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지 말고 보살피자 양육

말씀 안에서 크는 품 밖의 아이들

by 나길 조경희


‘부모들은 자녀의 감정을 건드려 화나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계와 가르침으로 잘 기르십시오.’

(에베소서 6장 4절)


가르치는 것과 양육하는 것은 달라요.

가르친다는 것은, 나는 알고 너는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내가 아는 것을 너에게 알려준다는 수직관계에서 출발하고 양육은 따뜻한 보살핌을 의미하며 따뜻한 보살핌은 올바른 관심에서 출발해요. 올바른 관심은 양육자의 관점이 아닌 아이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보살핌인데 절대적으로 지지받지 못하고 상처 받은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보살핌을 받는 양육이에요. 거기에 조건이 붙으면 안 돼요.


양육은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기도 하는 말로‘나는 알고 너는 모른다’가 아니라 네가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요. 아이가 스스로 뒤집고 기고 걸을 수 있도록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고 안전하게 보호하며 몸과 마음이 온전하게 성장하도록 돌보아주는 것을 말하고요.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있어요.


올바른 관심도 지나치면 간섭이 되고 간섭이 지나치면 강요가 돼요. 나는 관심이라고 표현했는데 아이는 간섭으로 느낄 수도 있고요. 엄마가 보기에 아이는 여러 가지로 부족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계속해서 부족한 부분에 시선 집중하다 보면 아이는 항상 부족한 아이가 될 수밖에 없어요.

특히 부모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예요. 엄마가 볼 때 아이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설프며 답답해서 숙제, 준비물, 옷 입는 것, 먹는 것 등 모든 것을 챙겨주지요. 아이가 어렸을 때는 당연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도 그런 엄마의 태도가 변하지 않으면 아이는 간섭이라 느끼고 간섭받기 싫은 아이는 문을 꽝 닫고 들어가 잠가요. 그러면 엄마는 더욱 화가 치밀어 ‘내가 누구를 위해서 이러는 건데 다 저 잘되라고 하는데 왜 저러는 거야’라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라요.

“ 문 안 열어”

“이게 무슨 태도야”

“너 엄마 무시하는 거야”

“빨리 문 열어”

“너 이렇게 해서 대학이나 가겠어? “ 소리소리 지르며 다그치고 하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수학 문제집을 풀라고 해요. 처음에는 관심으로 시작되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간섭이 되고 나중에는 강요가 되는 거지요.


우리는 가끔 뉴스를 통해 충격적인 사건을 만나요.

지난 2011년 3월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서 고등학교 3학년 아들이 엄마를 살해하고 시신을 방에 방치한 사건이 발생했어요. 김 군은 엄마의 시신을 안방에 그대로 방치하고 온라인 게임과 영화에 빠졌으며 심지어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와 함께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하며 평범한 생활을 했어요. 8개월 만에 엄마와 이혼한 아빠가 아들과 연락이 되지 않아 집을 찾았다가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해서 세상에 알려졌어요.

원인은 김 군의 성적에 대한 관심이 도를 넘어 강요에 이르고 맘에 들지 않으면 아이를 홍두깨나 골프채 같은 도구들을 이용해 때렸어요. 일곱 살 때부터 맞아온 김 군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결국 어머니를 살해한 거예요. 김 군이 특별히 나빠서 그런 것은 아니에요. 간섭에 대한 분노가 쌓여 폭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불안과 분노가 쌓이면 누구라도 이성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아이는 부모의 가르침을 통해 배우기도 하지만 눈으로 본 행동을 몸이 기억하고 무의식적으로 그런 행동들이 나와요. 결혼해서 아기를 낳아 본 엄마라면 자기가 가장 싫어했던 엄마의 모습이 자기에게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랄 때가 있잖아요. 나쁜 말이나 행동은 가르치지 않아도 몸이 기억하고 잘 배워요. 그렇게 몸으로 기억된 부정적인 감정들은 수시로 튀어나와 자녀에게 관심이란 이름으로 폭력을 휘두르게 되고요.


