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에게
“엄마, 잘 산다는 건 성공하는 거야?”
이렇게 묻는다면 엄마는 잠시 생각에 잠길 것 같아. 엄마는 어릴 때부터 ‘성공해야 잘 사는 것’이라고 배운 것 같아.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많은 돈, 높은 자리. 마치 인생에는 정해진 결승선이 있고, 그 선을 가장 먼저 통과하는 사람이 가장 잘 산 사람인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소리야, 성공은 언제나 남과의 비교 속에서 정의되는 경우가 많단다.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성취, 더 빠른 속도. 그래서 성공을 목표로 삼으면 마음이 늘 바빠져. 잠시 멈춰 서서 지금의 기쁨을 누리기보다,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을 바라보게 되거든.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을 ‘에우다이모니아’라고 말했어. 흔히 ‘행복’이라고 번역되지만,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자기다움을 잘 실현하며 사는 삶’을 뜻하지. 남이 정해준 기준이 아니라, 나의 가능성을 충분히 꽃 피우는 삶 말이야.
또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대다수 사람은 조용한 절망 속에서 살아간다”라고 했단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길을 따라가느라 정작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할 때, 겉으로는 성공해 보여도 속은 공허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
엄마는 오랜 세월이 지나 잘 산다는 것이 ‘얼마나 높이 올랐는가’보다 ‘어떻게 하루를 살아냈는가’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았어. 오늘 해야 할 일을 성실히 해내고,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실수 속에서도 배우며, 스스로를 부끄럽지 않게 돌아볼 수 있는 삶. 그것이 쌓여 한 사람의 인생이 되니까.
물론 성공이 나쁜 것은 아니야. 꿈을 이루고 노력의 결실을 맺는 일은 참 아름답지. 하지만 성공이 목적이 아니라 결과라면 어떨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나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 어느 날 열매처럼 맺히는 것. 그때의 성공은 남과의 경쟁에서 이긴 증표가 아니라,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낸 흔적이 될 거야.
소리야, 솔직히 엄마도 네가 세상에 자랑할만한 성공을 이루는 삶을 살면 좋겠다는 생각과 너만의 삶을 창조하는 네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사이에서 갈등을 느낄 때가 있어. 그것은 순간의 혼돈이고 진심은 네가 더 많이 가지는 것보다, 네가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람. 더 빨리 가는 것보다, 함께 걷는 사람.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작은 기쁨들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엄마가 시간을 아끼라거나 책을 읽고 영어 공부를 하라고 하는 것은 성공이 아닌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보는 눈을 가지기 바라는 마음에서야. 그래야 나눔도 동행도 가능하거든.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싶니?
소리를 사랑하는 엄마가
함께 생각해 볼 질문 3가지
1.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누구의 기준일까? 나의 기준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기준일까?
2. 오늘 하루를 돌아볼 때 '성공'과 상관없이 내가 잘 살았다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3. 앞으로 나는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