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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꿈 Jan 05. 2022

야! 너두 갈 수 있어 상상과 모험의 세계로

아슬아슬한 여행, 걷다보면

어릴 때 하얀색 보도블록 사이사이  색이 다른 보도블록만 밟고 가는 나만의 놀이가 있었다. 그럴 때 색이 다른 보도블록은 거대한 강물 사이에 놓인  징검다리이기도 했고, 어느 영화에서 본 절벽 사이에 붕 뜬 돌이기도 했다. 왜 이 모험이 시작되었는지, 이 모험의 끝에서 내가 구하게 될 것이 왕자님인지 보물인지 알 수 없었지만, 색이 다른 보도블록을 정확하게 밟아야 실패하지 않고 이 모험에 성공할 수 있었다.  가끔 짧은 내 다리로 밟기 힘들게 멀리 떨어진 구간이 나오면 나는 온 힘을 다해 도전하고 고난을 이겨내곤 했다. (실패한 적도 있었지만, 성공한 걸로 쳤다. 어차피 이 이야기의 작가와 주인공은 나였으니까)


어릴 때 그렇게 세상 모든 것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곤 했던 나는 이제 규칙이 깨진 보도블록 무늬 앞에서 '아, 색깔 보도블록이 부족했던 모양이군." "공사를 새로 하면서 전에 쓰던 보도블록이 없었던 모양이네. 비슷한 거라도 깔지."라고 생각하는 재미없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런 어른에게는 모험과 마법의 세계가 다시 열리지 않았다. 그런 세상을 다시 엿볼 수 있게 된 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였다. 아이들은 주변 모든 것을 마법이 가득한 신비의 세계로 바꾸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보자기 하나가 멋진 드레스가 되고, 소파는 태평양을 항해하는 배가 되었다. 집 밖에는 그런 것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이 책을 봤을 때 참 반가웠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아이들처럼 별 관심 없이 지나쳐버릴 수 있는 것들을 오래 바라보게 하는 그런 그림책이었기 때문이다. 


책의 첫 면지에는 "사르락 사르락 바람이 불어. 길을 따라 걸어볼까?"라고 말하는 한 아이가 있다. 이 아이의 모험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렇게 길을 떠나던 아이는 가로수 그림자가 만든 숲속에서 싱싱한 과일을 먹고 돌아서는 사슴을 발견하고, 공놀이하자고 말하는 친구도 만난다. 이 아이가 떠나는 길 안에는 재미있고 멋지고 신나는 것들이 얼마나 더 많을까?



사실 어른에게도 세상은 여전히 어렵고 모르는 것투성이다. 아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어른들은 숱한 경험을 통해 각자만의 판단이 생긴다. 두렵거나 힘든 것을 미리 판단할 수 있고 슬며시 비켜날 수 있다.  그런 어른의 세상은 안전은 하겠지만, 더 이상의 모험과 도전은 없다.


아이들에게 세상은 탐구하고 경험할 수 있는 그 자체이다. 아이들은 두렵지만, 세상을 향한 호기심을 멈추지 않는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위험한 것도 일단 부딪혀 본다. 아이들의 이런 상상력은 어쩌면 미지의 세계를 탐구해가기 위한 용기의 한 모습이 아닐까?



엄마가 학교에 데려다주지 않겠다고 한다. 아이는 이제 스스로 학교를 가야 한다. 학교에 데려다주지 않는 엄마가 야속했던 걸까? 아이는 대문 밖이 어떤 세상인지 엄마가 모른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학교까지 가는 길에는 온갖 동물들이 가득하다. 아이는 조심조심 그 세상을 건너간다. 처음으로 혼자 학교에 가는 길은 아이에게 두려움일 테지만, 아이는 상상을 통해 용기를 내고 세상을 향해 나간다. 그리고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내일은 두려움에 즐거움이 조금 더 보태질 테고, 또 다른 발견으로 기쁨이 쌓일 테고, 마침내 아이가 학교에 가는 길에는 모험을 끝내고 한 뼘 성장한 아이가 있을 거라는 걸.


얼마 전 차를 타고 가다 하늘의 구름을 봤다. 구름의 모양이 우리 집 강아지 모습을 닮아 온 가족이 신기해했다. 사진을 찍고 돌아와 눈과 입을 그리니 더 비슷해 보이기도, 영 안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모험을 통한 성장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이렇게 가끔은 뜻밖의 어떤 것을 발견하고 기뻐하고 재미있어 하는 어른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림책을 좋아하는 이유도 아마 그래서일것이다. 


걷다 보면 | 이윤희 글, 그림 | 글로연 | 2021년 2월 25일
아슬아슬한 여행 | 앤 조나스 글, 그림 | 비룡소 | 2004년 8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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