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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부끄러움도 성장의 한 조각이야

소리에게

by 나길 조경희
고양이.jpg 들이미나로 그린 그림

밤 8시가 넘은 시각, 오늘 수학 수행평가를 봤는데 채점을 해가는 것이 숙제라고 주섬주섬 가방을 뒤적여 시험지를 꺼내서 펼쳤다. 그리고는 왜 이런 문제를 내고 시험을 봐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짜증 내면서도 틀린 문제를 풀기 위해 끙끙대는 너를 한참 지켜보았어. 다른 애들은 90점이 넘는다는데 나는 겨우 59점이라며 이게 뭐냐고 울먹이며 문제를 푸는 너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어. 실망하고 속상해서 울먹이는 너에게 그러니까 평소에 공부를 했어야 한다고 기름을 부으면 안 될 것 같고 그렇다고 점수가 전부는 아니라는 말로 위로한다고 속상한 네 마음이 풀어질 것 같지도 않았어. 어떻게 기분 상하지 않고 왜 틀렸는지 하나하나 확인한 후 평소에 조금씩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기도록 할까 생각이 많아졌던 거야.


실망, 속상함, 그리고 가장 크게는 부끄러움. 엄마는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잘 알아. 엄마가 걱정하는 것은 결과보다 나는 수학을 못하는 아이라는 마음이 슬며시 자라나는 거지. 수행평가 점수 하나로 너를 평가하고 수학을 못하는 아이로 규정하는 너에게 엄마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부끄러움도 성장의 한 조각이란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고, 실패하고, 때론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마주해. 중요한 건 그 순간마다 느끼는 감정들을 어떻게 안고 가느냐야. 부끄러움은 우리가 뭔가 더 잘하고 싶다는, 더 나아지고 싶다는 의지의 증거야. 그건 절대 부끄러운 감정이 아니란다. 엄마도 예전에 수학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은 적이 있어. 그땐 세상이 끝난 줄 알았고, 친구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었지. 하지만 그 경험 덕분에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어떤 부분을 다시 배워야 하는지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었어.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험이 엄마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 출발점이었던 것 같아.


오늘 너도 같은 길을 걷고 있어. 네가 느낀 부끄러움은 잘못이 아니야. 그건 마음이 자라고 있다는 증거란다. 만약 네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시험지를 툭 던졌다면, 엄마는 오히려 걱정했을 거야. 하지만 넌 속상해했고, 다시 잘하고 싶다고 말했지. 그 말 한마디에 엄마는 감동했고, 너무나 자랑스러웠어. 평소에 엄마가 강요해서 학원에 보내고 학습지를 풀게 했다면 오늘과 같은 부끄러움의 시간은 없었을 거야.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는 진정한 네 것이 아니야. 네 스스로 선택한 시간들의 결과 값은 온전히 네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거든.


점수는 숫자일 뿐이야. 그 숫자가 너의 모든 걸 말해주진 않아. 엄마는 이번 수학 수행평가를 통해 평소에 네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며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된 것 같아 감사해. 이런 고민하는 시간 없이 남들 하는 대로 학원 다니고 문제집 풀고 그래서 좋은 점수받는 기계적인 삶은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거든.


실패는 우리 삶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야. 부끄러움도, 눈물도, 실망도… 그 모든 감정은 진짜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해. 우리는 실수를 통해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다음에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어. 그러니까 오늘의 점수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그 점수 너머의 너를 믿어줬으면 좋겠어.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고, 항상 네 가능성을 믿는단다.


오늘 밤엔 마음껏 속상해해도 좋아. 엄마 품에서 울어도 괜찮아. 하지만 내일은 다시 웃자. 그리고 다시 도전해 보자. 시험지는 다시 돌아오겠지만, 오늘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특별한 순간이야. 실패도, 부끄러움도 너의 일부가 되어 더 멋진 너를 만들어줄 테니까


샬롬 샬롬!!!

소리를 사랑하는 엄마가


2025.5.1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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