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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Dec 30. 2023

93세 엄마의 딸 생각

엄마로 산다는 것

93세의 엄마와 60대의 딸이 만났습니다.


93세가 되신 엄마가 혼자 사시며 외로워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1주일에 한번 전화드리는 것도 빼먹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지금까지 건강하고 밝게 사신다는 것이 감사해서

자주 엄마가 좋아하시는 것을 택배로 보내드리기는 하나

시간을 내어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가끔은 찾아뵙고 손을 잡아드리면 좋을 텐데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이달 초에 숙제가 주어졌습니다.

전화 통화 중 엄마가 저하고 하룻밤을 자며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93세이니 밤새 안녕이라고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데

그 소원을 지금 들어드리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연말이라 기관 일이 많기는 하나

앞으로 당겨 처리할 것 하고

뒤로 미룰 것은 미루고 한 후

29(금) 일에 엄마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안성과 부천이니 같은 경기도인데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가는 길이 어찌나 지루한지....

3시간이나 걸려 도착했을 때는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도시의 밤은 레온사인이 반짝이며 화려하나

골목으로 들어가니 줄줄이 주차된 차들 사이로 누군가 툭 튀어나와

나를 공격할 것 같은 두려움에 몸을 떨게 했습니다.

엄마는 저를 기다리시며 복주머니를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손수 바느질을 해서 만드셨는데

뒤집어도 바느질 자국이 보이지 않는

겹으로 만든 복주머니였습니다.

93세의 엄마가 딸을 생각하며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서 만드신 복주머니를 건네시며

나중에 엄마가 보고 싶을 때 꺼내보라고 하십니다.

엄마는 당신의 엄마가 보고 싶을 때

엄마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속상하고 슬펐었다고 하시며

엄마를 대신할 복주머니를 만들어 주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그동안 아끼고 아껴 모은 돈을 복주머니에 넣어서 주셨습니다.

무슨 돈을 주느냐고 안 받는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엄마의 마음이라고 받으라 하십니다.

93세의 엄마가 63세 딸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입니다.


저는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입니다.


엄마는 제가 잠든 후까지 일하시고

제가 일어나기 전에 일어나 불을 때서 아침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7남매를 키우며 욕한 마디 하지 않으셨던 어머니,

그 엄마는 선비집안의 딸이었으나 딸이라는 이유로 한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전동화와 속담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슴깊이 새기게 하셨습니다.


그런 엄마의 삶을 기억하며 엄마처럼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엄마의 삶의 10분의 1도 흉내 내지 못한 부족한 딸이

22년째 엄마라는 직업인으로 살고

'나의 직업은 엄마입니다'라는 책을 쓰고

엄마의 딸이 책을 써서 서점에서 팔리고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엄마는 힘들고 어렵게 살았는데

포기하지 않고 살아준 것이 고맙고

책까지 쓴 딸이 자랑스럽다고 하셨습니다.


엄마와 저는 수 십 년 만에 오롯이 둘만의 밤을 보내며

구전동화를 듣듯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에게도 저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의 밤을 보냈습니다.


엄마로 산다는 것은

나이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엄마에게 딸은 나이와 상관없이 그저 딸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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