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으로 시작하는 말씀

말씀 안에서 크는 품 밖의 아이들

by 나길 조경희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태복음 16: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태복음 16:15)라고 물었을 때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복음 16:16)라고 대답하여 예수님으로부터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태복음 16:17)라는 칭찬을 받아요.


이와 같이 예수님은 3년 동안 열두 명의 제자를 질문을 통해 가르치셨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방법을 따라 질문하고 토론하는 ‘하브루타’ 교육을 통해 자녀를 교육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하브루타’ 교육을 하는 기관과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그렇다면 질문하고 답하고 토론하는 교육이 왜 자녀교육에 중요할까요?


세상을 바꾸는 힘은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하기 때문이에요.


이명박 정부 때 있었던 G20 폐막식에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께서 훌륭한 개최국 역할을 해준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주었어요. 더없이 좋은 기회였는데 그 자리에 있던 한국 기자 중 한 명도 질문을 하지 못했어요. 연설장이 순간 어색해지자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어로 질문하면 통역이 필요할 겁니다.’라는 말로 넘어가려고 할 때 추이 청강이라는 중국 기자가 일어서서 ‘아시아를 대표해서 질문해도 될까요?’라고 질문권을 가져가 버렸다는 일화가 있어요.


상황에 대하여 수많은 질문을 던져야 하는 기자들이 왜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질문하지 못했는가 분석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2014년 EBS 다큐 프라임 6부작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예요. 오직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정답만을 요구하며 주어진 답을 찾아가는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고 질문하는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결과가 나왔어요.


아이가 태어나서 3-4세가 되면 쉬지 않고 질문해요. ‘엄마 이것 뭐야?’ 묻고 또 묻는 것을 통해 사물을 인지하고 알아가요. 이때 아이를 양육하는 주 양육자가 귀찮다고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것이 많냐고 핀잔을 주면 아이는 질문하는 것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게 돼요. 그렇지 않은 아이도 유아기를 지나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호기심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아 쉼 없이 질문하던 아이도 학교 성적이 중요하고 좋은 학교에 가는 것이 목표가 되는 순간 입을 닫고 질문은 사라지니까요. 아이들은 주어진 것을 외우느라 질문도 생각도 모두 잃어버리고 학교 성적에 울고 웃어요..


질문하는 공부법으로 잘 알려진 ‘하부 루타’ 교육은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을 말해요. 친구와 함께 공부하면서 학생들이 사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하고 새로운 내용을 더 알아가는 것이지요. 학생들 간의 질문을 통한 학습뿐만 아니라 엄마가 자녀에 [게 동화를 들려주면서 나누는 대화, 밥상머리에서 아버지와 자녀가 질문하고 답변하는 대화, 스스로 묻고 답하면서 중얼거리는 것 모두가 하브루타 학습에 속한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질문하고 답하고 토론하는 교육을 할 수 있을까요?

즐거운 집은 학대를 경험하거나 부모가 돌볼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아이들이 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온 아이도 있고 조금 더 성장해서 온 아이도 있어요. 먼저 온 아이는 즐거운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익숙하고 평안한 반면 온 지 얼마 안 된 아이는 낯설고 불편해해요. 그런 아이를 먼저 온 아이는 위로하고 안내하기도 하지만 먼저 왔다는 것으로 텃세를 하거나 먼저 온 순서대로 서열을 매기기도 하지요.

갓 태어나 즐거운 집에 온 소리는 질문이 많아요. 자기를 낳은 엄마인 줄 알고 성장하는 소리에게 언제쯤 소리를 낳은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줄까 고민하는데 소리가 여섯 살 되던 해 함께 생활하던 형제가 원 가족으로 돌아가면서 소리에게 이야기해주는 바람에 알게 되었어요. 많이 놀라고 슬퍼하지 않을까 염려했던 저의 생각은 기우였어요.


소리는 ‘엄마, 하나님은 저를 태어나자마자 왜 이곳에 보내셨을까요?’

저를 낳아준 엄마 아빠는 왜 저를 키울 수 없었을까요?

엄마는 저를 왜 복된 소리라고 하셨는지요?

