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보살피자, 말씀 양육

말씀 안에서 크는 품 밖의 아이들

by 나길 조경희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네 후서 3장 16절)


하나님의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여 유대인들은 가는 곳마다 회당을 세우고 회당에서는 예배도 드리지만,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사용하기도 했어요. 랍비들은 그곳에 모여서 유대인의 종교 · 법률 · 철학 · 도덕 등에 관해 다른 각도에서 의견을 발표하며 토론했고 이렇게 하여 얻은 토론의 중요한 내용들이 탈무드의 내용이 되었다고 해요.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한 탈무드는 자녀 양육에 지침서처럼 사용되었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녀를 말씀으로 보살피고 양육할 수 있을까요?


삶이 예배가 되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말씀 안에서 성장하게 돼요. 신실하게 믿음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내 아이가 말씀 안에서 바르게 성장하기를 바라며 아이를 위하여 일천번제를 드리는 사람도 있고 새벽기도에 나가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도 있어요. 아무리 교회에 다니며 열심히 봉사하고, 헌금하고, 기도해도 삶 따로 예배 따로이면 아이는 말씀 안에서 바르게 성장하기 어려워요.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성장하기 때문이지요.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가르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어린아이도 부모의 무의식적인 행동을 순식간에 포착해 기억 속에 담고 어른들끼리 하는 말도 귀 기울여 들어요. 부모의 말과 행동뿐 아니라 표정까지도 몸으로 기억하게 되는 몸으로 하는 학습이 이루어지는 거죠.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다 보니 소위 말하는 검은돈이 될 수 있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예를 들면 저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지인이 어린이날 즈음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사주라고 5만 원을 현금으로 주고 갔어요. 본 사람도 없고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할 필요도 없는 돈이에요. 후원금 통장에 입금하지 않는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사주지 않고 제 주머니에 넣거나 일부 사주고 나머지를 제가 사용한다고 해도 그렇게 사용하면 안 된다고 제지하는 사람도 없어요.


5만 원은 조금 큰돈이라 조심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아 금액을 낮추어볼게요. 일곱 살 소리가 설날 아빠 따라 친척집을 방문했다 세뱃돈을 만원 받아왔어요. 아직 스스로 돈 관리가 안 되는 어린 아이라 저에게 만원을 건네줘요. 제가 받아서 제 주머니에 넣고 나중에 소리에게 이 돈은 당장 필요하지 않으니 저축했다 소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나 살게 될 때 사용하도록 저축해주겠다고 말하고 동의를 받은 다음 디딤씨앗 통장에 저축해야겠다고 생각줘요. 그런 돈은 자칫 잘못하면 제 주머니에서 녹아져 없어지기 쉬워요.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 깜박 잊어버린거예요. 메모해서 책상 앞에 붙여 놓아야 잊지 않고 소리 통장에 저축할 수 있어요.


얼마전 아이들에게 박두진 길을 걷자고 제안했는데 다른 아이들은 모두 집에 있겠다 하고 소리만 가겠다고 했어요. 다른 아이들은 갔다 오다 마트에 들려서 간식을 사주면 가겠다고 했는데 그날은 마트에 가지 않겠다고 해서 소리만 데리고 가게 되었어요. 가는 길에 물을 가져온 것이 생각나지 않아 마트에 들러 저는 물을 사고 소리는 음료수를 하나 샀어요. 그때 소리가 다른 아이들에게 마트에 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마트에 들리는 것은 잘못된 것 아니냐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그뿐만이 아니예요. 평소에도 거짓말 하는 것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해요. 어느 날 중학교 1학년 아이와 소리만 집안에서 놀고 있으라고 말하고 다른 세 아이를 데리고 미용실에 갔다 왔어요. 돌아오니 집안에서 놀고 있으라고 한 아이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 거예요. 차가 마당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소리가 달려오더니 '엄마 형이 밖에 나가서 놀자고 하면서 엄마 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면 얼른 들어오면 된다고 했는데 제가 혼나더라도 속이면 안 된다고 해서 엄마 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지만 그냥 놀고 있었어요. 엄마 말 듣지 않고 밖에 나와서 논 것 죄송해요'하는 거예요. 자기보다 여섯 살이나 많은 형에게 혼나더라도 속이면 안 된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소리에게 밖에서 놀다 다칠까 봐 그런 거라고 괜찮다고 얘기해주었어요


