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교육 생태계의 변화를 가져왔다. 독일은 여태껏 디지털에 대해 문맹이다시피 했다. 그러다가 덜컥 뭇매를 맞은 것처럼 언택트 문화가 닥쳤다. 성인들의 재택근무야 지들 사정이고, 가장 큰 문제는 미래의 희망인 다음세대다.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학령기 세대들에 대한 우려가 가장 컸다. 학교 교사들의 연령대는 여전히 60대가 많고 그들은 인터넷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한 세대다. 지금 아이들처럼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의 화면에 노출되어 사진이 찍힌 디지털 네이티브와는 격차가 너무 크다. 아날로그 전형인 그들이 온라인 수업을 강행해야 한다니 죽을 맛인 거다.
게다가 시험은 어떤가. 둘째딸 학교에서는 10학년에 치르는 MSA(중학교 졸업시험 쯤)도 건너뛰었다. 그나마 김나지움이기 때문에 시험을 치러도 대부분 합격을 하기 때문에, 형식적인 절차인 이 시험은 학교 재량으로 치르지 않은 모양이다.
시험 뿐만 아니다. 11학년 때 가게 되는 수학여행도 취소가 되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고대 언어를 중점으로 다루는 학교이기에 김나지움 졸업 전 ‘고대문화 수학여행’을 갔다.
일 주일 정도 그리스, 혹은 로마로 여행을 간다. 학부모는 1년 전부터 수학 여행비를 지불하고 아이들은 여행 이야기로 들떠 있다.
하지만 지난 해 이 여행 또한 코로나로 취소가 되었다. 김나지움 시절 추억에 남을 여행인데 아이는 무척 아쉬워했다.
또한 12학년인 지금, 졸업시험인 아비투어 점수에서 내신이 반영되는 11학년과 12학년 시험이 있다. 그런데 12학년 2학기 시험에서 단지 중점과목 3과목만 필기시험을 치르고 나머지는 구술시험으로 대체했다. 이 학교 창립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다행히 프레젠테이션 과목은 그대로 진행했다. 딸은 역사와 정치 분야를 채택하고 테마를 우크라이나의 ‘홀로도모르’ 대학살 사건을 다루기로 했다.
한창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던 2월 초 무렵,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쟁의 소용돌이로 일촉즉발이었다. 딸이 준비한 테마가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는 테마가 된 건 당연지사. 하지만 그에 따라 부담도 많다.
참고로 우크라이나 홀로도모르 대학살은 1932년부터 1933년까지 소련의 자치 공화국인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발생한 대기근이다. 이때 250만 명에서 350만 명 사이의 사망자가 발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홀로도모르는 우크라이나어로 ‘기아로 인한 치사(致死)’라는 뜻이다. 이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위해 딸은 우크라이나 대사관과 홀로도모르 행사를 진행하는 단체 대표 등을 만나 자료를 수집했다. 러시아 쪽은 가해자 쪽이라 쉽지 않았지만 학계 관계자들을 만났다.
비록 코로나 상황으로 대면이 쉽지 않지만 나름대로 준비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고학년이 되면서 딸은 점점 공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학 공부를 위한 전초전이라고 생각된다. 심도 깊은 토론과 사유의 경험이 없으면 독일 대학공부는 더더욱 힘들다. 그래서 김나지움 고학년 학생들에게 교사들은 대학에서 공부할 만한 수준의 테마와 비슷한 커리큘럼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깊이 고민하고 성찰하도록 한다. 그래서 시험시간도 결코 짧지 않다. 한 과목에 A4 20장까지 쓰기도 한다. 그 시험을 다 치르고 나면 팔목이 저리고 아프단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이상한 쾌감도 든단다. 아마도 마음껏 공부하고 지식 에너지를 쏟아부은 후 느끼는 희열일 것이다. 나의 경우도 책을 쓰기 위해 집필을 끝까지 마쳤을 때 느끼는 감동과 비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요즘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이 늘어나면서 다시 대면수업을 하려고 할 때, 오히려 교사들이 내키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아이 말을 들어보면 대면 수업 하는 날, 선생님이 아프다고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 아마도 코로나 상황에 적응이 되어 오히려 대면이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겐 그 어느 때보다 자율성이라는 숙제가 던져졌다. 세계 초유의 사태 속에서 아이들은 꾸준히 자신과의 싸움에서 자율성을 검증받는다. 집에서 수업 듣는 아이들은 자신의 기상시간과 게으름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고,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강박에서 자신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코로나는 그 어느 때보다 학생들에게 큰 시험대라고 본다.
교사들은 걱정한다. 코로나 기간의 학력의 수준이 그 어느 때보다 떨어졌을 거라는 우려감이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이 때를 거친 학령기 아이들의 수준이 비교적 낮다는 연구결과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는 코로나와 함께 가장 중요한 김나지움 고학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딸은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좋다는 말을 한다. 가족간의 대화도 많아져서 우리 가족도 반긴다. 또한 자율성이 중요한 대학생활을 미리 체험하는 기분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대학생활은 더더욱 자신의 시간과 체력과 공부 관리가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코로나는 어쩌면 모두에게 던져진 저울이자 시험대다. 이 시간을 효과적으로 보내면 후회하지 않은 날로 기억할 수 있겠지. 딸아이의 고등학교도 이제 서서히 막을 내린다. 오늘은 라틴어 시험을 거리두기를 한 탓에 큰 강당에서 시험을 봤다고 한다. 창문까지 열어놓은 통에 감기에 걸릴 뻔 했다고 징징거린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쓰다보니 춥지 않았다고 너스레다.
라틴어 한 과목에 3시간 이상을 쓰고 와서는 웃고 있는 모습이 다 컷구나, 생각이 든다. 코로나가 여러 모로 사람들을 성숙하게도 하고, 시험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