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oi Helsinki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닢channip May 18. 2020

아이놀라, 시벨리우스의 생가

  핀란드에 지내면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장소는 아이놀라(Ainola)이다.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생가인 이곳은 헬싱키에서 통근 기차를 타고 약 30분 정도 떨어져 있어, 잠시 도시에서 벗어나 핀란드 숲길을 거닐면서 기분 전환하기 좋다. 헬싱키 근교에 눅시오 공원이나 현지인들만 아는 숲길도 많이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핀란드 숲은 무섭다. 침엽수림이 하늘을 가리고 온갖 이끼 낀 숲을 다니면 한낮에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다. 무민과 같은 트롤 이야기가 왜 핀란드에서 나오고, 무민 이야기가 대체적으로 음습한 이유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된다. 만약 너무 오래전에 버려져서 그 속에 나무가 자라고 있는 자동차를 보게 된다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놀라는 관리가 잘 되고 있고 사람도 종종 보여 적당하다. 일단 자연이 정말 좋다. 과장이 아니고,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자일리톨 껌 열 개는 씹은 것 마냥 상쾌한 공기가 나를 반겼고, 헬싱키에 돌아갔을 때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후에 더 자세히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만, 핀란드의 작곡가 시벨리우스는 민족주의적인 선율로 핀란드 인이 사랑하는 인물 Top 10 안에 언제나 손꼽히고 있다. 대중에게 가장 유명한 곡은 독립기념일에도 불리던 <핀란디아>, 그리고 교향곡 1번과 2번인데 모두 이곳으로 이사하기 이전에 작곡되었다. 그러니 이 집에서는 교향곡 3번 이후부터의 곡들을 썼다고 할 수 있다. 손꼽히는 교향곡 5번과 7번은 물론이고, 바이올린 협주곡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원래 헬싱키에 거주하던 시벨리우스는 작곡에 적합한 장소로 이사하고자 했다. 헬싱키와 그리 멀지는 않으면서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떨어질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근처에 본인의 친척과 친구들이 사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었다. 그리고 혹시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집은 탐페레 대성당을 지었던 건축가 라르스 손크(Lars Sonck)가 설계했다. 그리고 손크와의 친분 외에도 시벨리우스는 당대 지식인 커뮤니티 속에서 지적 교류를 있던 것으로 보인다. 서로 집에 초대하면서 하나의 살롱을 이뤘다는 것이다. 

(왼) 아이노 시벨리우스의 초상 (오) 초록색 난로

 

  나는 미리 이메일로 연락하여 가이드 투어를 할 수 있었다. 무료로 진행되며 20-30분가량 소요되었다. 그냥 지나치면 몰랐을 내용들을 세세하게 들을 수 있어서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초록색 벽난로와 넓은 유리창이 시벨리우스가 집을 만들 때 요구했던 두 가지 사항이었다고 한다. 시벨리우스는 색깔을 음악으로 받아들여서(영어로 설명을 들었는데, 솔직히 한국어로도 이해가 안 되는 개념이다) 초록색 벽난로를 F major로 인식했다고 한다. 난로 왼쪽 위쪽의 그림은 주황색과 빨간색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려진 내용만 보았을 때는 암울하지만 시벨리우스는 그 속에 쓰인 색을 음으로 인지해서 그림을 밝게 해석했다고 한다. 한편, 넓은 유리창은 집에서 호수가 보이도록 설계해달라고 부탁했는데, 현재는 건물이 있고 나무들에 가려서 호수는 보이지는 않는다.

 한편, 시벨리우스가 1904년 여기로 이사 올 때 돈이 부족해서 2층을 다 못 만든 채로 왔는데, 당시에는 저작권료 개념이 없어서 앞서 말한 곡들로 유명세를 얻었어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후에 핀란드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하고,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서 평생 연금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전에는 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지휘를 하면서 수입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2층이 지어지고는 홀로 조용히 작곡을 하여 그 시간에는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고 한다. 피아노 없이 머릿속으로 곡을 쓰고, 1층 거실의 피아노가 있는 공간은 손님들을 맞는 응접실이었다. 현재 2층은 화재 염려가 있어서 닫아두고 1층만 대중에게 개방하고 있다.

 

 시벨리우스는 소위 멋쟁이라서 낚시하러 갈 때도 정장 입고 다녔다고 한다. 불편함보다는 멋스러움이 우선시되었다. 위스키 애주가이자 애연가이기도 한 그는 재떨이가 여러 개 있었는데, 어떤 재떨이를 사용하는지에 따라서 그날의 기분을 추측할 수 있었다고도 한다. 한편 잦은 출장으로 인해 아이들과 많이 지내지 못하여서 아이들이 본인을 무섭게 느껴지질 않기를 바라며 집 안에 있는 자신의 동상에 유머러스한 요소도 추가하기도 하였다. 그저 추측에 불과하지만 시벨리우스의 겉은 무뚝뚝하고 어려울 것 같지만 속은 말랑하고 따뜻할 것만 같다.

 피아노는 유명 피아노 제조회사인 스타인웨이에서 제작되었는데 뉴욕과 함부르크에 있는 두 스타인웨이 본사의 합작품으로 아직도 이벤트에서 사용되어서 조율하고 있다고 한다. 핀란드에서 가장 비싸고, 가치 있는 피아노라고 하니 공연이 있을 때에 방문하여 그 소리를 듣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피아니스트가 부럽게 느껴지는 것은 덤이라고 할 수 있다. 

시벨리우스와 아이노의 무덤
한국어 설명문도 있다!

https://www.ainola.fi/?lang=en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