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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Apr 12. 2020

8. 인생은 자리 찾기야

찬희에게

8. 인생은 자리 찾기야    

길을 찾지 못하면 새로 길을 닦으면 된다. -한니발-    

누구나 있어야 할 자리가 있어. 자기 자리를 찾은 사람은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리를 찾아 방황하며 살게 되지. 엄마는 엄마의 자리를 찾았단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든 상관없이 지금의 이 자리가 편안하고 행복하거든.    


아이들이 있어 외롭지 않고 아이들을 돌보느라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다 보면 하루해가 짧게 느껴질 때가 많아. 특별히 운동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해서 밖으로 돌아다니지도 않는 엄마 성격에 아이들이 없다면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책하고 놀았을 거야. 그런데 아이들이 있어 움직이게 되고 그 움직임은 건강을 덤으로 얻었으니 내 자리가 틀림없는 것 같아.    


시골에서 살 수 있는 체질이 아니라고 만류하는 가족들을 뿌리치고 시골로 시집온 것이 벌써 25년이나 되었어. 사람과 부대끼며 사는 것보다 조용하게 이름도 빛도 없이, 피고 지는 들꽃처럼 그렇게 살고 싶었거든. 낙엽 타는 냄새가 좋고 풀을 베었을 때 나는 향긋한 풀냄새가 좋아, 넉넉하지 않은 생활이었지만 행복했단다.    


그 자리가 내 자리인 줄 알았어. 비정규학교를 나오고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면서 열등감에 시달리던 엄마는 그렇게 조용히 살다 가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암 수술을 통해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님을 알았단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다 퍼즐 조각 맞추듯 엄마의 살아온 세월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더구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돌보는 것, 그 일이 엄마가 할 일이고 엄마의 자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인생은 언제나 상황 그 자체보다 그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 스트레스 상황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나에게 온 스트레스 상황에 내가 어떻게 반응할까는 순전히 내 몫이니까.    


오래전 외삼촌이 중학교 3학년을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에 진학하도록 도운 것이 엄마야. 스물세 살 젊은 나이에 어린 동생을 서울에 데려와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어. 외삼촌 또한 알지 못한 새로운 길을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거야. 외삼촌은 울면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지금은 교육대학을 나와 학교 선생님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지.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너의 선택을 존중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어. 홈스쿨이라는 단어가 낯설고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라 학교를 벗어나는 것을 허락하기가 쉽지 않았단다.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치다 ‘조나단 공부방’을 통해 초등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던 엄마에게는 더욱 힘든 일이었어. 엄마의 자존심을 상하는 일이었거든. 엄마의 자존심보다 네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엄마는 무조건 네 편이 되기로 했지. 학교에서의 상처로 다른 사람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너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많은 사람이 함께 가는 길을 벗어나 거칠고 험한 길을 3년 동안 묵묵히 걷고 있는 네가 장하고 고맙구나. 오직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밤낮으로 공부하는 아이들과 다르게 네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아 이것, 저것 해보며 일찍 자리 찾기를 시도하는 너, 지금은 힘들고 어렵겠지만 그 길 어딘가에 네가 있어야 할 자리가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인정하는 자리가 아니어도 네가 좋아하는 일이면 된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라면 더욱 좋겠지.    


어떤 사람은 조금 빠르게 자기 자리를 찾고 어떤 사람은 조금 늦게 자기 자리를 찾는단다. 평생 내 자리를 찾으며 방황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너는 다양하게 탐색하며 네 자리를 찾을 기회를 만났으니 조금 빠르게 네 자리를 찾지 않을까? 그 자리가 어떠하든 엄마는 너의 선택을 인정하고 존중할게.     

-무조건 너를 지지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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