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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닢channip Dec 08. 2021

K-Pop 세계관의 확장 2

이달의 소녀 <Hi High>

 앞선 글에서 이달의 소녀의 세계관의 시작은 개별 멤버들이 각각 시간 차를 두고 데뷔하고 하나의 그룹이 되기까지 공통적인 음악과 시각적 요소를 통해서 시공간의 차이를 넘어 연결되는 실마리를 확인하였다. 결핍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빛을 향하여 나아가려는 소망은 좌절되자, 소녀들은 달을 목표로 삼아서 비상하고자 한다. 그리고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 서로를 찾아 나서면서, 지구, 중간계, 에덴 공간에 있던 멤버들은 하나로 뭉치게 된다. 

 완전체 이달의 소녀의 타이틀 곡인 <Hi High>는 마치 몬드리안의 작품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멤버부터 열두 번째 멤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열두 명이 세 개의 유닛들의 이미지들이 서로 모이고 중첩되면서 하나의 작품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점이 선이 되어가고, 선들이 만나서 면을 형성한다. 면들은 선을 맞대면서 더 커다란 면을 형성한다. 인물이 하나의 점이라면 이달의 소녀는 어떻게 직선으로 뻗어나가 하나의 면이 되어 이루어지는지 볼 것이다.

 <Hi High>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는 이달의 소녀 개인들의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주던 상승과 하강의 모티프를 연속적으로 이어서 제시하고 있다. 모두 하나의 공간에 모이기 위해서 누군가는 다른 멤버들을 부지런히 찾으러 다니며, 다른 이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찾아오는 멤버들을 맞이한다. 소녀들은 자신의 꿈과 소망을 이루고자 하였으나 좌절되거나 추락하였고, 이후 목표를 포기하기보다는 이를 발판 삼아 다른 이들과 연대하고 달을 향해 비상하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녀들은 높은 곳을 바라보며 새로운 안녕의 인사(Hi High)를 전하고 있다.



만남과 합일


 이달의 소녀가 유닛으로 먼저 선보였을 때, 이들은 모두 다른 공간에 속하는 존재라고 지적한 점 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이들을 지구 멤버, 중간계 멤버, 에덴 멤버 세 부류로 구분되고 있다. 그리고 <Hi High> 내에서 중간계 멤버들은 지구 멤버들과 에덴 멤버들의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의 만남은 시각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이는 중간계 멤버들이 다른 공간의 인물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영상과 가사의 파트 배분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노래의 1절과 2절은 중간계 멤버들이 지구와 에덴을 방문하면서 다른 멤버들을 만나는 과정으로 나뉜다. 먼저 1절은 지구 멤버들에게 중간계 멤버들이 뛰어가고 있다. 중간계 멤버들이 그들은 풀숲에서 헤매는 멤버들을 발견하고, 홀로 외로이 고립되어 있는 인물을 직접 찾아간다. 아래 왼쪽 사진에서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 왼쪽은 중간계 멤버가 오른쪽의 지구 멤버를 마침내 발견한다. 이 지구 멤버는 앞선 글에 삽입된 사진 중 초록색 메이드복을 입고 있는 현실적인 제약을 느끼는 인물로, 이 뮤직 비디오에서도 초록색 옷을 통해서 아직 그러한 상태에서 한 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구에서의 만남

 2절은 에덴의 공간으로 중간계 멤버들이 넘어간다. 1절 영상 부분에서 중간계 멤버와 지구의 멤버가 재회했을 때 하이파이브를 하는데, 이는 소리의 공명을 일으켜 에덴의 멤버들에게 그들만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님을 알도록 한다. 또한 중간계 멤버 세 명은 에덴에서 추락하였으나,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못한 마지막 소녀를 찾아간다. 그리고 소녀를 둘러싸면서, 다른 에덴 멤버들이 있는 공간으로 이동시킨다. 높은 곳에 홀로 서 있게 된 소녀는, 새로운 자신을 사랑하게 된 다른 소녀들의 응원을 받아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다른 이들과의 진정한 상승을 위해 추락한다. 마침내 1절의 지구의 다섯 멤버, 2절의 에덴의 멤버 네 명 모두가 중간계 소녀의 조력 하에 이달의 소녀에 합류하면서 하나의 완전체가 된다.

에덴에서의 만남. 결단을 내리지 못한 소녀를 에덴 멤버들이 추락한 위치로 이동시킨다.

 이러한 공간적인 구성은 단순히 뮤직비디오에만 국한되지 않고 음악과 퍼포먼스에도 여실히 나타난다. 1절의 가사는 지구+중간계 멤버, 2절의 가사는 에덴+중간계 멤버로 파트가 나뉜다. 이는 1절과 2절의 후렴 부분에서도 솔로 파트는 내용이 같아도 지구와 에덴의 멤버가 각각 맡으며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다('조금 더 someday, 힘을 내 Oh yeah' 부분). 또한 2절이 끝난 이후 지구->중간계->에덴 멤버 순서로 노래가 진행되는데, 이처럼 공간이 점층적으로 확장되면서 마지막 절정으로 치닫는다.

