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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Jul 19. 2023

19. 삭제하고 싶은 3년

다른 아이


삭제하고 싶은 3년은 저만의 생각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정의가 환희에게는 정의가 아니고 제가 생각하는 옮음이 환희에게는 옮음이 아닙니다. 환희는 지난 3년을 삭제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피어싱을 하고, 문신을 하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싸돌아 , 다닌 그 시간이 즐거움이고, 행복이고, 자유로움이었습니다.      


환희는 여섯 살에 만났습니다. 밤에 오줌을 싸는 것은 기본이고 날마다 코를 후벼서 코피가 났으며 밖에 나가자고 하면 방방 뛰면서 울었습니다. 글자와 눈 맞추기는 상상도 못 하고 한번 고집을 피우기 시작하면 누구도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주변에서는 혹시 자폐아가 아니냐고 물어볼 정도로 퇴행이 심했습니다. 

     

모두가 키우기 힘들겠다고 하는 환희에게 저는 2년 동안 올인 했습니다. 글자 카드를 들고 환희와 마주 앉는 순간 꾸벅꾸벅 조는 환희를 깨우기 위해 세우도 시켜보고 글자 카드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가 계단에 앉아서 보여주기도 하며 날마다 새로운 방법을 찾아 시도했습니다. 소아과 의사 선생님은 코를 후벼서 피가 나는 것은 특별한 약은 없고 안 만지도록 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하시며 눈에 넣는 연고로 된 안약을 처방해 주셨습니다. 밤에 오줌 싸는 것은 새벽 2시 30분 잠자는 아이를 깨워 쉬하고 자자고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쉬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모든 에너지를 환희에게 쏟았습니다. 전혀 변할 것 같지 않던 환희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더니 유머 있고 창의적인 똘똘한 1학년이 되었습니다.     


8년 후     


초등학교 6학년 졸업식 날, 졸업식장에 친엄마가 온다고 해서 가지 않으려고 했더니 환희가 와서 옆자리에 앉았다가 함께 나가 졸업장을 받고 사진을 같이 찍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지난 8년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잘 자라준 환희가 고마웠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체육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아 훈육하는데 환희가 말을 듣지 않고 발로 선생님을 걷어 찾고 선생님은 교권침해로 문제 삼겠다고 했습니다. 캠프 진행하는 일로 밖에 나와 있던 저는 부랴부랴 학교로 갔습니다. 선생님은 환희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들추어내다 못해 반 아이들의 문제점을 말씀하셨습니다.      

듣다못해 저는 선생님의 역할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단점만을 보시고 말씀하시는데 혹시 장점을 보시려고 해 본 적은 있느냐고 따졌습니다. 단점만을 보시고 아이를 규정하지 마시고 장점을 보시고 칭찬하고 격려하며 밝은 아이로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 아니겠느냐 앞으로 아이들마다의 장점을 보셨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집에서 엄하게 훈육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고, 환희가 선생님께 한 행동은 무례하고 잘못된 것을 인정하지만 선생님 또한 다른 관점에서 환희를 비롯한 아이들을 바라보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 일은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마무리되었습니다.    

 

환희가 그림 그리는 것이 천재적이고 창의적인 아이입니다. 어린이집에 다니며 글씨도 못 읽고 어린이집에서 하는 활동이 재미없어 항상 혼자 따로 놀았습니다. 혼자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거나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자기 세계에 빠졌습니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저는 환희가 그림 그리는 것을 보며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미술학원에 보냈습니다. 그 결과 3학년 때는 이마트 환경사랑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지역 최우수상을 받았고 6학년 때는 담임선생님 추천으로 과학경진재회도 나갔으며 만화를 그려서 만든 작은 책을 저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습니다.     


