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ci n'est pas le clip, 이것은 뮤직비디오가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는 그의 작품 <이미지의 배반>에서 파이프 그림을 두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우리는 이 그림이 파이프를 묘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그림일 뿐이며, 실제로 사용하는 파이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그리트의 말은 참이면서 거짓이다.
여기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은, 파이프는 어떠한 점에서 '파이프'라고 정의되는가와, 묘사된 물체가 파이프가 아니라면 그림 속의 물체는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그림이 파이프가 아니라고 했을 때는 그것의 기능적인 측면을 바탕으로 정의한 것이다. 하지만 기능에만 집중한다면, '재현된' 파이프는 어떤 기능과 의미를 지니는가? 그림은 모방에 불과할 뿐이고, 사물의 본질에서 벗어난 표현들의 집합으로서 그림은 필요치 않을 것이다.
레드벨벳의 <Bad Boy> 뮤직비디오는 마그리트의 문장에서부터 시작한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장은 '이것은 입술이 아니다'라는 문장으로 바뀌었고, 입술 마크가 겉표지에 그려진 책이 등장한다. 책 표지의 입술은 실제 입술은 아니고, 그려진 입술이다. 또한 레드벨벳 멤버들의 입술도 실제 사람의 입술이면서, 영상으로 투영된 2차원적 평면이다. 멤버 중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있고, 다른 누군가는 입술은 그려지지 않았으나 문구가 적힌 책을 들고 있으며, 또 다른 인물들은 내용이 없는 빈 책만 펴두고 있다. 우리는 무엇이 되었든, 그들의 입술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인물들의 입술은 아주 붉고, 혹은 분홍색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종종 비밀스러운 말을 하는 듯이 근접 장면을 비추어주기도 한다. 이때 입술의 색은 인물의 몸과 배경까지 연결이 되며 환유와 제유의 과정을 거친다. 입술은 인물의 얼굴의 색, 검거나 혹은 하얀 배경과 대비되면서 시선의 집중을 이끈다. 그러한 붉은색과 분홍색은 입술뿐 아니라, 옷, 가구, 불, 주변의 장식물과 배경의 빛 조명까지 비슷한 색감으로 퍼지게 된다. 샹들리에는 마치 가짜 장식인 것처럼 붉게 표현되어 있고, 중앙의 인물의 입술과 인물의 옷까지 수직으로 연결된다. 색을 통한 연결점은 신체 일부에서 전체, 그리고 공간 전체에 이르기까지 입술의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붉은색을 곳곳에 배치하면서 입술은 입술 이외의 것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뮤직비디오 속에서 음산한 마네킹과 가구들이 펼쳐져 있는 공간도 공간이지만, 가장 이질감을 주는 장소는 바로 빙벽으로 둘러싸인 길 위에 분홍빛 침대가 덩그러니 놓인 곳이다.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배치를 함으로써 현실이 아닌 또 다른 세계에 존재하고 있음을 상상하도록 한다. 이러한 초현실주의적 기법의 사용과, 입술, 침대의 조합은 살바도르 달리의 <메이 웨스트의 방>의 장면을 연상시킨다. 달리는 착시를 통해서 메이 웨스트의 얼굴처럼 생긴 공간을 만들며, 메이 웨스트의 눈은 회화 작품으로, 코는 벽 장식, 입은 입술 모양의 소파를 배치하였다. 이렇게 꾸며진 방은 공간으로 작용하면서 메이 웨스트의 신체이기도 하다.
'입술이 아니다'라는 문구는 이러한 점에서 뮤직비디오와 달리의 공간 속에서 같은 의미를 지닌다. 메이 웨스트의 입술은 입술이 아니라 소파이다. 그것은 기능적으로는 소파이지만, 그것이 '재현된' 형태는 입술이다. 마찬가지로 빙벽에 둘러싸인 침대는 입술이 아니다. 하지만 뮤직비디오의 영상 속에서 확장되는 입술의 의미는 붉고 분홍빛 색으로 재현되면서 침대는 입술이 된다. 즉 분홍색 침대는 형태의 의미가 확장되어 도달한 어떤 인물의 신체, 혹은 그의 공간으로서도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이것이 입술이 아니면 입술은 무엇인가를 대답할 필요가 있다. 입술은 여러 형태로 재현되는 것이다. 레드벨벳의 입술은 신체의 일부로서 말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기능적인 역할이 있다. 그렇지만 노래를 듣는 데는 시각이 사용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이 노래 부르는 입술을 청각으로 느끼지만 그것을 실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고 있기 때문에 입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입술이 재현되는 이유도 입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현된 입술은 붉은색이 그것을 대표하면서 같은 색으로 덮인 신체의 부분으로서 몸을 표현하는 것까지 나아가고, 그들의 몸은 역시 같은 색으로 칠해진 공간과 확장된 관계를 맺고 있다. 입술은 실제와 비실제가 연결되는 지점이고, 초현실 속에 놓인 입술, 인물, 공간은 개인의 내적인 무의식으로 확장되어 표현하기 위함일 수도 있고, 현실 바깥으로 뻗어 그것을 보는 우리와의 연결을 시도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분홍 입술에 분홍색 옷을 입고 현실적인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레드벨벳은 여전히 실제의 공간에 우리가 있는지 물어보는 듯하다.
이것은 뮤직비디오가 아니다. 음악에 맞게 영상을 통해서 미학적 효과를 주기에 뮤직비디오라고 할 수 있으나, 영상이 음악 이상의 의미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로 SM엔터테인먼트에서 발전시킨 이와 같은 뮤직비디오는 K-Pop에 있어서 음악은 듣는 것이 아니라 볼 수도 있다는 확장성을 부여했다. K-Pop 뮤직비디오의 미학은 단순히 음악의 범주에서 평가되는 것 이상으로 넓은 시각에서 고찰할 필요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