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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Jun 28. 2023

16. 도시락 주세요

다른 아이

16. 도시락 주세요     


엄마의 손맛은 어떤 맛일까요?


엄마의 손맛은 음식을 지지고 볶는 모든 과정의 맛입니다. 아이는 결과물의 맛이 아닌 과정의 맛을 기억에 담습니다. 그 맛은 아이가 성인이 되어 살아가다 힘들고,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 아이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됩니다.      


가난했던 유년시절 어머니는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주셨습니다. 평생 가난한 농부의 아내로 살았던 어머니는 비가 와서 밭에 나가 일을 할 수 없을 때 저희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만드셨습니다. 전기도 없고, 20분은 걸어가서 하루에 세 번 비포장 길을 달려오는 버스를 타야 했던 곳에서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급자족하는 것이었습니다. 밀을 심어 장날 머리에 이고 가서 밀가루로 만들어다 놓으시고 비 오는 날에는 부추전도 해주시고 호박전도 해주셨습니다. 콩을 수확하면 콩을 볶아주시고 감사를 캐면 감자를 쩌 주시며 부추와 호박과 그곳에 사는 애벌레들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냥 보고 지나쳤다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어 살아가면서 힘들고 지칠 때 엄마의 손맛은 저를 일으켜 세우는 보약이 되었습니다. 그 힘을 대물림하고 싶어 DNA가 다른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엄마의 손맛을 알고 사회에 나가도록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시락 주세요.”     


운동장에 만국기가 걸리고 아이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월의 운동회가 열리는 날 세월이가 등교하기 위해 신발을 신으며 도시락을 달라고 합니다.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나 아직 엄마를 잘 모릅니다. 저는 엄마가 도시락 싸가지고 운동장에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냥 등교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새벽에 일어나 세월이와 함께 먹을 김밥과 간식을 준비했습니다. 돗자리도 준비하고 과일과 사탕과 과자와 음료수도 준비하며 시계를 봅니다. 아홉 시가 되면 전교생은 운동자에 모여 교장선생님 말씀을 듣고 국민체조를 마지막으로 청군 백군으로 나뉘어 자리를 잡습니다. 일찍 가야 그늘에 자리를 잡을 수 있어 서둘러 집을 나섭니다. 


운동회를 전문으로 기획하고 진행하는 업체에서 나온 진행자의 멘트가 만국기 사이로 날아갑니다. 도시락을 싸들고 온 학부모들도 덩달아 신이 나서 함께 뜁니다. 저학년부터 시작된 50미터 달리기를 비롯하여 청백 경주가 시작됩니다. 일지마의 향기가 몸에  엄마만큼의 거리를 만들기 위한 첫발을 내딛었을 뿐입니다. 이제 세월이는 공유하는 시간의 폭과 깊이를 더해다 야 합니다.


* 엄마의 손맛을 알고 사회에 나가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낳아준 엄마는 아니지만 인정하고 존중하며 100% 믿어주고 기다려준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의 맛을 몸으로 기억하도록 하고 싶어 22년째 아침저녁은 직접 만든 음식으로 밥상을 차립니다. 김치는 물론 스파게티와 간식(각종 전을 포함하여, 떡볶이, 와플, 토스트 등)을 만들어 주며 이 음식의 맛이 살면서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만났을 때 다시 일어설 힘을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즐거운 집에서의 생활은 아이들을 구김살 없이 성장하도록 해서 말하지 않으면 사회복지시설에서 성장하는 아이인 줄 모르겠다는 말을 듣습니다. 아이들은 밝고 건강하게 성장하고 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성장에너지를 충전받아 건강하게 사는 것이 감사해서 시간과 에너지와 열정을 쏟는 선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이가 존중하는 사람 1호로 치켜드는 엄지 손가락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의 폭과 깊이를 더해 가십시오.    

 

아이는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세월이를 위해 도시락을 준비합니다. 김밥을 싸기 위해 단무지를 자르고 햄을 굽고 계란지단을 부칩니다. 세월이는 식탁에 앉아 분주하게 움직이는 엄마를 바라봅니다. 엄마가 직접 싸주는 김밥 도시락은 처음입니다.  김밥을 싸는 과정을 먹습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코를 자극하는 햄 굽는 냄새 빠르고 섬세하게 움직이는 엄마의 손까지 이 모든 과정이 자기를 향해 있습니다.      


워킹맘으로 분주한 엄마들은 힘들고 귀찮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마트에서 사다 줄 수도 있습니다. 그 아이가 성장해서 기억하는 것은 마트에서 사 온 도시락의 맛이고 세월이가 기억하는 것은 자기를 향해 빠르게 움직이던 엄마의 손맛일 겁니다. 엄마의 손맛은 외롭고 힘들 때 세월이의 마음을 녹여 주리라 믿습니다. 그 믿음이 오늘도 아침 6시에 일어나 달그락거리며 아침을 준비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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