그 환희가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친엄마에게 갔습니다. 친엄마가 재혼해서 아기를 낳았는데 그 아기만 키울 수 없어 환희도 함께 키우겠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환경은 열악했습니다. 친엄마는 여전히 아이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 모르고 그냥 먹이고 입히며 알아서 커주기를 바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걱정했던 것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친엄마에게 돌아가고 일주일 만에 새아빠가 휘두른 폭력에 무자비하게 무너졌고 환희는 겉돌며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는 가방만 메고 왔다 갔다 하고 즐거움은 몸에 문신과 피어싱을 하고 담배를 피우며 술 마시는데서 찾았습니다. 지난 8년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어 날아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친엄마에게 돌아간 후 환희가 문제 행동을 하고 다닌다는 소식은 간간히 들었지만 제 영역을 벗어난 환희에게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버이날이나 생일 또는 년 말에 카카오 톡으로 메시지를 보내오면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날은 만 원짜리 문화상품권과 함께 생신 축하드린다는 톡이 왔습니다. 생일? 뜬금없이 무슨 생일이지? 하고 보니 주민등록 등본상의 3월 11일을 생일로 알고 카카오 톡에서 생일 알림이 뜨자 환희가 선물을 보낸 것입니다.      


가볍게 무슨 선물을 보내느냐 너는 요즈음 어떻게 지내느냐는 안부를 물었습니다. 환희의 대답은 평소와 달랐습니다. 느낌이 이상해 전화를 했더니 아무것도 하기 싫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엄마랑 같이 살기 싫어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방을 얻어 나왔는데 친구들이 와서 술 마시고 떠들어서 경찰에 신고되고 하는데 오지 말라는 말도 못 하겠다고 말하는 환희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습니다. 이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 아닌가 싶어 내가 도와줄 테니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고 친어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 어머님의 하소연은 20분이 넘게 이어졌습니다. 할 수 없이 말을 끊고 제가 환희를 다시 도와줄 테니 어머니도 협조해 달라고 하고 관계기관 담당자들과 상의해서 다시 즐거운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친엄마에게 간지 3년 만입니다. 환희는 많이 변해있었습니다. 당당하고 유머 있던 모습은 간곳없고 구부정한 허리에 허름한 옷차림, 저를 마주 보지 못하는 의욕 없는 눈빛이 그동안의 시간이 어떠했음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우리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 보자고 했습니다.      


방향을 틀어야 했습니다. 환희도 방향을 바꿔 공부도 하고 대학도 가겠다고 했습니다. 기회는 좋았습니다. 환희가 다시 오고 한 달 만에 ‘한라산 정상을 밟아라.’는 주제로 가족여행을 했고 환희는 한라산 정상에 오름으로 정상에 오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몸으로 느꼈습니다. 이어서 휴대폰 없이 한 달 살기를 하며 습관을 바꾸는 ‘습관 기숙 학원’에 입소해 한 달을 잘 견디어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삶으로의 길이 순탄하게 이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문제는 지역축제 한마당에서 옛 친구들을 만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차를 몰래 훔쳐 무면허 음주 운전을 하고 연락도 안 받고 집에도 안 들어왔습니다. 계속 연락을 안 받으면 가출신고를 할 수밖에 없다는 저의 협박에 죄송하다는 답이 왔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미안해서 도저히 저에게 갈 수 없고 다시 친엄마 집으로 가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성공하는 것도 싫고 부자가 되는 것도 싫고 그냥 편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타인에 의해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스스로 깨닫고 돌이키지 않으면 주어진 삶의 수레바퀴를 돌리며 살게 됩니다. 어떻게 사느냐는 순전히 그 사람의 선택이고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도 그 사람만이 져야 합니다. 환희가 폭력으로 고통받으며 불신의 벽을 쌓아간 지난 3년의 시간을 삭제하고 싶지만, 삭제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은 인간의 힘으로 삭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고 시간이 삭제되는 순간 세상의 삶도 막을 내리게 됩니다. 환희는 지금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제 환희가 가던 길을 멈추고 방향을 돌이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저의 영역이 아닙니다. 저는 신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며 기도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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