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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Jun 19. 2023

14. 절차

다른 아이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습니다. 절차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가장 좋기는 하겠지만 때로는 몰라서 잘못된 절차를 따라 일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생후 6일에 만나 8년을 키운 하늘이의 입양과정이 그랬습니다. 누리가 1학년에 입학해 한 학기를 마무리할 즈음 몇 년 동안 연락이 되지 않던 친엄마로부터 카톡이 왔습니다.     


누리 친엄마에게 온 카톡의 원문입니다.     


안녕하세요, 하늘이 잘 지내나요? 두 분도 잘 계시죠? 제가 한 일이 부끄러운 줄 알아 찾아뵙는 것과, 연락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이에게 나서는 것도 자신이 없었어요. 백일 때 마지막으로 찾아간 뒤로 저는 계속되는 폭력과 흉기협박, 바람피우는 목격까지 더 이상 견딜 수도 만남이 계속될 수도 없었어요. 헤어지고 제 자신을 회복하는데 오래 걸렸습니다.      


누굴 탓하는 것도 아니고 할 수도 없어요. 핑계도 아닌 제가 힘들었던 과정을 어느 누구에게 얘기해 본 적 없고 부모님도 모르는 사실이라 어느 누구에게도 꺼낼 수 없어 답답하고 괴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를 생각하면 그때 괴로웠던 나날들이 생각이 나서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 관심 갖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두 분께 항상 고맙고 죄송하고, 하늘이에게도 너무 미안합니다.     


낳기만 하고 해준 것이 없어 괴롭습니다. 염치없이 갑자기 연락해서 죄송합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너무 부끄럽고 죄송스럽고. 뭐라 표현할 수 없어 죄송합니다. 죄송스럽단 말 밖에 나오지 않아요. 두 분께 하늘이를 ‘친 양자 입양’ 등록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런 부탁하는 것이 너무 죄송스럽고. 제 자신이 너무 밉고 원망스럽습니다. 부모님이 이 일을 모르셔서 알게 될까 두렵습니다. 제가 지은 죄로 부모님도 괴롭게 될까. 너무 죄송합니다. 두 분께 엎드려 사죄해도 부족한 것을 알아요. 옳지 못한 행동을 해놓고 나도 살겠다고 은인이신 두 분께 또 부탁드리고 바라는 제 자신이 밉고 원망스럽습니다. 마음에 안정이 생기면 *정이랑 꼭 찾아뵙고 싶습니다. 저도 제 행동이 부끄러운 걸 알아. 직접 전화로 말씀 못 드려 죄송합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갑자기 이 무슨 날벼락인지 내가 만약 친 양자로 입양하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친 양자 입양 보낼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가? 누리가 알면 얼마나 충격을 받을까? 그렇다고 모른 척할 수도 없는 일. 전화를 했습니다. 한참을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펑펑 울었습니다. 애절하게 우는데 뭐라고 말할 수 없어 친양자 입양에 대하여 알아보겠다고 하고 통화를 마무리했습니다.     


갓난아기 때 만난 누리는 다섯 살까지 저를 친엄마로 알고 자랐습니다. 언제쯤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줄까 그때를 재고 있는데 다른 아이들이 놀이를 하면서 우리 모두는 여기 엄마가 친엄마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바람에 조금 일찍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누리는 정말로 엄마가 자기를 낳아준 친엄마가 아니냐고 물었고 응이라고 대답하는 저에게 그럼 나를 낳아준 친엄마는 어디에 있고 왜 나를 여기에 보냈느냐고 물었습니다. 친엄마는 먼 곳에 있고 누리를 낳아서 잘 키우고 싶었는데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도저히 잘 키울 수 없어 누리를 잘 키워줄 사람을 찾아 엄마에게 보낸 것이지 결코 누리가 미워서 버린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누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저를 처다 보더니 품에 안겨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큰 형아처럼 엄마의 친아들이면 좋겠다는 말을 반복하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저는 서럽게 흐느껴 우는 누리를 무슨 말로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 함께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한참을 울고 난 누리는 저를 밀어내며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고는 그래도 괜찮아요. 저는 엄마가 내 엄마라고 생각할 거니까요. 하고 밝게 웃었습니다. 그런 누리를 다른 곳으로 친양자 입양 보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직업적 본능으로 상황을 분석했습니다.     

