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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Jun 12. 2023

17. 저의 직업은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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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저의 직업은 엄마입니다     


국가 통계 포털에 따르면 2021년 12월 기준으로 2,267개의 직종이 있고 약 2,868만 명이 근로자로 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지만 엄마라는 직업군은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엄마라는 직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권리는 없고 의무와 책임만 있는 엄마, 감정노동자이고 노동의 강도는 세지만 보상은 적은 극한 직업 중의 하나입니다. 직업은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 기간 일하다 정해진 기간이 되면 어깨에 짊어진 책임과 의무를 내려놓고 자유인이 되는데 엄마라는 직업은 그런 자유가 허락되지 않습니다. 기간도 없고 책임과 의무를 벗어던질 수도 없는, 한번 엄마는 영원한 엄마입니다.      


새벽 2시 30분 세상이 잠든 고요한 시간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연우의 전화입니다. 이 새벽에 무슨 일인가 화들짝 놀라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낯선 남자가 ‘여보세요’합니다. 심장은 정지되기 일보 직전으로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무슨 보이스피싱인가? 어떻게 하지? 찰나의 시간에 오만 생각이 뒤엉킵니다. 남자는 경찰인데 아드님이 **아파트 상가 옆길에 만취상태로 쓰러져 있고 이마에 상처가 났는데 지금 오셔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애가 그 아파트 210동 501호에 사는데 데려다주시면 안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만취한 사람을 혼자 두는 것은 안 된다고 119 구급대 불러서 중앙지구대로 이송할 테니 지금 중앙 지구대로 오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배 아파 낳은 아들이라면 두 손 바들바들 떨며 달려갔을까요?     


순간 저는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달려가지 않고 연우가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는 아파트로 데려다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혼자 둘 수 없다고 했습니다. 길거리에 만취 상태로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연고자를 찾아 인수인계한다는 매뉴얼을 따라야 하기 때문일 겁니다.     


잠자다 말고 이 무슨 날벼락인가. 만취 상태라는데 180cm의 20대 중반 청년을 158cm의 내가 부축해서 집에 데려다줄 수 있을까, 경찰이 만취 상태라 집에 혼자 둘 수 없다고 데리러 오라고 했는데 그럼 집으로 데려와야 하나, 모두가 자고 있는데 집에 데려오면 어느 방에서 쉬도록 하지, 과연 혼자 데려올 수나 있는 걸까?, 누구 함께 갈 사람 없나?, 순간의 시간에 생각은 뒤엉키고 몸은 움직이며 준비하는데 중3 도담이가 화장실에 있었습니다. 


대뜸, 빨리 나와서 함께 어디 갔다 오자고 했습니다. 도담이는 이 시간에 어디를 가자고 하는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유 묻지 말고 그냥 따라오라고 하고 자동차 키를 챙겨 나갔습니다. 화장실에서 휴대폰을 하다 딱 걸린 도담이는 야단맞을까 봐 영문도 모르고 잠옷 차림에 겉옷만 걸치고 따라왔습니다. 텅 빈 도로가 무섭습니다.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차가 와서 덮칠 것만 같습니다.     


차에 올라 앞을 보고 가면서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도담이는 꼬치꼬치 묻습니다. 엄마 머리가 복잡하고 새벽 난폭운전을 하는 차량들이 있다는 뉴스가 생각나 온몸이 경직되어 긴장하고 운전해야 하는데 나중에 물어봐달라고 부탁하자 무거운 침묵이 밤이슬처럼 내립니다.      


중앙지구대에 도착하자 누구냐고 묻습니다. 순간 또 망설입니다. 그리고 사회복지 시설의 장이라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굳이 사회복지시설의 장이라고 말해야 했을까, 가족관계 증명서를 확인할 것도 아닌데 왜 그래야만 했을까, 엄마라고 하면 자식을 잘못 키운 엄마로 비난의 화살을 맞을까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연우가 술에서 깨어나 이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슬플까. 연우의 휴대전화에 엄마라고 저장되어 있어서 전화를 한 것이라는 경찰의 말에 ‘제가 엄마로 아이를 키웠으니까요’라는 대답으로 양심의 가책에서 조금 비켜섰습니다.     


