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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Jul 03. 2023

18. 하세요. 우진이

다른 아이


우진이는 네 살까지 말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웃의 신고로 쓰레기통 집에서 분리되어 쉼터로 옮겨졌는데 그곳에서 처음으로 들은 말이 ‘이거 하세요’입니다. 쉼터는 긴급 분리된 아동이 일시적으로 머물다 가는 곳인데 그곳에 터줏대감으로 있는 열두 살 지적장애 아동에게 선생님이 하는 말을 듣고 처음으로 따라 해 보았습니다. 소리가 말이 되어 나온 것은 처음입니다. 우진이는 신기해서 녹음기처럼 ‘이거 하세요’를 반복합니다.    

 

우진이는 지금 다섯 살입니다. 엄마는 왜소증이고 두 동생은 왜소증에 지적 장애가 있습니다. 장애가 있는 엄마가 세 아이를 돌보는 것도 힘든데 갓 태어난 외사촌 조카까지 도맡아 키우다 보니 집안은 우주가 발생하기 이전의 혼돈과 무질서 상태 같아 도무지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랬습니다. 우진이와 엄마와 동생들은 ‘똥 기저귀’가 나뒹굴고 남은 음식물에 곰팡이가 생긴 양은 냄비와 그릇들이 늘어져 있는 싱크대 사이에서 용케도 자기 공간을 찾아 밥을 먹고 잠을 잤습니다.      


이런 상황은 우연히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발견되었고 질서와 조화를 추구하며 살아온 아주머니는 기겁하고 112에 신고하여 우진이는 즉각 분리되었습니다. 그것이 우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쓰레기더미(일반적인 사람이 보았을 때)에서 아이가 자라는 것은 비위생적이기 때문에 분리해서 위생적이고 교육적인 환경에서 성장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 긴급 분리의 이유입니다.      


보통은 엄마가 하는 말을 수도 없이 듣고 또 들으며 흉내 내는 것으로 소리가 말이 되어 나오는데 우진이는 ‘이거 하세요’가 처음 입에서 뱉어낸 말이고 쉼터에서 열두 살 형에게 선생님이 하던 말을 다섯 살 우진이가 흉내 내어 한 말입니다. 그런 우진이의 말을 누구도 잘못되었다고 수정해주지 않았습니다. 네 살까지 말 못 하던 아이가 긴급 분리되어 말을 했다는 자체가 쉼터의 큰 성과 중의 하나로 기록되고 잘한다, 잘한다, 로 더 많은 말을 흉내 내도록 부추 켰습니다.     


‘잘한다’로 인정되던 우진이의 언어 습관은 저를 만나면서 브레이크가 걸렸습니다. 키가 180cm의 중학교 3학년 누리에게 97cm의 다섯 살 우진이가 ‘형 이거 해, 이렇게 해야 하잖아’라고 지시하고 명령합니다. 누리는 어이가 없어 쳐다만 봅니다. 선생님에게도 ‘이렇게 해주세요. 왜 안 해주세요?.’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저는 우진이를 불러 선생님께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선생님 이렇게 하고 싶어요.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거라고 이야기해 주고 따라 하도록 합니다. 이미 각인되어 버린 언어 습관은 쉽게 변할 것 같지 않습니다.      

함께 생활하는 여섯 살 민우에게는 아예 대 놓고 지시하고 명령합니다. ‘장난감 정리하라니까 왜 정리 안 해. 지금 해 빨리 하라니까’라며 날카롭게 쏘아봅니다. 민우는 울면서 우진이가 자꾸만 자기에게 뭘 하라고 시킨다며 저에게 이릅니다. 저는 우진이가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은 우진이가 정리해야 한다고 알려주고 스스로 정리하도록 합니다. 우진이는 민우도 같이 가지고 놀았다고 민우가 정리해야 한다고 우깁니다. 마치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처럼 불쌍한 표정으로 울며 소리 지르고 방바닥을 내리칩니다. 우진이는 자기가 하는 말이 옳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것과 네 것에 대한 구분선이 분명하지 않아 남의 장난감을 함부로 만지고 작동방법을 숙지하지 않고 힘으로 이리저리 바꾸다 부러지고 망가져도 미안하거나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종합심리검사를 했습니다. 결론은 주의가 산만하여 상대방의 말을 정확하게 듣지 못하고 자기 생각만 하며 한번 자기 생각에 빠지면 다른 사람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먼저 약을 복용하며 주의를 집중하도록 하고 언어치료를 통해 언어사용 방법을 배워가도록 하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우진이는 언어치료실에 가서도 명령합니다. ‘선생님 이 책은 아니에요. 재미없는 거잖아요’ 그 책은 우진이와 언어 치료사 선생님이 함께 고른 책입니다. 처음 한쪽을 읽어주자 갑자기 우진이가 읽기를 거부하고 화를 내며 하는 말입니다. 언어 치료사 선생님은 단호하게 이 책은 우진이가 읽겠다고 고른 책이기 때문에 오늘은 이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어 볼 거라고 얘기하지만 우진이의 반항적 행동은 계속됩니다.      

말을 한다고 다 말이 아닙니다. 말에는 품격이 있고 대상과 상황에 따라 적절한 단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보통은 5세 아동이 약 2,000개의 단어를 사용해 말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성장 환경에 따라 현저하게 적은 단어만을 사용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보고 듣고 경험하지 못한 것들은 말로 할 수 없고 그 격차는 점점 벌어집니다.      


모든 아기는 태어나는 순간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런 아기가 성장하면서 전혀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방임과 학대와 일관성 없는 양육태도는 어느 순간 아이의 인지구조를 비틀어 꼬아버립니다. 이미 꼬여서 고착화된 인지구조를 풀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단호함과 일관성 있는 관심과 사랑을 포함한, 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단호함과 일관성과 기다림은 선택이 아닌 필수조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황이 되면 수직으로 올라와 폭발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폭발을 막기 위해서는 비폭력 대화를 통한 언어가 교정되어야 합니다. 어렵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인지구조가 꼬인 한 아이의 분노가 힘이 약한 여자나 아이, 또는 바르게 성장한 불특정 다수를 향해 폭발할 수도 있으니까요.      

호기심 많고 무엇이든 스펀지처럼 흡수해야 할 다섯 살 우진이의 뇌는 콘크리트로 방어막을 쳐 놓은 것 같습니다. 단단한 콘크리트를 철거하고 말랑말랑한 뇌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관되고 지속적인 따뜻한 관심과 사랑과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하세요’를 ‘하고 싶어요’로 바꾸기 위해 함께 동화책을 읽고 말 따라 하기를 합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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