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소녀의 예 1
K-Pop에서 세계관은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이다. 만약 세계관이라는 것이 형성되어 있다고 해도 대부분 음악을 소비하는 한국인들은 뮤직비디오나 가사의 내용을 곱씹으면서 숨은 의중을 파악하기보다 가볍게 소비하고 있다. 한 예로 2020년에 데뷔한 걸그룹 에스파를 비롯해 SM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 그룹의 가사가 광야(Kwangya), 블랙맘바(Blackmamba) 등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고유명사들을 남발하고 있음에도, 가사의 뜻을 이해하기보다 매력적인 음을 통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특정 그룹의 팬이 아니라면 세계관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음악이 음악 외적인 것과 밀접하게 관계 맺으면서 세계관이 가사 텍스트와 시각 이미지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이는 케이팝이 단순히 듣는 음악 이상으로 시각적인 비주얼 퍼포먼스라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다. 작사와 작곡은 분위기에 맞게 서로 조율해야 하며, 여기에 무대 퍼포먼스와 뮤직비디오 또한 케이팝에 몰입할 수 있도록 꾸며져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시도된 세계관은 아이돌 그룹에 캐릭터성을 부여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그룹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정하였다. B.A.P나 EXO(엑소)와 같은 남자 아이돌 그룹은 외계인, 초능력자 등의 콘셉트를 부여하였고, 드림캐쳐는 '악몽'을 주제로 노래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에스파는 광야라는, 현실과 연결되는 이세계와의 교감이 이루어진 일종의 메타버스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세계관이라고 하는 것은 희곡의 인물 설명을 읽고 무대의 장치들을 확인하는 문학적인 장치라고도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튼튼한 세계관을 구축해왔다고 평가되는 이달의 소녀(LOONA)를 바탕으로 세계관의 확장 과정을 보고자 한다. 모든 내용을 요약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관을 둘로 나누고 있음을 밝힌다. 모든 멤버들이 루나버스(LOONAverse)라고 하는 세계관으로 귀결되는 과정을 '서사1'이라고 하고, 멤버들이 세계관 속에서 개인적인 캐릭터와 서사를 부여받는 '서사2'로 나눌 때, '서사1'을 중심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서사1 속에서 루나버스 세계관으로 몰입하는 과정에서 가사가 어떻게 표현되고, 시각 표현이 음악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방식을 보고자 한다. 궁극적으로는 이달의 소녀의 예시를 통해서 케이팝을 미술사적인 위치에 둘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이달의 소녀의 세계관을 시작하기 이전에 몇 가지 멤버에 관한 설명이 필요하다. 멤버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뉘는데, 숫자로 분류하자면 1~5번까지 지구의 소녀들, 6~8번까지 중간계의 소녀들, 9~12번까지 에덴이라는 천상계 공간에서 머물던 소녀들이 있다. '지구 멤버', '중간계 멤버', '에덴 멤버'라고 지칭하도록 하겠다.
이달의 소녀 멤버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소망을 가지고 있으나 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실에서 벗어나서 더 좋은 삶을 살고, 인간적인 면을 되찾거나 사랑을 이루고 싶어 한다. 멤버 희진의 경우 청소부를 하는 본인의 생활에서 벗어나서 색을 칠하듯 화려한 삶을 꿈꾸고, 멤버 비비는 안드로이드 로봇으로서 과거의 인간이었던 시절을 희구한다.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본인들의 소망이 좌절될 뿐이다. 땅으로 고꾸라진 그들은 문제를 직면하고 자신의 목표를 조금 수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할 사람들을 찾게 된다.
그들의 소망은 상승의 욕구로 비유적으로 표현되며, 그 좌절은 추락이다. 상승의 대상은 태양으로 상징되고 있다. <Singing in the Rain>에서는 '한낮의 태양을 삼켜버린 죄로/지금 난 여기 뜨거운 채로' 밤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 밤에 그가 향하는 대상은 더 이상 태양이 아니라 달이 되었다. <new>에서는 '점점 더 태양에 다가서려/타버린 날개 짓 속에'라는 가사가 등장하고 있다. 태양을 삼켜버렸다는 것은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섰다는 뜻이고, 타버린 날개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소망은 이카루스의 비상을 상기시킨다. 스스로의 한계를 모르고 무모하게 날아오르다가 추락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락은 자신의 상황을 명확히 인지시킨다. 타버린 날개의 다음 가사는 '초라한 내 모습 그때 겨우/알게 된 내 new days'로 새롭게 태어날 자신을 더 사랑하도록 한다. 이 다짐은 뮤직비디오 내에서 사과라는 금기의 상징을 베어 물면서 확인된다. 금기로 천상계 공간인 '에덴'에서 추방을 당하게 되겠지만, 그러한 추락도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다. 스스로의 한계를 깨달았을 때, 편하게 세상에 안주하지 않고 조금 힘들어도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가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달빛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또 다른 소녀가 추락해있다. <Egoist>에서는 처음부터 새의 깃털이 널브러져 있고, 그 위에 한 소녀가 누워있다. 그는 '너'라는 사람이 자신을 잡아주기를 바랐으나, 결국엔 '너'는 손을 놓게 된다. 떨어진 '나'는 피로 물들어 깃털이 빨갛게 변하기도 하고 분노의 감정도 일어나지만, 금세 나 자신을 더 사랑할 것이며 '너'를 내보내겠다는 선언을 한다.
