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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꿈 Dec 17. 2021

역전 한 방을 꿈꾸고 있나요?

홈런을 한 번도 쳐보지 못한 너에게 

이 책은 내용을 알지도 못한 채 구매 버튼부터 눌렀다. 내용을 볼 필요도 없이 제목만 보고도 ‘아 이건 내 이야기구나. 나한테 해주는 말이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 책의 제목은 ‘홈런을 한 번도 쳐보지 못한 너에게’였다.


“6회 초에 말이야, 왜 그렇게 크게 휘둘렀어?”
“그야 홈런 치면 역전이라는 생각에…….”
“홈런? 흐음……. 너, 홈런 쳐 본 적 있어?”
“아니.”
“그런데 갑자기 홈런을 친다는 게 말이 돼?”

‘그런데 갑자기 홈런을 친다는 게 말이 돼?’

‘말이 돼?’

‘말이 돼?’

‘말이 돼?’

.

.

.

.

책의 이 부분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아니 무슨 그림책이 이렇게 뼈를 때려? 나는 늘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잘나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마치 내 것이었던 성공을 빼앗긴 것처럼 부러워했고 샘이 났다. 그래서 나는 자주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면 만약을 생각해봤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국립대 아니면 못 보내준다는 부모님 말씀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는 원서조차 써볼 생각을 못했는데, 그때 억지로라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갔으면 내 인생이 다른 모습이었을까? 가고 싶었던 과와 성적에 맞춰 갈 수 있던 과 사이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쯤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재수를 했다면 달라졌을까? 취업을 바로 하지 않고 대학원을 먼저 갔다면 달라졌을까? 첫 직장을 다른 곳으로 선택했다면 달라졌을까? 대학원 논문을 마무리했다면 달라졌을까? 결혼을 안 했다면 달라졌을까?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은 나에게 내가 고르지 않았던 과거의 많은 선택들은 현실을 순식간에 바꿔줄 마법처럼 유혹적이었다. 그런 선택은 분명 내 인생을 바꾸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멋진 삶을 보장할 거 같았다.


"형…….“
“왜?”
“난, 신이 선택하지 않았나 봐.”
“무슨 소리야?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려고?
꿈만 꾸다 말 거야?
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거야.
이 형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는데.“


누구나 인생을 바꿀만한 세 번의 운이 찾아온다는데 나에게는 그 운이 언제였는지 가끔 궁금했다. 아직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보단, 이미 왔는데 모르고 지나쳤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거의 그 많은 선택의 순간을 되짚어 봤나 보다. 혹시 그때 그 선택이 신이 내게 준 대운의 순간은 아니었을까?


센 형은 배팅연습을 반복했다.
느린 동작이었다.

승리의 흐름을 뒤엎는 역전 홈런 한 방을 노리며 나는 내가 했던 모든 배팅을 의미 없어 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이라 방황도 했지만 열심히 해서 졸업 한 학기 전에 취업을 했다. 직장생활은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신나게 일하며 많은 것들을 꿈꾸고 이루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대학원을 갔고 전문자격 과정을 수련하기도 했다.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었지만,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도 나는 부지런히 무언가를 배우고 자격증을 따며 열심히 살아왔다.


내 인생의 경기에서 나는 단 한 번도 대충 타석에 오르지 않았다. 잘못 맞아 아웃을 당하기도 했고 파울도 있었지만, 나는 늘 최선을 다해 배트를 휘둘렀다. 홈런을 못 친다고 경기에 지는 것은 아니다. 홈런만 치는 선수가 점수를 많이 뽑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홈런을 못 치니 나는 좋은 선수가 아니라고, 홈런을 못 치고 있으니 결과는 당연히 나쁠 거라고 지레짐작한 건 나 스스로였다.


고마워,
나 언젠가는 꼭 홈런을 칠 거야. 하지만 그 전에 안타부터 쳐야겠지.



40대, 지금 나는 4회 초 정도의 경기를 하고 있을까? 내 인생 경기는 아직 많이 남았고 결과는 아직 알 수 없다. 홈런은 9회 말에도 칠 수 있는 거니까. 지금 내가 이기고 있는지, 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건 있다. 이미 진행된 3회까지의 경기를 곱씹어 후회하는 걸로는 남은 경기를 이길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배트를 휘두른다. 최선을 다해서. 홈런을 치기 위해 안타라도 치고 싶으니까.


하세가와 슈헤이 글그림 |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 2021.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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