<문제 상황>

1. 친모가 친양자 입양 보내기를 원한다.

2. 다른 곳으로 입양을 보내면 누리가 받을 상처가 너무 크다     


<해결 방법>

1. 친양자 입양 조건에 대하여 알아본다.

2. 조건이 된다면 직접 친양자 입양한다.     


<기대 효과>

1. 엄마의 친 아들이었으면 좋겠다던 누리의 소원이 이루어진다.

2. 하늘이가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성장해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답은 나왔습니다. 친양자 입양 조건이 되는지 알아보고 조건이 된다면 가족(남편과 아들, 딸)의 동의를 얻어 친양자 입양을 하는 것입니다. 가정법원에 나와 있는 구비 서류와 조건에 대하여 알아보니 다행히 누리와 저희 부부의 나이차이가 60년이 되지 않아 친양자 입양은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친양자 입양을 하면 ‘즐거운 집’ 입소 아동으로 받는 모든 혜택은 사라지고 오롯이 양육비와 교육비를 제가 감당해야 하는데 정년을 3년 앞두고 있고 남편도 나이 많아 수입이 별 것 없는 상황에서 과연 입양 후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습니다.     


제가 다하지 못한 엄마의 역할을 아들과 딸이 맡아준다면 문제 될 것도 없을 것 같아 가족회의를 통해 상황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습니다. 가족 모두는 누리에게 상처 주지 말자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빠, 형, 누나로 부르며 성장했으니 ‘친 양자 입양’을 한다고 해도 특별히 달라질 것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성씨도 본이 아빠와 같아서 변경할 것도 없고 누리의 친아빠와 엄마가 동의하고  서류를 구비하여 절차를 함께 밟는다면 문제 될 것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가정 법원에 친 양지 입양 신청서를 제출하고, 입양 부모 교육도 받고, 출입국 내역부터 재산과 부채 현황까지 신상을 모두 탈탈 털린 후 마지막 재판을 받아 입양절차가 마무리되고 주민등록 등본에 동거인에서 자로 바뀌는 것까지 6개월간의 긴 여정이 끝났습니다. 모든 것이 다 끝난 줄 알았습니다. 친 양자로 입양되었으니 즐거운 집에서 퇴소하는 절차를 밟기 위해 관계 기관에 서류를 제출했습니다. 


며칠 후 담당 주무관은 떨리는 목소리로 지금 난리가 났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습니다. 퇴소 절차를 진행하려고 아동권리보장원에 승인 요청했더니 입양특례법에 의해 입양 보내야 하는데 누가 민법으로 진행하라고 했냐고 가정법원 사무관에게 소리소리 지르고 자기에게 전화해서 무슨 일을 이렇게 처리하냐고 어떻게 할 거냐고 난리가 났다고 했습니다.


법원의 사무관은 저에게 왜 그 사실을 밝히지 않았느냐고 화를 내고 행정기관의 주무관도 난감해해서 제가 처리하겠다고 했습니다. 법원의 사무관이나 행정기관의 주무관이나 공무원으로 이 문제가 커지면 승진에 어려움이 있거나 징계를 받을 수도 있으니 제가 나서는 것이 맞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아동 권리 보장원’ 담당 변호사께 전화를 해서 죄송합니다. 무식이 용감해서 그랬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지금 등본까지 다 바뀐 상태인데 파양하고 다시 처음부터 입양특례법으로 진행할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아동권리보장원’ 담당 변호사도 엄마입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너무나 잘 알기에 이미 판결이 나서 등본까지 바뀐 사항을 뒤집어엎을 필요는 없고 대신 입양 축하금이나 입양 수당은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입양특례법에 의해 입양한 입양가족에게는 입양 축하금이 200만 원 나오고 매월 입양 수당이 20만 원씩 나온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관련기관 홈페이지에서도 입양 특례법에 대한 안내를 보지 못했습니다. 담당 주무관에게 누리를 입양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했고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도 한 줄로 즐거운 집에서 생활하는 아동임을 기록했는데 아무도 보지 못하고 무사통과 되었던 것입니다.    

 

절차는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절대는 아닙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때로는 실수도 하고 오류를 범하기도 하며 잘못할 수 있으니까요.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실수는 용납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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