이 영상에서 '나를 사랑할 것이다'라는 선언은 단순히 소망의 좌절로 인한 급격한 심경의 변화를 보여주지 않고, 좌절 이후 새로운 환경으로 나아가게 될 스스로의 불안감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앞서 추락을 무서워하지 않는 듯이 사과를 곳곳에 떨어뜨리고, 수많은 사과를 펼쳐두고 골라서 먹고 당돌하게 우리를 쳐다보는 소녀와는 다르게 <Egoist>에서의 소녀는 사과를 먹지 못한다. 사과를 입에 가져가지만 결국 깨문 것은 본인의 입술로, 금기를 깨고자 하는 용기는 부족한 상태이다.
이 인물의 가치관은 혼란스럽지만 본인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 '한 번만 너를 돌려달라고' 기도하던 나의 모습, 즉 태양으로 상징되는 너를 쉽게 놓을 수가 없다. 바로 이어지는 가사로 '우리의 약속들이 빛이 되던 날 비로소 알게 된 거야'에서 약속은 소망, 사랑이라면, 소망과 사랑이 빛이 되어 '비로소 알게 된' 내용이란 태양의 빛이 '나'의 날개를 녹여 '나'를 추락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너'에게 다가가는 도구인 날개를 마지막에 불태울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은 스스로 추락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점에서 불완전하지만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계기가 된다.
추락과 상승의 욕구는 개인이 품고 있는 소망과 그것이 좌절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동시에 상승의 욕구는 없어지지 않고 진짜 그들의 소망을 이루어줄 수 있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최초에 그들은 태양을 향하였으나, 태양의 빛은 파멸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반면 달은 은은하게 빛을 반사하되 폭력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그들은 달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상승하려는 것은 빛을 따라가기 위함이며, 가사와 영상 속에서 빛은 개인에게 중요한 순간을 형성하게 된다.
빛을 주제로 관통하는 뮤직 비디오는 열한 번째 멤버 고원의 <One&Only>로, 다른 멤버들보다 고원은 인물 캐릭터성에 더 신경 써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고원의 상징물은 나비이며, 사랑을 주요 상징적인 감정으로 표현되어 있다. 고원의 경우 영상의 내용이 아직 미성숙한 애벌레에서 천으로 덮여 번데기가 되는 과정, 마지막으로 본인에게 일종의 각성의 계기를 주는 파인애플을 먹고서 나비로 변태 하는 과정을 따라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나비'의 속성과 고원의 사랑이라는 감정은 완전체 이달의 소녀 <Butterfly>까지 주제 의식이 이어지고 있다.
이 곡은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달빛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빛이란 기본적으로 진실된 자아를 볼 수 있도록 하는,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무언가다. 가사에서 '하늘 가득 조명처럼 밝혀준 달빛/그 아래서 춤추는 내 모습이 반짝'하고, '눈을 떴을 때/반짝이는 이 순간 진짜 나를 보게 돼'라고 말하고 있으며, '내 맘 속에 빛을 낼 수 있는 사람이/오직 나뿐이라는 걸 One & only'라는 언급은 빛이 존재할 때 스스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아는 것이라고 보인다. 따라서 나 스스로 빛을 낼 수 있기에 본인의 의지 없이 안주하는 공간인 '에덴 같은 건 필요 없'게 된다.
고원은 다른 멤버들과는 다르게 추락이 물리적으로 상상되기보다는 빛과 그림자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하면 긍정할 수 있는지를 보고 있다. 나비가 되기 이전에는 말로는 새로운 세계에 있는 자신을 부정하지 않지만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곡에서는 '그림자가 한 걸음 먼저 다가올 땐/어둠도 밝게 느껴져'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림자는 고원 자신이 갈망하는 왕관을 이미 쓰고 있거나, 그림자 스스로 춤을 추는 등 더 진짜 같은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다.
