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안에서 크는 품 밖의 아이들
인터넷이 발달하고 핸드폰이 제7의 장기라 불릴 만큼 몸의 일부로 자리매김하면서 무엇이든 궁금하면 핸드폰을 열고 검색해요. 자녀 양육과 관련된 정보와 지식도 마찬가지예요.
자녀 교육 관련 전문가가 출간한 책을 비롯하여 유튜브 동영상, 자녀를 양육하며 얻은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블로그까지 참 다양하지요. 이런 모든 정보를 습득하면 자녀를 잘 양육한다는 보장이 있으면 정말 좋겠어요.
자녀를 잘 키우는 것은 모든 부모의 숙제요 로망이니까요.
그런데 잘 키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키운다는 것에 대한 정의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하는 것이 자녀를 잘 키우는 것이고 올바른 가치관은 말씀 안에서 형성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여 아이 양육에 말씀을 적용해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 히브리서 4장 12절)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 바람직한가에 대하여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을 의식한 생각이 아닌 자기만의 논리가 있는 생각을 표현하고 또 삶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다양한 경험과 함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깨달음이 필요하고요.
가치관은 부모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것 같아요. 부모가 자녀에게 특정 직업을 권할 때도 부모의 가치관이 많이 개입되기 때문이에요. 가령 요즈음 선호하는 공무원이나 교사를 권한다면 안정적일 것이라는 가치관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AI 시대에는 부모의 가치관이 자녀를 잘못된 길로 안내할 수 있어요. 부모가 살아온 시대와 자녀가 살아갈 시대는 완전히 다르니까요.
어른들은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이 자식이라고 말해요. 자녀를 낳아 키워본 사람으로서 100% 공감이 가는 말이지요. 저는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고 엄마가 되었어요. 스물일곱에 아들을 낳고 서른둘에 딸을 낳아 키우면서 어려움이 많았지요. 요즈음처럼 영아전담 어린이집을 비롯한 다양한 보육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돌봐줄 어른들이 계신 것도 아니어서 혼자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이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화를 경우도 많았어요.
문제는 아이가 성장하면서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일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이에요. 다른 아이들이 먹는 것을 먹고 싶어 하고 입고 신는 것 또한 다른 아이들처럼 하고 싶어 했어요. 어른들은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다 해주면 버르장머리 없이 자란다고 예의 바른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회초리로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고 했어요. 실제로 제가 자랄 때는 집에는 물론 학교에서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종아리에 피멍이 들도록 때리고 맞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요.
지금은 시대가 변했고 종아리에 피멍이 들도록 때리는 것은 이유와 상관없이 폭력으로 인식하고 아이들이 경찰서에 부모와 선생님을 신고하는 일이 발생해요. 아이가 말 안 듣고 고집부리고 떼쓸 때, 회초리로 한때 때리면 쉽게 해결되는데 때릴 수 없으니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훨씬 어려워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 22:6 )
일곱 살 소리는 생후 6일에 만나 ‘이렇게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복된 소리, 기쁨의 소리 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입에 달고 키웠어요. 기도처럼 소리는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으며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랐지요. 소리가 여섯 살이 되던 해 다섯 살 현우가 오면서 문제가 발생했어요.
현우는 텔레비전에 나올 법한 쓰레기통 집에서 긴급 분리되어 ‘학대피해아동 쉼터’에 9개월 있다가 즐거운 집으로 왔어요. 기본생활습관이 전혀 되어 있지 않고 자기 맘대로 되지 않으면 악을 쓰며 울다가 안 되면 갑자기 어린아이가 되는 행동을 반복했지요. 소리의 장난감을 망가트리고는도 미안한 마음이 없고 사과도 하지 않았으며 그냥 만지고 싶어서 만졌다고만 해요.
13kg의 작고 왜소한 아이가 안쓰러운데 소리는 자기 장난감을 함부로 만지고 망가트리며 사랑을 뺏어가는 현우가 미워요. 같이 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지 저런 말썽꾸러기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지 않았는데 왜 하나님은 저런 동생을 보내주었느냐고 따져요. 그동안 소리가 사랑을 듬뿍 받았으니 나누어주는 연습을 하라고 보내주셨나 보다고 말해주었지만 미운 마음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아요.
여섯 살 소리에게는 이해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말입니다. 안 되고 어렵고 화가 나지만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어요.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지만(마태복음 5장 46절) 나를 힘들게 하고 속상하게 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고 하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다고 말해 줘요.(마태복음 5장 44절)
소리와 현우의 다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현우는 스토커처럼 소리가 하는 말하고 행동하고 먹는 모든 것을 따라 해요. 그렇게 해야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는지 어떻게 할지 몰라 따라 하는지 헷갈릴 때가 많아요. 현우에게 너는 소리 형의 그림자가 아니고 이현우이고 하나님은 현우가 현우로 살기를 원한다고 말해 주고 삶 속에서 현우가 현우로 살도록 행동수정에 들어갔어요.
예를 들면 형이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는 것을 본 아이는 나도 아이스크림을 먹겠다고 하면 저는 아이스크림을 주지 않아요. 형과 상관없이 “엄마 저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데 먹어도 될까요?”라고 말해야 먹을 수 있도록 했어요.
아이들은 형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하려는 경향이 있어 형과 똑같은 아이스크림을 먹기 원해요. 같은 아이스크림이 여러 개 있을 때는 줄 수도 있지만 없을 때는 다른 것을 주어야 하지요. 당연히 아이는 같은 아이스크림을 먹겠다고 떼를 써요. 이때 너는 누구냐고 물으면 아이는 의아해하며 자기 이름을 말하게 돼요.
“그래 바로 맞혔어. 형과 너는 달라 언제나 형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하면 너는 형의 그림자야. 그러면 이름도 형하고 똑같은 이름으로 바꾸고 옷도 똑같이 입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도 똑같이 해야 하거든. 오늘부터 네 이름을 바꿀까?” 하지요. 그러면 아이들도 자존심이 있어 자기 이름을 버리고 형 이름으로 살기 싫다고 말하며 떼쓰기를 멈추고 다른 아이스크림을 먹어요.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다른 달란트를 주셨어요. 그 달란트를 찾아 갈고닦아 빛이 나도록 해야 하는데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따라 하다 실망하고 좌절하지요. 올바른 가치관의 부제에서 오는 현상이예요.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다고 하여 영향이 없는 것이 아니예요. 하나 둘 가슴에 쌓여 삶의 기준이 되고 가치관이 되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 거예요. 내 자녀가 AI 시대에 살아남도록 양육하기 위해 말씀을 통하여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양육하는 것이 필요해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마음과 생각과 감정까지도 다스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