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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May 31. 2023

11. 만약 아이가 갑자기 일어서지 못한다면?

다른 아이

11. 만약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아이가 일어서지 못한다면?     


만약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아이가 일어서지 못한다면 엄마는 무엇을 어떻게 할까요? 


아마도 심장은 조여들고 열은 머리로 치솟으며 온갖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휘감아 정신이 몽롱해질 겁니다. 병원 문을 열려면 아직 멀었고 피를 흘리는 위급한 상황은 아니니 응급실로 가기에는 뭔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안절부절못하고 불안에 떨다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나 보라고 아이만 다그치다 부둥켜안고 아이도 울고 엄마도 울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제가 딱 그랬습니다.      


감기로 열이 오르내리던 미니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일어서지 못하고 주저앉았습니다. 몇 번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나 보라고 일으켜 세우다 미니도 울고 저도 울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전날 갔던 소아과에 가서 의료급여의뢰서를 발급받아 눈물로 흐려진 시야를 손등으로 훔치며 어떻게 대학병원까지 갔는지 기억에 없습니다. 그렇게 찾아간 대학병원에서 어처구니없게도 진료를 거부당했습니다. 의료급여환자는 2차 병원에서 의료급여의뢰서를 발급받아 와야 하고 진료를 받고 싶으면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는 일반진료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단 미니가 왜 갑자기 걷지 못하는지, 앞으로 걸을 수는 있는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급해서 일반으로 진료하고 입원해서 더 검사해 보자고 하는 것을 혈액검사 결과에 따라 입원하겠다고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미니가 걸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니뿐만 아니라 다른 의료보호를 받는 아이들이 동일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생각에 국민신문고에 의료급여환자에 대한 의료보호체계 개선을 제안했습니다.    

 

의료보호체계 개선 제안 내용 원문 그대로를 올립니다.     

<현황 및 문제점>

여섯 살 막내가 독감에 걸려 며칠 동안 열이 오르고 아팠습니다.

그런데 어제 아침에 일어나더니 걷지 못하고 다리고 아프다고 합니다.

독감 때문에 병원에 가는 길에 아이의 상태를 이야기했더니 의사 선생님이 진료의뢰서를 써주며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라고 합니다.


독감치료를 받는 아이 중에 다리부터 마비가 와서 머리까지 마비증상이 오는 경우가 있다는 보고가 올라온다는 이야기를 하며 바로 좋아질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으니까 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안성에서 가까운 천안단국대학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진료의뢰서를 가지고는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고 2차 병원에서 의료급여의뢰서를 발급받아 오라고 합니다.


아이가 아파서 걷지 못하고 대학병원에 가서 순서 기다리는 것도 오래 걸리는데 아픈 아이 데리고 왔다 갔다 할 수 없어 그냥 진료하고 서류 가져와서 돌려받겠다고 했더니 어제 오후 5시까지 오라고 합니다.

어쨌든 아이 진료가 먼저라 일반으로 처리해서 100% 본인부담으로 진료했습니다. 피검사와 소변 검사 그리고 수액 맞는 것으로 결정하고 그렇게 진행하는데도 하루가 걸렸습니다.


