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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손 편지의 기적을 믿으며

소리에게

by 나길 조경희
소리에게 보내는 엄마의 편지 (30).png



누구나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받으면 가슴이 설레고 기쁠 거야. 편지를 쓴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으니까. 그래서 편지를 쓰는 동안 상대방을 생각하며 마음을 담아 정성스럽게 쓴 편지는 기적을 일으키지.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희망의 마중물이 되기도 하고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에게 늪을 빠져나올 동아줄이 되기도 해. 그런데 요즈음은 이런 기적의 손 편지를 쓰는 사람이 드물어.


왜냐하면 컴퓨터로 이메일을 보내면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는데 손 편지는 우체국을 통해 발송하고 2-3일이 지나야 받아 볼 수 있기 때문이야. 현대인들에게 참을 수 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손으로 편지 쓰는 것을 멀리하게 만들고 있어. 또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쓴 편지는 글씨가 가지런하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신시킬 수 있는데 손으로 쓴 편지는 글씨가 삐뚤삐뚤 제멋대로야. 내가 글씨를 예쁘게 쓰지 못한다는 것이 부끄러워 감추고 싶지. 또한 편지를 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잘 못 쓴 것을 수정하기 어려운 것도 편지를 안 쓰게 하는 요인이기도 해.


엄마는 60년대에 태어났으니까 손 편지 세대라고 할 수 있어. 처음으로 편지를 쓴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야. 학교에서 편지 쓰기를 했는데 서울에 계신 삼촌께 편지를 썼지. 편지를 쓸 사람이 삼촌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우리 조카가 벌써 커서 편지를 쓰다니 너무 기쁘다.”라는 내용의 답장이 왔어. 우리 반에서 답장이 온 사람은 엄마 혼자였으니 얼마나 기뻤겠니? 엄마는 하늘을 나는 것만큼이나 기뻤단다. 그때부터 편지 쓰기는 엄마의 즐거움이고 행복이었어. 엄마만 그런 것은 아니야. 많은 아이들이 쪽지 편지를 썼는데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잠깐 눈을 돌이는 사이 쪽지 편지가 교실을 날아다녔어. 수업 끝나고 어디 갈까? 의논하기도 하고 선생님이 어떻다거나 하는 것처럼 일상적인 소통을 쪽지 편지로 한 거지. 그러다 들켜서 혼나기도 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쪽지 편지를 날렸어.


서울에서 일하며 야간학교에 다닐 때 엄마가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손 편지를 보내준 사람 덕분이야.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에 살던 불치병을 앓는 무명작가분이었는데 6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편지만 주고받았어. 야간에 공부하고 지친 몸으로 집에 오면 우편함부터 뒤적였었지. 흑산면은 목포에서 배로 2시간 가까이 가야 하고 흑산면에서도 다시 영산도라는 작은 섬으로 이동해야 해서 태풍이라도 올라오면 편지가 오는 데 한 달이 걸리기도 했어. 평소에도 2주는 걸린 것 같아. 그 편지 덕분에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지금 글을 쓰고 있어. 그 작가님이 항상 그랬거든 '네 삶이 수필이야'. '네 삶을 글로 써봐'. '넌 할 수 있어'. 지금 엄마가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해.


지금도 엄마는 편지 쓰는 것을 좋아해서 아이들에게 손 편지를 써서 줄 때가 있어. 그런데 아이들은 손 편지가 익숙하지 않아서 시큰둥하더라. 컴퓨터로 쓴 글씨에 익숙한 아이들은 엄마가 쓴 글씨를 읽는 것도 어려워하고 이해하기도 힘든가 봐. 그래서 일상적인 일은 카카톡을 통해 소통하는데 특별한 일이 있거나 엄마 곁을 떠나 독립할 때는 엄마의 마음을 담아 손 편지를 써서 전해 주려고 해. 지금 이 편지는 손으로 꾹꾹 눌러쓴 것이 아니라 자판을 두드려 쓰고 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새벽에 일어나 너를 생각하며 쓰고 있어. 네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100개의 편지와 한 장의 손 편지로 너의 가는 길을 축복하며 전해 주려고 해. 지금 이 편지는 그때가 되어야 너에게 배달되는 느려도 너무 느린 편지가 될 것 같아 앞으로는 일주일에 두세 번 쓰려고 해.


시대가 변하고 삶의 방식이 디지털화된다고 해도 때로는 아날로그 방법이 더 좋을 때가 있어. 바로 사춘기 자녀들과의 소통에서 그런 것 같아. 말로 하면 잔소리지만 손 편지를 써서 주면 잔소리로 읽지 않고 엄마의 마음을 읽게 되는 것 같아. 손 편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기적을 만드는 마력이 있거든. 네가 성장해서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도 편지를 쓰고 있는 거야. 엄마의 마음이 너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샬롬
-소리를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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