 가사와 함께 춤도 이러한 구성을 바탕으로 짜여 있다. 특히 마지막 동작에서 세 그룹으로 다시 나뉘지만 그 모습은 각 그룹마다 지구-중간계-에덴 공간의 인물들이 모두 섞여있게 된다.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해서 서로 다른 개체가 혼합되는 과정은 퍼포먼스적 요소가 결합되면서 더 완결된 합일을 이끌어내고 있다.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지만, 이전과 달리 모두 골고루 균형 있게 섞인다: (지구-중간-에덴) - (지구-에덴-중간-지구-에덴-지구) - (지구-중간-에덴)

달리기와 시선의 지평선


 영상 속의 인물들은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달린다. 서로를 찾기 위해서 뛰어다니고, 서로 만나게 된 이후에도 달리기를 한다. 이 행위는 이달의 소녀라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작품 간의 연결 고리를 제공하고 있다. 중간계 멤버들이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중첩적으로 등장하고, 서로 다른 공간 속의 인물들의 내적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달리기다.

 달리는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직선적이다. 인물들은 경주하듯 출발선에 서서 자신의 방향으로 달려 나간다. 이러한 점에서 이달의 소녀는 완전체가 되면서 몬드리안의 작품과 같은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하나의 점에 불과한 인물들이 각각 뻗어나가는 수직과 수평의 직선으로 만나서 하나의 그리드(grid), 구획을 형성하고 이것이 모여서 2차원적인 면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미 만남에 도달한 유닛들은 하나의 면으로 다른 공간 속에 존재하는 유닛의 면과 선을 맞닿고 점점 확장시키고 있다. 그 내부의 결합은 동일한 것이 없으며, 선들은 노래처럼 통통 튀면서 여러 가지 색으로 개성 있게 나누어진다.

몬드리안, <Broadway Boogie Woogie>

 무엇보다도 음악이 시각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몬드리안적 해석을 견지할 수 있다. 뮤직 비디오 속의 직선의 방향은 가로, 세로, 혹은 사선을 이동하면서 달리기를 통해서 그룹의 결성되고자 하는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간계의 멤버들은 그림의 흰색, 회색, 빨간색, 파란색 등을 잇는 노란색 선으로 달려 나가면서 지구와 에덴의 공간을 연결한다. 그리고 연결된 선들에는 서로의 색이 물들어 가면서 더 다채롭게 꾸미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퍼포먼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부여하고 있는 조화롭게 섞인 상태와도 같다. 이러한 방식은 음악의 쾌활함과 생기 있는 비트와 맞물려 첫 만남으로 설렘 가득한 장면을 연출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달리기는 주제의 확장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다. 인물들은 한강 다리 위를 달리고, 계단과 오르막을 뛰어 높이 점프하며, 옥상에서 낙하할 것처럼 하늘 위를 향해 뛰고 있다. 멤버들이 모두 모여 보름달이 차오른 이후의 이러한 달리기는 만남의 행위가 완결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인물들은 달리면서 저 높은 곳을 향해 인사하고, 날아가고자 하는 소망을 표현한다. 이들은 새로이 맞이하는 하늘에 인사를 하듯 손짓을 하지만, 위로 올라가 공중에 떠 있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언뜻 보기에 이러한 달리기는 상승을 위한 도약으로만 비친다.

옥상 위를 달리며 하늘을 향해 뛰어올랐지만 아직은 조심스러운 듯 아래를 보며 하늘 걸음을 걷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물들의 달리기는 이미지에 담긴 시선이 수평적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준다. 만남의 의미가 이어진다고 보았을 때 달리기는 멤버들을 찾아 나서기 위해서, 혹은 남보다 조금 위의 시선에서 소외된 소녀들을 찾아내고 함께 상승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추락과 상승이라는 수직적인 시선에서 발전된 이러한 수평적인 시선들의 가능성, 즉 이달의 소녀의 외연으로 뻗어나가는 확장 가능성은 단순히 상상된 공간이 아니라 실제의 공간으로 우리를 개입시킬 수 있음을 암시한다. 아이돌 존재 자체로 완결되는 내부에서의 서사를 전개하는 것을 뛰어넘고, 이러한 이미지들이 실제의 삶 속에 발현될 수 있는 씨앗을 퍼트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우리의 목표와도 인사를 마쳤다. 2년이나 되는 긴 방황 끝에 모두가 하나의 평면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나비처럼, 우리의 작은 날갯짓으로 함께 비상한다.

저 높은 곳과의 조우, 새로운 안녕의 인사. Hi Hi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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