복된 소리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질문하던 소리는 자기도 큰 형처럼 엄마의 친 아들이면 좋겠다고 펑펑 울었어요. 한동안 말없이 꼭 안아주고 울음을 거친 후에

“엄마 아빠는 학교에 다녀야 해서 소리를 돌볼 수 없었고 하나님은 소리를 가장 잘 돌볼 사람을 찾아서 엄마에게 보냈고 엄마를 만나 사랑받고 존중받고 인정받으며 성장하는 네가 복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복된 소리라고 한 거야.라고 말해주었어요

‘아 그렇구나. 그래서 내가 복 있는 소리구나’하고 가볍게 받아들였어요. 어떻게 말해줄까 고민하고 말해주었을 때 충격받을까 봐 염려했던 일이 질문하고 답하는 것을 통해 자연스럽게 해결된 것은 평소에 소리와 질문하고 답하며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궁금증을 해결해가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아이를 훈육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아침 밥상에서 빨리 밥 먹고 학교 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장난치느라 밥을 먹는 시간이 길어지면 감정이 올라와요. 올라오는 감정을 그대로 밖으로 표출하면 학교 가는 아이 마음도 상하고 제 마음도 상하기 때문에 아이 마음도 상하지 않고 제 마음도 상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해요.


환이야 지금 어디에 앉아 있니?

식탁이요

식탁에 뭐하려고 앉았지?

밥 먹으려고요

그래 밥 먹으려고 앉았잖아 그럼 밥 먹을래?

환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왜 그 자리에 있는가를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할 때 가장 멋지고 사랑스럽게 느껴져. 알겠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왜 그 자리에 있는가를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해요. 이런 이야기를 인문학 강의로 책상 앞에 앉아 듣는다면 졸리고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지만 생활하는 상황 속에서 듣게 되면 마음 깊이 새겨지게 되는 것을 경험해요.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예수님의 제자에서 다시 어부로 돌아간 베드로를 만났을 때 너 3년 동안 내가 어떻게 가르쳤는데 복음을 전하지 않고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라고 책망하지 않았어요. 그냥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을 물으셨지요. 베드로는 같은 질문에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같은 대답을 해요. 예수님은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고요.

세 번씩이나 묻자 왜 같은 질문을 하는지 근심하며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해요. 그때 예수님은 ‘내 양을 먹이라’고 해요. (요한복음 21장 15~17절) 베드로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일깨워주는 순간이에요.


저 또한 예수님의 방법을 모방하며 아이들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생활 속 질문으로 가르쳐요.


날씨가 좋은 날은 아이들 걸음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에 걸어서 등교하도록 합니다. 함께 들길을 걸으며 자연의 변화를 몸으로 느껴보고 또 그 변화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는 것을 통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행복을 알아가기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지요.

오늘 아침에는 길가에 무더기로 군집을 이룬 클로버를 보고 소리가

"엄마 네 잎 클로버 찾고 싶어요." 했어요

‘그래 주말에 한 번 찾아보자 그런데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이 무엇인지 아니?’

‘……’

작년 이맘때 네 잎 클로버잎을 찾으며 이야기해주고 네 잎 클로버를 찾아 책갈피에 끼워 말린 다음 식탁 유리 밑에 끼워 자기가 찾은 네 잎 클로버라고 자랑하던 소리인데 꽃말은 잊어버렸나 봐요.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이고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이라는 꽃말에 대하여 이야기해주고

“너희는 행운이 더 좋니? 행복이 더 좋니?”라고 물었어요.

아이들은 “행운이요”라고 큰 소리로 말하며 행운이 오면 좋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요. 행운은 내가 노력하지 않고 돈도 들이지 않고 뭔가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이고 행복은 생활 속에서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과 평안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해주고 다시 한번 행복이 좋은지 행운이 좋은지 물어보았어요.

“행운도 좋지만 행복이 더 좋은 것 같아요” 하지요.

“하나님은 우리 삶 속에 행복과 행운을 함께 주었어. 그런데 행복은 너무나 가까이 있고 많아서 귀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찾기 힘든 행운만을 만나고 싶어 해. 마치 세 잎 클로버를 짓밟으며 네 잎 클로버를 찾는 것과 같이 행복을 짓밟으며 행운을 찾는 거지.”

“행운도 좋지만 어쩌다 오는 것이고 언제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고 행복은 내 삶에서 쉽게 찾고 만나고 누릴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소중한 것 같아. 엄마는 너희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아이들과 걷는 10분 정도의 시간이지만 날마다 질문을 통하여 아이들의 생각과 만나고 그 생각을 확장시켜 나가는 시간이에요


세상을 바꾸는 힘은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요.


생활 속 상황에서 질문하고 답하고 토론하는 것은 삶으로 배우는 인문학이자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간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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