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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Jun 01. 2023

12. 구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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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구라야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부터 말에 대하여 경고하는 속담이나 격언이 참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 쉽게 말을 뱉고 주워 담지 못해 쩔쩔맬 때가 있습니다.      


6학년 때 만난 하루는 뽀얀 피부에 편안한 얼굴로 주변에 여자 친구들이 많습니다. 여자 친구들과 노는 것이 재미있다고 합니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여자 친구 새로 사귀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데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몇 개월까지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여자 친구가 바뀌었습니다. 남자 친구들은 그런 하루를 부러움의 눈으로 바라보고 하루는 자랑스럽게 여자 친구와 뭘 했는지 이야기하며 으스댔습니다.      


그날도 남자 친구들과 장난치다 여자 친구와 잠자리를 같이 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남자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 위해서 한 말인데 순간 아차 싶어 ‘구라야’하며 수습하려고 했지만 이미 친구들  사이에서 일파만파로 퍼져버렸습니다. 급기야 하루를 좋아하던 여자 애들이 떼로 몰려가 하루의 여자 친구를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며 사실이냐고 다그쳤습니다. 여자 친구는 사실이 아니라고 했지만 믿지 않고 폭력은 계속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여자 친구의 엄마는 학교 폭력으로 경찰에 신고했고 하루는 경찰 조사를 받고 학교에서는 선도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아무리 장난으로 한 말이라고 해도 그 말 때문에 집단폭력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여자 친구의 엄마는 용서할 수 없다고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고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습니다. 다행히 검찰에서 재조사를 하라고 평택 가정법원으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가정법원에서 현재 양육자인 저를 참고인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하루와 함께 오라는 통보가 왔습니다. 무슨 말을 물어볼까? 나는 뭐라고 답변해야 하나. 머리가 복잡하고 어지러웠지만 분명한 것은 하루가 틀렸다 해도 저는 하루 편이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이들과 그렇게 약속했기 때문에 끝까지 하루 편에 서서 변호하고 싸워야 하는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법원에서 당당하게 하루를 변호할 수 있을지 두려웠습니다.      


하루와 저는 각기 다른 조사관 앞으로 불려 가 조사를 받았습니다. 저는 하루가 얼마나 동생들하고 잘 놀아주는지, 약속한 것은 지키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저를 잘 도와주는지 이야기했습니다. 꼬치꼬치 캐묻는 조사관에게 일관되게 하루의 착함을 언급하며 선처를 부탁하다 갑자기 배를 칼로 도려내는 통증에 배를 움켜잡고 화장실로 뛰어갔습니다. 문을 잠그고 변기에 앉아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통증을 참으며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처음 겪는 일이라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는데 온몸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한여름 소낙비 같이 쏟아졌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금니를 꽉 깨물고 통증이 사그라들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하루가 전화를 해서 어디 있냐고 했을 때야 정신이 들어 화장실에 있는데 아파서 그러니까 조금 기다리라고 하고도 10분은 더 진정시킨 후에야 겨우 밖으로 나왔습니다. 


참고인 조사는 저의 예상치 못한 통증으로 마무리되고 하루와 함께 법원을 나올 수 있었는데 한 시간 정도 어떻게 운전해서 집에 가느냐는 또 다른 문제가 눈앞에 있었습니다. 이대로 운전하는 것은 너무 위험할 것 같아 하루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에 가라고 하고 저는 차에서 조금 더 기다려 진정시킨 후에 가기로 했습니다.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붙잡고 배 안의 상황이 정리되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도무지 진정될 것 같지 않은 여진은 계속되는데 버스를 타러 갔던 하루가 되돌아와서 저와 같이 가겠다고 했습니다.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시동을 걸었는데 어떻게 집에 왔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하루와 저는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하루가 의도하지 않은 일이고, 처음 있는 일인 데다 여자 친구의 부모가 용서해 줌으로 봉사 20시간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저희 집 화장실 문 안쪽에는 ‘말 한마디’가 붙어 있습니다. 볼일을 볼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앞을 보면 눈앞에 다가오는 말 한마디를 뼛속에 새기라는 의도였는데 하루는 글자로 읽고 의미를 새기지 않았다 몸으로 혹독한 경험을 통해 엄마의 가르침이 옳았음을 느꼈습니다.   

                

감정이 상하면 폭풍처럼 아무 말이나 쏟아 놓고 돌아서서 나는 다 잊었다고, 쿨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의 쿨함은 자기 합리화를 위한 방어 기제일 뿐 멋있거나 자랑할만한 성품이 아닙니다. 상대방은 당신이 한 말이 비수가 되어 심장을 관통해서 피를 철철 흘리며 아파하고 있을 테니까요. 당신이 던진 말 한마디에 누군가는 깊은 상처를 받아 죽음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오늘 하루 어떤 말을 가장 많이 사용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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