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언제 갈 수 있을까
코로나 확산에 한국행을 취소한 2월부터 3월, 4월, 5월까지 거진 4개월이 어찌 흘렀는지 모르겠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소식에 촉각을 세우며 한동안 우울해했다. 희망-기대-절망을 반복하다 현재는 포기 상태.
그동안 아기는 돌이 지났고 걸음마를 시작해서 이제는 뛰어다닌다. 가족 모두가 한복을 입고 돌 사진을 찍겠다는 계획은 무기한 연기. 첫돌이라 하면 한복인데 기모노 사진만 남겨놓기엔 아쉬운 마음.
내가 사는 교토에서도 초기부터 확진자가 나왔다. 일본 정부는 비상사태선언을 했고 슈퍼를 제외한 가게들과 각종 시설들은 휴업에 들어가거나 단축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슈퍼나 드럭스토어 편의점 등 모든 계산대에는 감염 예방을 위해 투명 비닐이나 플라스틱이 세워졌다. 입구에는 노약자의 출입을 자제, 최소한의 인원만 출입 등등의 권고가 붙었다. 우리 가족 역시 나만 슈퍼에 출입한 지 오래. 업무 때문에 교토역에 가본 남편이 한적함에 놀랐다고 한다. 외국인이 안 보이는 교토역이 너무 낯설었다고.
마주치는 사람들은 99프로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 한동안 마스크 손소독제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는데 이제 조금씩 보인다. 그래서 직접 만든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나도 시어머니와 동네 아주머니가 만들어주셨다.
일본 재난지원금도 신청했다. 지급 신청 절차와 지급 시기의 애매모호함으로 한국에서도 뉴스가 나올 만큼 난리였지만 우리 집은 5분 만에 인터넷으로 신청 끝. 현금으로 일인당 10만 엔. 외국인도 주민 등록이 되어 있으면 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 년 전부터 산골마을에서 지내게 된 일. 사람과 만나기 힘든 동네라 동네에서 만큼은 큰 걱정 없이 아기와 남편과 산책하며 지낸다. 아기가 다른 사람을 보면 낯섦을 넘어 신기해할 정도로 셋만의 세상에서 지낸다.
매일 남편과 양국의 코로나 뉴스를 공유한다. 한일 양국의 일명 '국뽕' 뉴스를 보며 남편과 웃는 날도 있다. 이렇게라도 웃으며 지내야지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