'잘 들어라. 한 농부가 들에 나가 씨를 뿌렸다. 그런데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어떤 씨는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져 흙이 깊지 않으므로 곧 싹이 나왔으나

해가 돋자 뿌리를 박지 못한 그 싹은 타서 말라 버렸다. 또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졌는데 가시나무가 자라 그 기운을 막았으므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잘 자라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었다. (마가복음 4장 3~8절)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고 씨 뿌리는 비유는 우리 마음 밭을 옥토로 가꾸어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음에 대하여 말씀해요. 저에게 오는 아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에요. 일차적으로는 해체가정이 되기까지 부부갈등으로 인한 폭력을 직.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방임으로 울타리 없는 집 같은 불안함을 경험한 경우가 많아요. 이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관심과 보살핌이에요.


내가 생각하는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듬뿍 안겨준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많은 시간이 지나고 알았어요. 갑자기 비가 많이 쏟아지면 홍수가 나듯이 지나친 관심과 사랑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아요.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스며들도록 해야 해요. 그 기간이 언제 왔느냐에 따라 짧게는 1~2년에서 길게는 5~6년까지 걸리기도 해요.

4학년 때 만난 세월이는 엄마 품을 몰라요. 이 집 저 집 친척 집으로 보내지며 성장하다 결국 길거리에 버려지는 놓였어요. 경찰이 발견하고 보육원으로 보내진 것을 알고 고모가 세월이를 잘 키워 줄 곳을 찾아 어린이재단을 통해 ‘즐거운 집’으로 왔어요.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입. 퇴원을 반복하고 세월이는 눈이 충혈되도록 게임을 했으며 잘못된 식습관으로 고혈압 경계선이었어요. 게임을 할 때는 완전히 몰입해서 하다가 안 되면 자판을 부수고 본체를 걷어차고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다가 안 된다고 침대 모서리에 액정이 깨지도록 콩콩 찧었어요. 작고 왜소한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놀라울 정도였어요.


조금만 감정이 상하면 주먹이 날아가는데 대상이 네 살 때 가정위탁으로 저와 함께 살게 된, 함께 방을 쓰는 형제였어요. 폭력은 안 된다고 단호하게 얘기했지만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폭력을 막을 수가 없었어요. 제가 항상 형제 곁에 있을 수 없어 방을 분리하고 형제에게 방문을 잠그도록 했지요.

세월이는 가르침이 아닌 보살핌이 절실하게 필요했어요. 폭력은 절대 안 된다는 것과 감정 조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요. 그렇게 6년이 지나 세월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되었어요. 언제나 싱글싱글 웃고 형제가 놀리고 장난쳐도 씽긋 웃는 것으로 대신해요. 담임 선생님은 세월이가 학교생활을 즐기러 학교에 오는 것 같다고 하세요.


지금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해서 자립하기 위해 자바, 파이썬, c언어 등 컴퓨터 언어를 배우고 ‘반응형 자바 웹 개발자 양성’ 과정에 등록하며 공부하고 있어요. 몸으로 기억되는 따뜻한 보살핌이 세월이가 독립해서 살아갈 때,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양육할 때 큰 능력이 되리라 기대해요.

시골에 살다 보니 봄이 되면 고추, 가지, 방울토마토, 상추, 고구마 등 모종을 사다 심어요. 심을 때는 잘 가꿀 것 같은데 심어놓고 계속해서 솟아나는 잡초를 제거하는 일이 만만치 않아요. 장마철이 되면 풀을 뽑고 돌아서면 다시 돋아나는 것 같아 지치게 되지요. 조금만 방치하면 금방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기대하던 열매를 거둘 수 없어요.


아이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아기는 세상에 태어날 때 예쁘고 사랑스럽고 귀여워요. 그렇게 태어난 아기가 올바른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미움과 원망, 불안과 분노가 가득하여 미운 얼굴이 돼요. 올바른 보살핌을 받지 못하여 불안과 분노가 가득한 아이를 야단치고 혼낸다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로 돌아오지 않아요.


가르치는 것과 양육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에요. 아이를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보살피는 것이 필요해요.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보살핌을 하는 양육이니까요. 따뜻한 보살핌을 하기가 쉽지 않다? 아이가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고 떼를 쓸 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따뜻한 보살핌을 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해요. 부모라고 해서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 않잖아요. 완벽할 필요도 없고요. 실수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 부모가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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