결국 5시까지 서류 가져가지 못했고 진료비는 고스란히 내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금요일 오후 1시 50분 예약이 되어 있어 오늘 안성에 있는 병원 급 진료기관에 갔더니 의원에서 의료급여의뢰서를 발급받아오라고 합니다. 평소 다니던 소아과의원에 가서 의료급여의뢰서를 발급해 달라고 했더니 누가 이런 제도를 만들었는지 민원을 넣어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일반인들은 진료의뢰서 하나만 가지면 1차 의료기관에서 바로 3차 의료기관으로 갈 수 있고 2차 의료기관은 의뢰서 없이도 가는데 의료보호환자는 반드시 1차 2차 3차 단계를 밟아야 하고 그때 의료급여의뢰서를 가지고 가야 의료보험적용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2차 병원에서는 1-2년 전부터 어느 날 갑자기 공문도 없이 생긴 것 같다고 대소서 직원도 아니고 한 번도 진료를 하지 않은 아이의 의료급여의뢰서를 발급해 달라고 할 때는 황당하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위급한 상황이 되어 바로 3차 의료기관으로 갈 경우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위급한 상황에서도 1차 2차 3차 의료기관의 수순을 밟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런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의료체계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의료보호환자의 경우 1차 병원에서 진료를 하고 치료가 어려운 경우 의료급여의뢰서를 발급받아 2차 병원에 가야 하고 2차 병원에서 치료가 어려운 경우 똑 같이 의료급여의뢰서를 발급받아 3차 병원에 가야 합니다. 일반 건강보험 환자의 경우 1차 병원이나 2차 병원은 그냥 가셔 진료할 수 있고 3차 병원에 갈 때만 진료의뢰서를 가지고 가면 됩니다.  

   

응급 의료보호환자가 1차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듣고 진료의뢰서만 가지고 급한 마음에 3차 병원을 가게 되면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고 2차 병원에 들러서 의료급여의뢰서를 발급받아 오라고 합니다. 만약 100% 본인부담으로 진료받고 환급받으려면 그날 오후 5시까지 지역의 2차 병원에서 의료급여의뢰서를 발급받아 제출해야 합니다.     


일반인은 물론 1차 병원의사 선생님들도 정확하게 언제부터 이런 제도가 적용되었는지 알지도 못하고 한 번도 보지 않은 환자의 의료급여의뢰서를 발급해 달라고 오는 보호자들 때문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차별행위이고 건강권을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의료보호환자나 일반 건강보험 환자나 동등하게 치료받을 권리가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개선방안>

의료보호환자도 일반 건강보험 환자와 동등하게 1-2차 병원을 선택해서 갈 수 있도록 하고 3차 병원을 이용할 때도 진료의뢰서를 가지고 가면 의료보험 적용이 될 수 있도록 개선되어야 합니다.     


<기대효과>

1. 의료보호 환자들이 위급한 상황에서 100% 자부담으로 진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인하여 다시 2차 진료기관을 찾는 사이 환자의 상태가 더 나빠지고 치료시간이 지연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2. 의료보호환자의 상태가 위급하여 100% 자부담으로 치료하는 경우 의료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어려운 경제적인 상황을 악화시키는 상황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엄청나게 순화시켜 제안 내용을 썼던 것 같습니다. 목적이 분풀이가 아닌 의료보호체계 개선에 있었으니 관계자들을 자극하지 않고 차별행위와 치료받을 권리에 대한 주장을 통해 의료보호체계가 개선되도록 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2019년 4월 29일에 제안한 내용이 『의료 급여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이 공포되면서 바로 2019년 7월 1일부터 15세 이하 아동과 장애인의 의료급여 절차가 완화되었습니다. 불과 두 달 만에 『의료 급여법 시행규칙』이 일부 개정되어 시행된 것은 굉장히 빠른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3년이 지난 2022년 4월 1일에 결과에 대한 안내가 메일로 왔다는 사실입니다. 제안을 해놓고 미니가 건강을 회복하여 다시 걷게 되자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만약 중간에 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시행규칙이 개정된 것도 모르고 똑같은 절차를 밟았을 겁니다. 지금도 법이 바뀐 줄 모르고 오래전 관습을 되풀이하며 안 된다고, 2차 병원에서 의료 급여 의뢰서를 받아오라고 하는 3차 병원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안내문을 코앞에 들이밀며 여기 이렇게 시행규칙이 개정되었다고 두 눈으로 똑똑히 보라고 소리를 질러야 합니다.     


저를 비롯한 소시민들은 밟으면 꿈틀거리는 지렁이처럼 불편하고 부당한 것들에 대하여 꿈틀거려 여기 차별받는 인간이 있음을 알려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떼를 이루어 꿈틀댄다면 징그러워서라도 해결해 주지 않을까요?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서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해 꿈틀거림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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