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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Jun 09. 2023

13. 떼쓰는 것도 의사표현일까?

다른 아이

13. 떼쓰는 것도 의사표현일까?     


맞습니다. 의사표현입니다. 


달리 의사표현 방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가 몸으로 말하고 있는 겁니다. 아이의 잘못은 아닙니다. 아이가 태어나 울고 떼를 써야 반응했던 주 양육자의 잘못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할 줄도 모르는 아이는 떼를 써야 관심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떼를 써야 관심을 받는다는 알고리즘이 뇌에 새겨져 알고리즘에 의한 의사표현일 뿐입니다. 


간식이 마음에 안 들어도 떼쓰고, 옷이 조금만 불편해도 떼쓰고 마트에서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다고 떼를 씁니다. 처음에는 조금만 떼를 써도 달려오던 엄마도 점점 지치고 힘들어 어느 정도까지는 무관심합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힘과 고집이 세지고 엄마는 지쳐 가는데 떼쓰기 강도는 점점 세져 60.0m/s(2003년 발생한 매미의 순간최대풍속)의 강풍으로 엄마에게 휘몰아칩니다.      


그렇게 떼쓰는 것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우람이 가 저에게 왔습니다.     

일곱 살에 만난 우람이는 몸은 일곱 살이나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세 살입니다. 그렇다고 지적장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 살에 경험하고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지 못해 지금 배워가고 있는 중입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모든 말을 떼쓰는 것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별 것도 아닌 것을 트집 잡아 떼를 씁니다. 아침에 유치원에 가기 위해 옷을 입으라고 하면 입고 싶은 옷이 없다고 떼를 씁니다. 어제 입었던 옷이고 밤사이 빨아 건조기에 말렸으니 입어도 된다고 해도 그 말은 귀에 들리지 않나 봅니다. 


누가 자기 장난감을 만졌다고 떼쓰고, 풀을 달라고 했는데 저녁 준비하고 있는 엄마가 즉각 풀을 주지 않았다고 떼를 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모두가 엄마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년에는 1학년에 입학해 공부를 해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서고 마음이 급해집니다. 한글 카드를 보여주며 그림으로 한글을 기억하도록 매일 반복합니다. 열 장이 넘어가고 한 번 더 반복하면 우람이 의 인상은 찌그러지고 입은 댓 발이나 나오며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톤을 높여 속사포처럼 쏘아댑니다. 왜 많이 하냐. 왜 또 하냐, 하기 싫은데 왜 자꾸 하라고 하냐는 말을 반복하며 짜증을 냅니다. 한글을 모르면 책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바보가 된다. 엄마는 우람이 가 바보가 되는 것이 싫어서 한글을 가르쳐 주려고 하는 것이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듣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아이의 요구에 따라 양을 줄여주거나 반복하지 않으면 아이에게는 떼쓰면 이루어진다는 등호가 성립되고 떼쓰기=이루어짐은 불변의 법칙으로 각인됩니다. 구구절절 설명한다고 해도 아이에게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 순간 듣는 귀는 마비되고 자기 느낌만 살아 활개를 치는 것 같습니다.     


오 은영 의원 소아클리닉 오 은영 원장님도 설명하지 말고 단호하게 열 마디 이하로 말하는데 두 번 이상 반복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주대 병원 전문의학과 교실 조선미 교수님도 설명하지 말고 지시하라고 합니다. 모든 것을 떼쓰는 것으로 의사 표현하는 아이에게는 설명이 귀에 들리지 않으니 짧고 단호하게 지시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단호함과 견딤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저는 의사도 아니고 상담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도 아닙니다. 22년 동안 제 아이들을 포함해 21명의 아이들을 양육하며 다양한 상황을 만나 문제가 무엇인가 생각하며 치열하게 해결방법을 찾다 보니 얻은 나름의 지혜입니다. 오은영 박사님이나 조선미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저의 해결방법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방법이 잘못되었다면 그동안 제가 양육하고 가르쳤던 아이들이 잘못된 인지구조를 가지고 사회에 나갔을 테니까요.     


 우람이 가 현장학습 가는 하늘이의 도시락을 싸느라 뒤늦게 아침을 먹는 저에게 다가와 하늘이 형 도시락 챙기느라고 밥을 늦게 먹느냐고 묻었습니다. ‘응’이라고 대답하자 배고프겠다고 합니다. 떼를 쓰며 성질을 부리던 우람이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그 마음과 표정이 어찌나 예쁘던지 피로가 한방에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설득의 심리학이 통하지 않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런 아이는 설득하려고 하면 엄마는 지치고 아이는 엄마 말을 안 듣는 못된 놈이 됩니다. 엄마의 말을 아직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열 마디 이하로 단호하게 두세 번만 반복하고, 아무리 떼를 써도 설명하려고 하지 말고 지시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렵습니다. 언제부터 왜 그런 습관이 자리 잡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언제쯤 말로 의사표현을 할 수 있을지 정해진 기한도 없습니다. 그냥 이쯤에서 포기하고 싶어 집니다. 그렇다고 정말 포기해 버리면 안 됩니다. 엄마는 마지막 보루니까요.     


우람이는 오늘도 떼를 쓰는 것으로 말을 합니다. 몸으로 말하는 횟수와 강도가 줄어들고 있으나 아직은 완전히 말로 의사 표현하는 것이 체질화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단호함과 견딤과 기다림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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