도 떨어지지 않았고 눈도 뜨지 않았으며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아기는 지금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 채 쌔근쌔근 잠들어 있습니다. 아기 옆에는 바닥이 들여다보이는 500ml 분유통과 기저귀 2장, 아기 수첩과 죄인처럼 두 손을 앞으로 다소곳이 모으고 고개를 푹 숙인 한 청년과 도움을 요청하는 애절한 얼굴로 저를 처다 보는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경찰에 신고해야 할까요?     


1주일 후면 1년 동안 준비한 사회복지사 1급 시험을 보는 날입니다. 아기를 받아들이면 갓난아기를 키운 것이 25년이 넘었으니 모든 것이 새로워 정신 못 차릴 것은 분명하고 사회복지사 1급은 물 건너갈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살려야 했습니다. 저는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스펙이 아닌 아기를 선택했습니다. 바가지로 바닷물을 퍼내는 것 같은 작고 작은 일이라 해도 나는 돌봄을 받지 못하는 한 아이를 위해 살겠다고 생각했던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일단 방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자고 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 새벽 위험을 무릎 쓰고 눈길을 달려 아기를 데리고 온 청년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학교 밖으로 나온 학생이고 옆에 있던 여학생은 아르바이트를 같이 하는 친구라 했습니다. 아기 엄마는 고등학교 3학년인데 부모님 몰래 국민 행복 카드를 발급받아 병원에서 아기를 낳았는데 여기저기 알아보았지만 아기를 보낼 곳이 없었다고 합니다. 너무 답답하여 함께 아르바이트하는 여학생에게 이야기했고 형제가 많은 집에서 살고 있던 여학생은 아이가 어떻게 될 것 같은 불안감에 앞뒤 생각하지 않고 아기를 안고 자기 집으로 갔습니다. 


여학생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해서 아르바이트를 통해 학비와 용돈을 마련하여 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집에서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당장 분유와 기저귀를 살 돈도 없는데 어쩌자고 피도 안 마른 아기를 데려왔냐고 야단을 쳤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여학생의 엄마는 언니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언니는 한 달 전 35년 만에 새롭게 생긴 초등학교 동창 밴드를 통해 연락처를 알게 된 저에게 오밤중에 전화를 해서 미친*이 자기 집 형편도 생각 못하고 갓난아기를 데리고 와서 이 난리를 치고 있는데 도와 달라고 했었습니다.      


대상자가 학생이면 선입소하고 후에 서류 절차를 밟을 수 있지만 학생이 아니면 서류를 통한 절차가 먼저라고 했는데 친구는 대상자를 아기를 낳은 학생으로 알아듣고 학생들이 아기를 낳았으니 그냥 먼저 가면 된다고 그렇게 전달했나 봅니다.(지금은 몇 번의 상담을 거쳐 행정기관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함) 그곳에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 새벽 빙판길에 목숨 걸고 달려왔습니다.      


아기의 아빠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도와주세요’ 하는데 180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건장한 청년의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습니다. 아기보다 아빠의 불안을 진정시켜야 했습니다. 옛날에는 열세네 살에도 시집가고 장가가서 아기를 낳았는데 지금은 법이라는 것이 미성년자로 분류하여 미성년자가 아기를 낳으면 죄인 취급하고 있다. 지금도 어떤 나라에서는 그 나이에 결혼하고 아기를 낳는 경우도 있으니 죄인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아기를 살리기 위해 빙판길을 달려 이곳까지 와준 것이 고맙고 기특하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미성년자가 아기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고 지금은 공부해야 하는 시기이니 아기는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안심시켰습니다. 그제야 아빠는 한숨을 쉬며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이 부잣집 귀공자 같습니다.     


실체는 있으나 존재는 없는 아이.     


날이 밝고 공무원들이 출근하는 시간을 기다려 상황을 알렸습니다. 담당 공무원도 한 아이의 엄마로 아기를 살리는데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문제는 미성년자가 아기를 낳으면 부모 동의가 있어야 출생신고가 가능하다는 것이고 또 남자는 아기를 낳았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아기를 낳은 엄마가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께 절대 알릴 수 없다고 완강하게 거부하는 남학생을 설득하는 것도 어려운데 아기를 낳은 엄마를 만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으니 출생신고는 해주어야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득하고 또 설득하여 간신히 그렇게 하겠다는 대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기의 아빠와 같이 온 여학생은 돌아갔습니다. 그다음은 저의 몫입니다. 당장 아기가 먹을 분유와 기저귀, 그리고 목욕시킬 아기욕조, 짓무르지 않도록 발라주는 가루분까지 준비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출생신고가 되어야 그다음 행정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저는 조급하기만 한데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속담처럼 아기의 아빠는 일단 아기를 맡겼으니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듯 느긋하기만 했습니다. 아기가 태어난 지방의 담당 공무원은 아기의 할머니와 아기 엄마가 함께 오고 병원에서 출생증명서를 가지고 오지 않으면 출생신고가 불가하다고 선언하여 할 수 없이 아빠의 주소를 저희 집으로 옮겨 제가 있는 지역의 공무원들과 유기적으로 협조하기로 했습니다.


여기까지 올 교통비가 없다는 아빠에게 교통비를 보내주고 아기 할머니의 전화번호를 겨우 받아 조심스럽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내 잘못이라고 할 뿐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내려와 아기를 보고는 한 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빠의 멱살을 잡고 뒤흔들며 이게 무슨 일이냐는 울부짖음은 이미 집에서 끝내고 왔는지도 모릅니다.  


다음은 엄마 차례입니다. 엄마는 출생신고 절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순순히 내려왔습니다. 바비 인형 같은 엄마는 예쁘고 사랑스럽고 귀하게 컸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고 가만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와줘서 고맙다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면사무소에 가서 출생신고 절차를 진행하는데 이름을 뭐라 할 거냐고 물었더니 하늘이라고 하겠다고 합니다. 하늘처럼 높고 깊고 푸르게 성장하여 세상을 비추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를 담은 태명이라 했습니다.      


그렇게 하늘이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것이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국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상황은 살라집니다. 국적취득을 하기 위해서는 국적취득을 위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 심의에 통과해야 합니다. 출생신고는 국적을 취득하는 일이고 국적이 없으면 그 나라의 국민으로서 누릴 권리와 혜택을 누릴 수 없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바늘구멍을 뚫고 나가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어렵습니다.      


하늘이는 생후 6일 동안의 일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무의식에 새겨진 불안은 열 살이 된 지금도 엄마가 꼭 자기를 버려두고 가버릴 것 같은 두려움과 공포를 느낍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가 집에 없으면 전화를 해서 어디 갔느냐고, 왜 말하지 않고 갔냐고 화를 내며 웁니다. 울음 끝에는 ‘엄마 사랑합니다.’로 마무리하며 끊임없이 엄마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물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무의식에 새겨진 하늘이의 불안은 언제쯤 해소될지 모릅니다. 그때까지 무한반복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버리지 않을 것을 확인시켜 주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갓난아기도 몸으로 경험한 것을 무의식에 기록하고 그렇게 축적된 무의식이 아이의 삶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잉태된 순간부터 한 인간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사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9. 내가 나하고 노는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