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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Apr 13. 2020

39. 엄마가 쓰는 반성문

찬희에게

39. 엄마가 쓰는 반성문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으 결국 과거를 반복할 것이다.

-조지 산티아나-

     

엄마는 유년기를 보내며 반성문을 써보지 않았어. 소위 말하는 범생이로 선생님이나 어른들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지금 반성문을 쓰고 있어. 엄마가 쓰는 이 책 전부가 너를 향한 엄마의 반성문이라고 할 수 있어.

     

결혼하면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며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생각 없이 상황에 따라 결혼을 했어. 당연히 아내, 며느리, 엄마 역할에 서투를 수밖에…. 특히 엄마로서 너에게 잘못한 것이 너무 많아 반성문을 쓰는 거야.

     

너를 키우며 엄마로서 함께 해주지 못한 시간이 늘 마음에 걸렸어. 네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지 못했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엄마가 집에 있으면서 맞아주고 맛있는 간식도 해주면 좋겠다고 여러 번 이야기 했는데 엄마는 그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어. 엄마가 하는 일에 시간에 맞추어 움직였고 너 또한 엄마에 맞추어 행동해 주기를 바라고 또 강요했지. 왜 엄마 마음대로 하느냐고 따지면 엄마는 힘으로 억압하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렸어.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엄마도 너도 지쳐갔지. 그날도 고집부리며 떼쓰고 우는 너를 때리려고 스펀지로 된 야구 방망이를 들었는데 눈에 눈물이 가득한, 공포에 질린 너의 눈과 마주쳤어. 엄마는 야구 방망이를 내던지고 너를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그때부터 너에게 매를 들지는 않게 된 것 알고 있니?


가장 후회되는 것은 엄마가 하이리빙이라는 네트워크 마케팅을 했던 8개월이라는 시간이야. 아빠가 강요해서 하게 된 일인데 너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었어.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잘라내고 싶은 시간이야. 엄마가 방송통신대학교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어린이집에 근무하기 시작했는데 아빠가 좋은 사업이 있다고 해보자고 하는 거야. 계속 강요해서 사업 설명을 한 번 들어보았는데 엄마가 보기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누구나 성공한다면 성공하지 않은 사람이 없어야 하거든.


아빠와 싸우다 지쳐 하이리빙 사업을 하면 가정이고 아이들이고 팽개치고 나돌아다닐 수밖에 없는데 그래도 괜찮겠냐고 물었지. 그래도 된다고 하기에 시작한 거야.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거지. 엄마의 열정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가장 낮은 지도자의 자리에 올라갔어. 그때부터 더 많은 시간 돌아다녀야 했지. 대전까지 가서 사업자 모임을 하고 오는데 태풍으로 타고 간 봉고차가 날아갈 듯 휘청거리던 밤, 너는 외딴집에 혼자 있었어. 아빠도 같이 갔으니까.


네가 무섭다고 울면서 전화했는데 방법이 없잖아. 그래서 집에 올 때까지 이동하는 곳의 현재 상황을 생중계하면서 왔지. 그날로 아빠가 두 손 들고 그만하라고 해서 하이리빙 사업을 그만두게 되었어. 차라리 아빠와 싸우더라도 너를 잘 돌봐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되었단다. 정말 미안해 엄마의 잘못된 선택을 용서해 주렴.  

     

엄마가 가정위탁부모로 아이를 위탁해서 키우고 ‘즐거운집그룹홈’을 운영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이 너에게는 지금 아이들에게 하는 것처럼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웠던 거야. 너는 일곱 살부터 버스를 타고 병설 유치원에 다녔는데 더운 여름날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기사 아저씨가 과속하다 네가 누른 벨 소리를 듣지 못하고 한 정거장을 더 가서 내려주고 가버렸어. 너는 본능적으로 뒤돌아서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두려워서 울면서 뛰어 눈물범벅 땀범벅이 되어 엄마가 운영하는 도서관 매점으로 왔어. 그제야 안심이 되어 펑펑 우는데 얼마나 안쓰럽고 화가 나던지 버스 회사에 전화해서 항의했지.


네가 중학교에 입학해서 한 달 다니고 학교가 지옥이라고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너를 키울 때 조금 더 잘해 줄걸, 많이 후회했어. 그래서 늦었지만, 너만의 엄마로 살기 위해 외부 활동을 모두 중단했던 거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엄마의 도움 없이 네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을 보면 그런 시간들이 너를 단단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미안하고 감사해.

     

이제 엄마는 너에게 잘 못 했다는 과거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과 기쁨을 선택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으로 잘못한 지난 시간은 마무리하고 좀 더 자유로워질 거야. 너도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가 아물고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바람이야.

-무조건 너를 지지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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