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만을 건너다
헬싱키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나라는 에스토니아이다. 러시아 왼쪽에 붙은 발트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는 의외로 IT강국으로 유명한데, 기존의 화상채팅 시장을 지배했던 스카이프(Skype)가 에스토니아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국민들은 디지털 아이디를 발급받아 전자투표를 시행한다고 하니 유럽의 소국으로만 치부하기에는 꽤나 놀랍다고 할 수 있다.
헬싱키에서 배를 타고 두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탈린은 하루에 한 시간에서 두 시간 간격으로 배가 왕복한다. 거리도 가까워서 오늘날 곧잘 왕래하고 있지만, 두 나라의 언어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오래전부터 교류해왔음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또한 같은 유럽연합 국가라서 입국 심사가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핀란드의 학생들이 탈린으로 이동해서 핀란드에 비해 훨씬 싼 주류나 생필품을 구해오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네 개 정도의 선박회사가 있는데, 주로 타는 배는 실야(Silja)와 바이킹(Viking) 두 회사이다. 바이킹의 페리를 탈 경우에는 학생 할인을 받아서 할인을 많이 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 같은 교환학생이던 한 프랑스 친구는 2유로에 티켓을 구하여 교환학생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고는 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더 많이 이용하는 회사는 실야 라인의 배인데, 실야 라인은 횟수도 많고, 하루 왕복 티켓을 구매하면 일반 가격보다 값싸게 구매할 수 있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일반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하거나 영어 페이지에서 티켓을 구매하는 것보다 이상하게 핀란드어 페이지에서 구매하면 더 저렴했다. 그래서 70유로 가격으로 살 뻔한 티켓을 대략 왕복 45 유로에 구할 수 있었다. 돈을 아껴 써야 하는 여행자라면 조금 고되더라도 핀란드어 홈페이지에서 사기를 권한다.
개인적으로, 탈린은 대략 한 나절 정도 산책하기에 적당한 것 같다. 탈린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문화재들과 예쁜 중세 건물과 골목길이 있는 올드 탈린(구도심)을 벗어날 일은 거의 없고, 도시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동방 정교회 양식의 넵스키 대성당은 조그마한 돔이 오밀조밀하게 솟아 올라와 있어 러시아를 떠오르게 하고, 전망대에 올라가면 있는 빨간 지붕으로 덮인 3, 4 층높이의 건물들은 중세 유럽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박물관을 가고 싶은 사람은 성 니콜라스 교회처럼 교회 안에서 기독교 미술들이 있는 전시도 있고, 과거 소련 KGB 아래에서 반체제 인사들을 가두고 고문하던 KGB 감옥도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대문 형무소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에스토니아를 비롯한 발트 3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이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CIS(독립국가연합)에 가입하지 않고, 유럽 연합(EU)에 들어간 것도 경제적 이유보다 역사적인 이유가 더 크다고 생각되는 부분이었다.
전망대에서 내려보는 전경은 탈린 산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정확히 위치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The Times We Had"라고 벽에 적힌 장소가 있다. 넵스키 대성당 근처를 배회하다가 사람들을 따라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이곳의 사진을 첨부하고 싶지만, 나름 포토 스폿이라 후다닥 내 얼굴만 찍고 나와야 해서 올리기는 조금 그렇다. 검색하거나 직접 가서 보기를 권장한다. 특별할 것 없이 글씨만 쓰여있는데, 아마 직접 보고 나면 사진을 찍으면서도 왜 찍는지 스스로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탈린에서 있었던 시간들"이라는 문구는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다시 보게 될 여행자에게 나름대로 감성을 촉촉하게 건드리는 고도의 전략이라고도 생각이 든다.
나는 탈린에 두 번 다녀왔다. 여름에는 가족과, 겨울에는 친구와 가게 되었다. 핀란드에서 너무나 뼈저리게 느꼈지만, 북유럽은 확실히 계절마다 주는 느낌이 다른 듯 싶다. 그리고 눈이 쌓인 북유럽을 보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고 그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도 개인적으로는 하늘도 좀 밝고 해도 길게 떠있던 여름의 탈린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