제가 평소에 작은 것 하나라도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는 것을 보았다면 소리도 형 말을 듣고 속였을지도 몰라요. 태어나면서부터 8년 동안 가장 가까이에서 저의 삶을 지켜보며 성장한 결과가 아닐까 싶어 더욱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하나님의 법, 양심의 법을 따라 살도록 요구해요. 아이들은 핸드폰을 몸의 일부처럼 들고 살아요. 코로나 19로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면서 하루 종일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지요. 저희 집에서는 시간을 정해놓고 사용하도록 하며 자기가 자기를 조절하지 못하면 망하는 거라고 강력하게 이야기하는데 아이들은 게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시간을 초과하는 경우가 많아요. 핸드폰을 들고 몰래 화장실에 들어가서 한시 간식 게임을 하거나 제가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몰래 게임을 하다 들통이 나지요.

"엄마는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는 거야."

"엄마 몰래 한 것이 양심에 찔리지 않니?"

" 만약 양심에 찔리지 않는다면 양심이 마비된 것이고 심각한 거야".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해야 했으면 좋겠어."

"하나님이 주신 양심의 법을 지켜라."

제가 핸드폰을 빼앗아 감추어 둘 수도 있지만 그것은 크게 도움이 안 돼요.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더 깊이 빠져들 수 있으니까요. 스스로 규칙을 정했으면 규칙을 지키는 연습을 해야 해요. 그래야 자기를 조절하는 능력이 생기고 습관으로 자리 잡아 아이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요.


실수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반복적으로 훈련받은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요. 네 살 때 가정위탁으로 만나 대학교 1학년이 된 형제는 자타가 공인하는 효자예요. 형제가 처음부터 순진하고 착하고 말 잘 듣는 아이는 아니었어요. 세 살까지 완전 방임 상태에서 성장하다 갑자기 부모가 이혼하면서 24시간 놀이방에 맡겨졌는데 6개월 동안 완전 억압을 경험했어요.


형제가 저에게 와서 첫날밤을 보내고 아침에 깨웠더니 자기가 덮고 잔 이불을 입에 물고 베개를 손에 든 체 벽에 붙어 서서 우는 거예요. 낯선 환경에 와서 그러는 것은 아닌가 싶어 안아주고 무서운 곳이 아니라고 했지만 형제의 그런 행동은 한 동안 계속되었지요.

‘안돼’라는 말만 들으면 분노가 폭발해 집어던지고 걷어차던 작은 아이가 말씀 안에서 성장하면서 변하기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와 중학교 3학년 때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고 검도 3단에 시범단 활동까지 하며 우체국 장학금을 비롯한 각종 장학금을 받을 만큼 열심히 공부했어요.

남학생들에게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군 복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큰 숙제예요. 형제는 즐거운 집에서 5년 이상 생활하여 제가 서류를 작성해 ‘경기도 병무청’에 신청하면 면제받을 수 있는데 형제는 면제받지 않고 ‘병역특례’로 회사에 다니겠다고 해요.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니 조금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끝까지 견디며 이겨낼 것 같아서 그렇다고 해요.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BC/AD로 나눕니다. AD는 예수님의 해라는 의미이고 지금 우리가 그때 시작된 년도 표기를 사용하고 있어요.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예수님의 탄생과 의미가 담긴 성경 말씀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며 수없이 많은 사람이 말씀에서 나는 누구이며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요. 개인적으로 인생에 대한 답을 찾을 뿐만 아니라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데 지침서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어요. 말씀으로 보살피는 말씀 양육이 아이가 바르게 성장하도록 하는 지름길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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