고원은 그림자와 괴리를 해결하기 위해서 애벌레와 같은 상태에서 나비로 탈바꿈할 시간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상한 세계에 떨어져/살고 있다 말해도 난 괜찮아/주인공이 된 거니까'라는 가사와 동시에 중앙에 있던 고원이 샹들리에를 왕관 삼은 듯이 서있다. 그러나 실제의 인물은 주인공이 아니라 그림자처럼 표현되고, 샹들리에 왕관은 착시적 효과로, 본인의 실제 모습과 떨어져 있다. 오히려 그다음 장면들에서는 실제의 고원과 다르게 자신의 그림자는 왕관을 쓰고 있다. 그림자들은 종종 자신에게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고원은 '나'와 내가 비친 그림자의 모습을 고민하면서 천을 뒤집어쓴 채 자신의 방에 들어가고, 번데기가 되어 성숙해지는 시간을 갖는다.
마침내 고원이 나비로 변태 하였다는 것을 어두운 흑발에서 빛을 내는 듯한 금발로 보여주면서, 고원이 츄와 이브를 볼 수 있게 될 때 고원은 비로소 실재하는 관을 쓴다. 앞서 쓴 글에서 츄의 지시적인 행위가 이브와 고원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는 장치라고 하였다. 우리는 그 관계의 목격자로서 그 둘의 세리머니의 증인이 된다. 이때 흘러나오는 가사는 '창에 비친 새로워진 나의 모습/이제 낯설지가 않아/다시 또 들려오는 목소리에/귀를 기울이고 있어'인데, 새로워진 나의 모습은 나비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또 들려오는 목소리'는 우리는 앞서 시각적인 효과를 통해서 츄와 이브임을 확실히 확인한다. 그러한 점에서 검은 옷을 입은 이브가 고원에게 관을 씌워주고, 서로 포옹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자가 춤을 추던 가로로 긴 장면은 이때 흑백의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고원 스스로가 군무를 이어가게 된다.
그러면 여기에서 왕관을 쓰는 것은 무엇이고 포옹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라는 의문이 남게 된다. 왕관은 고원이 나비가 되기 전부터 소망하였지만, 그림자만 왕관을 쓰고 있었기에 시각적 착시의 형태로라도 소유하고자 하였다. 그것을 욕망한다는 점에서 왕관은 빛을 내는, 혹은 빛으로 나아가기 위한 상징물이다.
이브의 포옹은 왕관의 상징적 측면에서 두 가지로 해석해볼 수 있다. 먼저 에덴이라는 공간에서 먼저 추방된 이브는 고원이 혼자서 이루지 못한 일을 서로 간의 연대를 이룩할 수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자아의 성장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에 발을 내딛을 때, 그 장소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안아주고 도와줄 수 있다. 나아가 둘 간의 관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와, 후에 서로 재회하게 될 모든 멤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두 번째 해석으로는 자기 자신의 그림자와의 화해와 자기 긍정으로도 볼 수 있다. 이브의 옷처럼 어두운 그림자는 자기 자신의 존재이면서 스스로를 투영했을 때 실제의 자신보다 더 크고 화려한 존재였다. 고원이 그림자에 위협을 느끼는 면도 자기 스스로에 거는 기대치에 비해서 초라하게 느껴지고, 그러한 상황에 압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원이 자신을 숙고하는 어둠 속에 웅크린 번데기가 되어 나비로 탈바꿈하였을 때 비로소 자신의 그림자를 인정하고 그림자 역시 자신을 안아주는, 즉 자기를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한다. 자기애를 충족시킨 후에 고원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복도를 뛰쳐나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포옹은 두 해석을 바탕으로 볼 때, 자기애를 성취하고 그것을 시각과 음악적으로 바깥의 세계로 확장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두 해석은 첫 번째는 시각적인 지시를 따른 것이며, 두 번째 해석은 도상을 해석함으로써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공존 가능하다. '우주 속에서 티끌과도 같은 나'라는 아주 작은 존재를 내가 만날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하고 외연으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둘의 관계가 이루어진 그 자리에 남은 하얀색 기단의 모습은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그것을 증명하듯이 기념비처럼 서있다. 이곳에 이브와 고원이 있었고, 그 둘은 밖으로 나아가며 이달의 소녀들이 서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두 사람을 상징하는 믿음과 사랑이라는 감정은 에덴이라는 상자에서 튀어나와서, 앞으로 이달의 소녀가 만났을 때 그 감정이 진행될 것이다.
위와 같은 개인들의 공통적인 서사는 왜 이들이 이달의 소녀로 나오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준다. 이달의 소녀의 멤버들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순차적으로 데뷔를 하였고, 솔로와 유닛 활동을 통해서 음악을 선보였다. 이는 멤버 간에 필연적으로 시간적인 차이가 존재하였고, 음악 속에 드러난 세계관은 멤버들을 지구, 중간계, 에덴 등과 같은 공간에 존재하였다. 그들이 다른 시공간에 있음에도 하나의 그룹으로 뭉쳐야 하는 공통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자기를 사랑하되 혼자의 힘으로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도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가 소망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렇다면 누구를 어떻게 만나게 될까? 그리하여 등장하는 곡이 완전체 이달의 소녀가 부른 <Hi High>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