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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닢channip Jul 02. 2019

축축한 상상

<창세가> 이후의 우리라는 인간 군상

 태초에 이 세계는 미륵님이 창조한 이후에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을 만든 이후에 금쟁반, 은쟁반에 금벌레, 은벌레를 담아 인간을 만들어 냈다. '미륵님'이 다스리는 평화로운 이곳에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타나 세상을 가져가려 하니, 그는 '석가님'이었다. "네 세월은 갔다, 이제 내 세월을 만들 것이다"라고. 석가님이 내민 도전장에 미륵님은 세 가지 내기를 제안하고, 석가님이 내기에서 하나라도 이긴다면 세상을 양보하겠다고 한다.

 첫째 내기, 병에 줄을 매달아 동해 바다에 던져두고 줄을 안 끊어트리기. 미륵님이 승.

 두 번째 내기, 여름에 강물을 얼어붙게 하기. 역시 손쉽게 미륵님의 승.

 마지막 무릎에 꽃을 피워내기. 석가는 정정당당하게 내기를 한다면 자신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한 방에서 미륵님이 자면서 무릎에 꽃을 피우는 동안, 몰래 그 꽃을 꺾어 자신의 무릎에 꽂는다.

 잠에서 깬 이후에 미륵은 석가가 부정하게 자신의 꽃을 훔쳐갔다는 것을 알지만, 결과를 순순히 인정한다. 석가의 세월이 당도했지만, 미륵은 그의 세월을 포기하고 저승으로 떠나면서 독설과 저주를 날린다.

 더럽고 축축한 석가야. 네 세월이 되면 집집마다 기생 나고 과부 나고 역적 나고 백정 날 것이다. 말세가 된단 말이다.


 아마 웹툰이나 영화를 많이 봤던 사람이라면 이러한 내용이 어딘가 비슷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이름은 다르지만 제주도에서 전승되는 '대별왕, 소별왕 창세신화'와 같은 구조로, 웹툰 '신과 함께' 속에 각색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능력 좋고 현명한 대별왕은 동생 소별왕이 꼼수를 썼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승을 동생에게 넘겨주게 된다. 그리고 이승은 혼란해진다. 물론, 대별왕은 위의 미륵처럼 저주를 퍼붓지 않고, 어려움이 처할 때마다 도와주는 모습으로 만화상에 표현되어있다.

 '더럽고 축축한 석가', 혹은 '소별왕'이 다스리는 이승에서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마음이 불안할 때도 많고, 언제나 내가 있는 사회는 삐딱하게 보이며 곳곳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폭력과 잔인함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스스로에 대한 혐오적인 본능을 다른 누구에게 화살을 돌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우리의 삶 속에 고통이 가득하고,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야, 이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어라며. 그러한 심리 한편에는 나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았으면 하는 다른 사람들의 면면을 의도적으로 객관화하고, 관찰자 입장에서 멀리 떨어뜨리는 것으로도 느껴진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온전히 살아갈 수 없기에 내면 속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세상 속에 고통은 많고, 간접적으로라도 매일매일 그러한 소식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또 다른 이야기들을 풀어보려 한다. 그것은 더럽고 축축한 나 스스로를 위한 상상이기도 하다. 불완전하고 폭력적인 인간이 여기 있음을 인정하며 새로운 글 묶음을 시작하려고 한다. <창세가>와 같은 신화적 이야기들을 끌어들이겠지만, 미술과 미술관에 대한 단상, 영화 등 모두를 소재로 삼겠다. 일상적 우화를 통해서 우리는 남을 얼마나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글은 새로운 실험이기도 하다.



 미륵님이 자리를 비켜준 후에 남겨진 하나의 이야기가 더 있다. 석가님은 중생들을 데리고 산으로 가서 노루를 잡고 구워 먹으려고 한다. 이때 삼천의 무리 중에서 두 명은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우리는 성인이 되겠다면서 한 명은 바위가 되고, 한 명은 소나무가 되었다.

 우리에게 어두운 단면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소나무와 바위 같은 성인과 같은 현명한 무언가도 섞여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인간이 너무 고매하기만 하면 재미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인간이 그들 스스로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그것을 토대로 복합적인 감정을 조화시킬 수 있을지의 문제이다. 너와 나를 구분지을 수만은 없는 복잡하게 얽힌 사회 속 인간 관계 속에서, 불완전한 인간이 서로를 공감하고 포용할 수 있는 사회를 축축하게 그려본다.

 


참고

손진태 채록, <김쌍돌이 창세가>, 1930

조현설,『우리 신화의 수수께끼』, 한겨레출판,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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