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은 우리의 사회와 어떻게 얽혀있는가
2016년은 K-POP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연도였다. 엠넷의 '프로듀스101'이 K-POP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음악 프로그램인 엠카운트다운에서 보여준 프로듀스101은 여전히 충격적인데, 가운데의 A등급의 연습생들이 삼각형의 대열로 있고, 순차적으로 B, C, D등급의 연습생들이 또다른 정삼각형 대열로 중앙에 모여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대 아래에서 춤을 추는 F등급의 연습생들이 존재한다. 이 모든 백 한 명 가까이 되는 연습생들을 모아서 격렬한 춤을 추며 '나를 뽑아줘(Pick me)'라고 외치는 장면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불과 10여년 전 슈퍼주니어의 열 명 넘는 인원을 보면서 기겁했던 아이돌 그룹은 이제 세 자리수의 인원이 되어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한 화면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다.
프로듀스101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문제점들이 많이 지적되었다. 가장 먼저 연습생들의 명찰에 등급을 표시함으로써 마치 한우 등급제를 연상시킨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국의 끔찍한 서열 나누기가 명백하게 가시화되어 다수가 미성년 참가자인 연습생들에게 낙인을 찍는다는 것이다. 또한 분량이 편중되어 있어 101 명의 사람이 골고루 스스로를 돋보이게 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촬영 비중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투표 시스템으로 최종 맴버에 뽑히는 데에도 문제점이 생길 수밖에 없으며, 이때문에 팬들은 공정성에 문제를 삼았다. 이는 실제로 투표 조작이 이루어졌다는 수사 결과를 비추어볼 때 그러한 의문제기는 합당한 것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엠넷의 끔찍한 편집 방식이 큰 문제였다. 악마의 편집도 물론이거니와, 나는 가장 문제되는 점은 단어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한 예로, 단어가 '소녀', '소년' 등의 3인칭으로 쓰이는 단어를 2인칭으로 쓰고 있는데, 최근에 런칭한 '걸스플래닛999' 프로그램까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이는 일반 프로그램 시청자들에게는 오글거림의 극치로 보인다. 특히 가장 심했다고 생각되는 시즌1에서 MC를 맡은 장근석은 이러한 단어들을 부끄럼없이 표현할 때마다 나는 그저 이마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시즌은 어떻게 이해해줄 수 있다고 쳐도, 최근의 걸스플래닛은 '플래닛'이라는 세계관을 구성하면서 '소녀'라고 한정지으며 부르는 것은 엠넷의 상상력이 고착화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2016년 이후 반복되는 프로듀스101과 그것의 유사 프로그램들에서 무엇을 케이팝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힌트는 압도적인 참가 인원수에 있다고 생각한다.
케이팝은 듣는 음악 이상의 장르이다. 즉, 음악성 이외에도 시각적 효과를 통해서 노래의 완성도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로듀스101의 '픽미'를 들었을 때는 여타 케이팝과 차이점을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무대 퍼포먼스를 파격적으로 구성함으로써 강렬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즉 케이팝에서는 노래가 대중성이 부족하면 감각의 홍수를 일으켜서라도 공백을 채우고, 노래가 좋아도 칼군무, 음악과 어울리는 뮤직비디오의 서사 등을 통해서 완결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다만 과거와 달라진 점은 시각적인 가능성이 엠넷이라는 방송사에 의해서 규모의 영역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이전의 여자 아이돌들에게 따라붙은 '선정성'과 같은 수식어, 혹은 케이팝 군무의 화려함 등으로 한정되었다면, 아이돌이 전국적으로 '브랜드화'가 이루어졌다고 본다. 아이돌의 아이덴티티가 확립되면서 어떠한 서사를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곳은 오디션 프로를 통해서 기반을 닦아온 엠넷이었다.
아이돌의 서사는 커뮤니티와 플랫폼으로 확장되면서 케이팝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유투브에서는 아이돌 '직캠'이 개인적인 영역에서 체계적인 영역으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팬들이 아이돌을 따라다니면서 손수 영상을 찍고 공유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음악방송들이 주체가 되어 맴버 개개인의 직캠을 온라인에 올리기도 한다. 또한 화려한 무대와는 다르게 아이돌의 사적인 부분을 조명하면서 팬덤을 두툼하게 했다. 개인을 주목하고 홍보하는 영상의 예시로, 프로듀스101 방송은 연습생들의 부족한 분량을 채워줄 수 있는 통로로 프로그램 이외의 프로그램을 생산해냈다. 팬들은 그러한 영상을 하나의 이스터에그(개발자가 유저들을 위해 재미를 주기 위해 숨겨놓은 장치)처럼 받아들이면서 충성도를 높였다. 실제로 실시간 라이브와 채팅으로 교류할 수 있는 채널들(유투브, 브이라이브 등)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으며, 무대 안 뿐만 아니라 무대 바깥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아이돌과의 친밀감을 증대시키는 장치였다.