 연우의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전화번호를 묻고 저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물었습니다. 조금의 더듬거림도 없이 술술 진술하는데 전화번호 뒷자리가 같습니다. 아들임이 증명되는 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경찰은 한 장의 종이를 내밀며 서명을 하라고 합니다. 인수자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연우가 물건도 아닌데 인수자라 합니다. 달리 방법이 없어 이름을 두 번 쓰는 것으로 서명을 합니다. 여기에도 써야 한다고 해서 보니 관계를 묻고 있습니다. 친모가 아닌데 모라고 쓰는 것도 거짓말 같고 그렇다고 사회복지사라고 쓰는 것은 더 이상하고 평소에 학교 제출 서류에 사용하던 모가 들어간 위탁모라고 씁니다.     


연우는 이마에 찰과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정신 못 차리고 의자에 기대어 있었습니다. 깨어나면 기억을 못 할 겁니다. 경험해 보지 않았으나 만취했다 깨어난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며 연우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힘에 부쳐 제가 넘어지자 경찰과 119 구급대원들이 자기네가 태워 줄 테니 비켜나라고 합니다. 차에 타지 않으려고 두 팔로 차 문을 잡고 완강하게 버티는 연우를 차에 타야 한다는 말로 수차례 설득해서 겨우 차에 태웠습니다.     


집에 도착하기는 했으나 차에서 내리는 것부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힘으로는 안 되고 연우 스스로 내리도록 해야 하는데 도무지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이리저리 픽픽 쓰러집니다. 차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20m 정도 되는데 보도블록을 비롯한 화분 같은 장애물들을 피해 어떻게 부축해서 들어갈지 참 난감했습니다. 결국 연우가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걷게 만드는 방법밖에 없어 큰 소리로 정신 차리라는 말을 반복하는 사이 온 집안 식구들이 잠에서 깨어나  눈을 비비며 무슨 일이냐고 뛰어나왔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     


배 아파 낳은 자식도 성장해서 독립하면 서로가 바쁘게 사느라 한 달에 한번 소식을 주고받기도 쉽지 않습니다. 어쩌다 전화해서 잘 사는지 연락은 한 번씩 해야지 하면, 무소식이 희소식이잖아요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용돈이 떨어져야 전화하고 아쉬운 일이 있을 때 찾았던 것 같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옛말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연우와 함께 살 때는 사회에 나가 잘 살아가도록 이것저것 챙기고 가르쳤지만 독립해서 잘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한 후에는 지금 눈앞에 펼쳐진 일을 처리하기에 분주한 날들 속에서 잊고 살았습니다.


연우는 오밤중에 만취 상태로 저의 아들로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경찰에 도착했을 때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 순간 엄마인데 아이 어디 있느냐고 다급하게 엄마다운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립니다. 엄마로 살아온 지난 12년의 삶을 부정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죄인 같습니다. 무늬만 엄마였던 것을 아닐까 싶어 부끄럽습니다. 비단 오늘만의 일은 아닙니다. 학교에서 환경조사서를 작성해 달라고 할 때도 그렇고, 재난지원금을 받을 때도 그랬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갈등이 계속될지 모릅니다.     


연우의 아빠는 사업에 실패한 후 술을 밥으로 먹다 연우를 혼자 덩그러니 남겨두고 저보다 어린 나이에 평온의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 아빠의 유전인자를 받았으니 절대 술을 입에 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무엇이 연우가 만취되도록 술을 마시게 했는지 모릅니다. 여자 친구와 헤어졌는지 아니면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왕창 받아 견딜 수 없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해장국을 끓여야 합니다.


저는 해장국을 끓여보지 않았습니다. 길거리에서 보았던 해장국집 이름을 떠올려 봅니다. 감자 해장국, 고추장 해장국, 된장 해장국, 콩나물 해장국, 굴 소면 해장국, 뼈 해장국……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탐색해 보니 마땅하지 않습니다. 결국 저의 특기대로(저만의 레시피로 요리하기) 김치 해장국이라는 이름을 붙여 저만의 메뉴를 만들어 냅니다. 


 아침 10시가 되어 낯 설은 공간을 느끼고 깜짝 놀라 일어난 연우는 따가운 이마의 상처를 만지며 어쩔 줄 몰라합니다. 저는 엄마 표 미소로 연우의 얼굴을 감싸며 속 쓰리겠다, 김치 해장국 끓여 놓았으니 한 수저라도 먹으라고 합니다.      


아이의 통장 하나 만들 수 없는, 권리는 없고 책임과 의무만 있는 엄마, 

그 엄마가 이곳에 있습니다. 저의 직업은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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