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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강 작가의 독일삶 Feb 12. 2022

이언진의 글쓰기를 배워라

 


박희병 교수님의 이언진 평전 <나는 골목길 부처다>를 밤새 읽었다.

스물 일곱의 나이에 삶을 초개처럼 살다간 이언진.

내면에 똘기와 특출난 두뇌, 창의력은 그의 생을 지상에 너무 오래 있지 않게 했다.

왜 뛰어난 이들은 요절하는 것일까? 너무 단시간에 불꽃처럼 삶을 살아서일까?

그래서 삶의 심지를 다 태웠기에 머무를 수 없는 것일까?


스승 이용후는 만시에서 언진의 요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요행으로 억만금을 얻게 된다면

그 집에 반드시 재앙이 생기지

하물며 세상에 드문 이런 보배를

어찌 오래도록 빌릴 수 있으랴


먼저 이언진이 조선시대 역관으로 일본에 사절단으로 방문했을 때의 시를 감상하자.


바다를 구경하다


지구의 수많은 나라들이

바둑돌과 별처럼 벌여 있네

월 나라에서는 상투를 틀고

인도에서는 머리를 깎네

제 나라와 노 나라 옷은 소매가 넓소

북방의 호와 맥은 털옷을 입네

혹은 문채 빛나고 예가 있으며

혹은 시끄럽게 지껄이누나

무리에 따라 나뉘고 끼리끼리 모여살아

지구상에 온통 인간들일세


이언진은 손수 자신의 시문을 모아 <송묵관집> 이라는 책을 엮었다. 겨우 스무살 초반이었다.  

그는 남에게 이기기를 구하지 않았으니 이길 상대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스승 이용휴는 송묵관집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벼슬도 최고에 오른다 해도 아침에 얻어 저녁에 잃어버릴 수 있고 돈도 저녁에 잃어버려 아침에 가난뱅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문인 재자가 소유한 것은 한 번 소유한 뒤엔 비록 조물주라 하더라도 어찌할 수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소유다. "


주역에 보면  깔끔을 떠는 자에게는 복이 붙을 데가 없고 남의 정상을 잘 꿰뚫어보는 자에게는 사람이 붙지를 않는다고 했다. 이언진은 중인으로 사대부의 지배를 당연할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철저히 저항했다. 이언진의 글이 시대를 앞선 정신이었기에 문제적 작가로 소문이 났다. 이언진은 신분제 사회의 벽 때문에 죽기까지 절망하고 분노했는데 이것이 마음의 병이 되어 육체까지 피폐하게 만들었다.


이언진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생각한 이언진의 글쓰기를 정리해보았다.


1. 불꽃처럼 써라.

그는 자신의 글을 구혈초라고 불렀다. 피를 토한 글 심혈을 다해 시문을 창작했기에 뼈를 갈아 넣었다.

나는 이렇게 혼을 다해 쓴 적이 있었던가? 다시 한 번 반성한다.


2. 사회저항적 글/현실을 담아라.

당시 양반사회의 문제점을 은유적 기법으로 비판하고 영혼의 칼을 물고 글을 썼다.

작가의 글은 시대상의 혼과 현실을 담아야 한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3. 매일 일기를 써라

오세창의 <우상잉복>에 의하면, 일본 사절단으로 갔을 때 쓴 일기들이 있다. 그리고 죽기 전 시골에서 살 때도 그는 일기장을 놓지 않았다. 매일에 자신을 담은 것이다.


4.매일 독서를 해라

그의 동생 이언로의 말에 의하면 "책을 좋아해 침식을 잊었으며 글을 전광석화처럼 빨리 베껴써서 잠시 사이에 열 몇 장을 썼지요."

그는 남에게 기서를 빌리면 늘 소매에 넣고 오다 길위에서 책을 펼쳐봤는데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총총히 걸어 사람과 부딪히고 말에 박히는 줄도 깨닫지 못했다.


5. 솔직담백하게 써라

그는 인간의 욕망을 무조건 긍정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욕망을 사갈시하지도 않았다. 자연적 욕망을 억압하지 않고 진솔하게 발현시킨다. 주자학의 진리관에 따른다면, 발랄한 성격이나 튀는 언어는 점잖은 성격이나 순정한 언어로 교정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언진은 이러한 솔직한 표현을 옹호한다. 그래서 그는 인간적인 사람이다. 인간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난 글. 그 글에 우리는 환호한다.


그의 유고집 <병 끝에>를 읽어보자. 원제는 병여다.


머리숱은 가을 짐승처럼 성글고

얼굴은 고목나무 껍질처럼 메말랐네

아내는 나를 격려하며

수시로 고기죽을 갖다주네


발에 때가 끼면 씻어서 깨끗하게 하고

등이 가려우면 긁어서 시원하게 해주네

오랜 병 끝에 이제 일어났으니

음식과 여색을 조심하라는 말 굳게 지키려 하네


한 벌의 해진 승복

손수 거듭 깁네

바늘귀에도 꿰맨 실에도

모두 하나의 부처가 있네


그는 서울 출생으로 골목길 소시민이었다. 병색이 짙어지자 시골로 이주한다. 그곳에서도 그는 창작의 열정을 늦추지 않았다.  그는 시골풍경을 다룬 <농촌의 사계>라는 연작시를 썼다.


들의 나무에 서리 무성하니 소가 집에 들어오고

강가 하늘에 눈이 몰아치니 새가 마을에 묵네

선생의 낡은 솜옷 춥기가 차가운 쇠와 같아

두 손과 머리가 화로를 향하네


그는 죽기 전, 자신이 쓴 시를 다 태웠다.  일종의 자기파괴적 행위이고 또다른 세상에 대한 저항정신이다. 그의 말은 허무하다.

"사공이 일월과 빛을 다툴 수 없다면 초목과 같이 썩어 사라짐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열하 박지원도 우상전에서 언급한다.


"병이 위독해져 곧 죽을 듯하니 그 원고를 모두 불사르면서 누가 나를 알아주겠는가 라고 했으니 그 뜻이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나중에 언진의 아내가 발견하고 원고 더미에서 건져낸 것이 호동거실 등 알려진 시들이다. 호동은 이언진의 호다. 이언진 나이 향년 27세.


호동거실


서산에 뉘엿뉘엿 해 넘어갈 때

그는 늘 이때면 울고 싶은 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어서 저녁밥 먹자고 재촉하지만

.......


창문빛은 밝았다 어두워지니

아교로도 한낮의 해 잡아둘 수 없네

종이창 아래 한가히 앉아

온 지금, 간 옛날 가만히 보네


그는 천재였지만 천재가 아니었다. 천재성은 손쉽게 거저 발현되는 것이 아닌, 그가 죽도록 흘린 피눈물의 대가였다.

조선의 지배 질서 속에 중인은 주체가 아니라 타자의 자리이다. 중인은 사대부 밑에서 그를 실무적으로 보조하는 존재다.

하지만 이언진은 자신의 존재를 자각함으로써 스스로를 주체로 살고 죽었다. 그가 그토록 원했던 주체성은 그의 끊임없는 지식에 대한 욕구를 통해 성취되었다. 광범위한 독서를 통해 지식을 축적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인식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언진에게 세계는 감옥이다. 그는 자신의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감옥

빠져나올 어떤 방법도 없네


 이언진은 스스로 사회적 소외계층이었지만,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추구한 동아시아의 선구적인 인물로 인간의 평등을 주장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각종 차별과 억입과 폭력이 자리한다. 그래서 세상은 그에게 여전히 감옥인 것이다.

그의 평전을 읽으며 마지막 숫타니파타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이

물에 때묻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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