아이돌과 팬덤은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그 둘 간의 관계에서 작용하는 힘의 작용을 재고하게 되었다. 그동안 팬덤은 아이돌을 응원하기 위해서는 소속사라는 중간 매개자가 반드시 존재하였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착각'을 가지게 되었다. 아이돌을 오로지 팬들의 투표로 뽑을 수 있다는 시스템을 도입한 프로듀스101은 아이돌의 시작부터 팬덤이 깊이 관여함으로써 프로그램 참가 연습생들이 '국민프로듀서님 잘 부탁드립니다'는 절절한 요청을 시즌 내내 들어야했다. 이러한 방송 장치의 이면에는 전혀 그렇지 않은 문제들이 존재하였음을 앞에서 언급하였다. 그러나 소속사와 방송사는 쥐고있는 힘을 실제로 팬덤에 나눌 수밖에 없었는데, 중간자가 없는 형태로 아이돌 문화가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팬들의 2차 창작과 그들의 자유로운 힘은 회사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바뀌었고, 그러한 창작의 공간을 의도적으로 막는다면 팬층이 박리되는 현상도 종종 나타났다. 팬들은 아이돌의 이미지에 더 깊이 개입될 수 있었고, 그들은 스스로도 선한 이미지를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
케이팝은 그 자체로 한국 사회를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총체이다. 한국의 노동, 정치, 외교 및 사회 문제를 한 번에 보여준다. 하나의 아이돌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시작해서 그룹이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모습은 사회적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이돌은 학업 시간을 양보해서라도 소속사의 지도 아래 연습생 기간의 합숙과 연습이라는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면서도, 기약이 없는 데뷔를 바라보며 초라한 상태를 견딘다. 일찍 데뷔한다면 행운이겠지만, 3-4년 정도의 연습 기간만 거쳐도 실은 성공한 것이며, 경력 10년이 넘는 연습생도 허다하다. 10년 정도 하나를 연습한다면 초중고를 등교한 시간만큼이니 케이팝 박사의 경지에 이르는 능력을 가졌을 것이지만, 현실은 열악한 환경을 묵묵히 견뎌내야 한다. 전문적 인력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강도와 노동 시간은 전혀 줄지 않고 제대로 대접을 받는지 의문인 것은 비단 케이팝의 영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정치의 영역에서도 팬덤의 형태가 존재한다. 가끔은 외골수라고 생각되는 케이팝 팬들보다 더 비합리적인 지지 혹은 비판이 잦은 정치적인 영역은 케이팝 팬덤의 악질적인 변화 형태라고 생각된다. 현실의 영역에서 본인이 지지하는 정치인은 비판적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절대적인 대상으로 추앙된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경향성은 20년 전의 케이팝 팬덤이 확장된 것으로 생각하며, 현재 다양성을 지닌 케이팝 팬덤은 후일에 정치의 영역으로 진화할 것으로 생각된다.
케이팝 문화는 어떤 의미로든 사회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실 현대 케이팝과 사회와의 관계는 해외를 보았을 때 더 명확해진다. 여기에는 방탄소년단을 뺄 수 없다. 케이팝이 유라시아와 미대륙에서 대중적인 문화로 아직 자리잡지 않았을 지라도, 코로나 이전 세계를 다니다 보면 BTS의 팬들은 어디에나 있으며, 그만큼 한국에 대한 호의 역시 십여 년 전에 비해서 훨씬 증가했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 아이돌 그룹이 대한민국의 어느 정치인들 보다도 더 호소력 있는 연설을 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들이 공인으로서 미치는 선한 영향력에 주목한다. 그러나 반대로 버닝썬과 같은 논란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줄곧 의심되어 왔던 자본과 성상품화, 관련 범죄가 케이팝과 관련되어 있고 사회 전반적인 고찰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아이돌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 학교 폭력 등 더 실제적인 문제들도 산적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