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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Nov 26. 2022

아내가 못 먹는 나만의 고등어조림

너무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살아가기

가끔은 '오늘 운이 좋은데?' 하는 날들이 있다.

복권과는 거리가 먼 나조차도 그런 날이면 머릿속에서 '로또를 사야 하나?'라는 생각에,

길가에 적혀있는 '로또' 간판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 들어가 천 원짜리 복권을 바라보며 행운의 여신이 강림이라도 한 듯 1~45번까지의 숫자 중  6개를 찍고 나면 다가오는 토요일까지 불확실한 행복을 살 수 있겠지만,

차라리 그 돈으로 아이스크림 할인점에서 파는 구구콘 하나를 입에 물며 확실한 행복을 사는 게 나는 오히려 좋다.




새벽을 덮은 어둠이 사라질 때쯤 평소보다 30분 일찍 집에 도착했다.

새벽 배송 일을 하면서  제일 답답한 상황은 엘리베이터가 20층 넘는 고층에 머물러 있는 경우다.

건당재로 일하는 입장이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으면, 이 시간에 물건을 하나 더 배송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잠깐의 시간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그런데 오늘따라 모든 엘리베이터들이 1층에 머물러 있을 뿐만 아니라. 만나는 사람도 없어서 곧장 현관까지 물건을 배달할 수 있었고. 자연스레 머릿속에는 '오늘 운이 좋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꺅꺅 꺅꺅' 주차를 하고 집에 들어가려는 순간, 평소에는 듣지 못하던 까치 울음소리가 아파트에 울려 퍼진다. 운이 좋은 하루에 까치까지 울어주니 정말 좋은 소식이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와이프 : 어서 와~ 날씨도 추운데 많이 힘들었지? 배고프겠다. 아침밥 차려줄까?

나 : 괜찮아. 소식하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앞으로 아침은 안 먹으려고.

와이프 : 일하고 와서 힘들 텐데 아침은 챙겨 먹는 게 좋지 않을까?

나 : 공복을 장시간 유지해야, 간에서 해독을 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대 장수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소식하는 식습관이 있었다는 결과도 있고 하니까. 앞으로 아침은 안 먹으려고.

와이프 : 하... 나도 요즘 살이 다시 쪄서 먹는 거 줄여야 하는데... 안 되겠어! 나 오늘부터 다시 다이어트할 거야!

나 : 파이팅~.


건강을 위한 소식임에도 남편이 조금 먹는다는 소리에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와이프는 새해 다짐을 하듯 결의에 찬 눈빛으로 다이어트를 결심하지만. 하루 한 번은 꼭 듣는 소리기에 영혼 없는 응원을 보냈다.


와이프 : 그리고 자기야 다음 주 토요일에 책 출간 작업 정리를 해야 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워크숍 가기로 했어. 그래서 하루 자고 올 건데 괜찮지?

나 : 그럼 그날 연송이랑 둘이 있어야겠네?

와이프 : 아니, 연송이도 같이 갈 거야. 그래서 외롭겠지만 자기 혼자 있어야 해. 집 청소 좀 해주고 일요일에 교회도 혼자 가야 될 것 같아. 미안해~.

나 : 알겠어 걱정 말고 다녀와.



까치야 고맙다!! 좋은 소식이 이거였구나!!


예능이나 유튜브를 보면 와이프가 친정을 가기 위해 집을 비우는 상황에서, 남편이 방방 뛰며 좋아하고. 그 사이를 틈타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신나게 노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 모습은 마치 억압받던 노예가 노예해방 선언을 눈앞에서 목격이라도 한 듯 감격스럽고 자유로워 보인다.

그런 콘텐츠를 보면 나도 어느 정도 공감은 가지만 노예가 해방된 모습이 아니라, 정해진 길보다는 골목골목 새로운 길을 좋아했던 나에게, 나만을 위한 하루를 선물로 준다면 거절할 의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들면서 이 귀중한 선물을 어떻게 활용할지 즐거운 고민에 빠진다.

자세한 스케줄을 정한 건 없지만 그날 저녁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고등어조림을 해 먹을 것이다.

아들은 고등어를 좋아하지만 매운 것을 못 먹고, 와이프는 어렸을 적 고등어를 억지로 먹인 할머니 때문에 알레르기가 났던 기억으로 고등어를 먹지 못한다.

새벽 배송일을 하기 전에는 직장 동료들과 먹기라도 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고등어조림에 대한 욕구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토요일 아침.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잠자리에 들었다.

평소 같으면 부엌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피곤한 몸을 일으켰겠지만 오늘은 적막함에 눈이 떠졌다. 반쯤 감긴 눈을 비비며 거실로 터벅터벅 걸어 나가 식탁 의자에 앉았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배고픔을 뒤로하고 한참을 멍 때리며 고요함만이 줄 수 있는 평온함을 마음껏 즐겼다.


정신을 차린 뒤 냉동고로 가서 얼어있는 고등어를 2마리 꺼냈다. 순간 얼음장 같은 차가움이 손끝에서부터 올라와 뇌를 번쩍 깨웠다. "아오 겁나 차갑네..." 내동댕이치듯 고등어를 싱크대에 던져 넣고 밥의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밥솥을 열 보니 텅 비어있었다. '밥해야겠네.' 이렇게 된 거 고등어 비린내는 쌀뜨물로 제거하면 되겠다.' 밥을 안치고, 쌀뜨물을 담아둔 쇠그릇 안에 고등어를 넣어 둔 뒤 나머지 재료 준비를 한다.


무 1/5개, 대파 1개, 감자 1개, 양파 1/2개, 청양고추 1/2 개를 준비하고

양념은 숟가락 기준. 매운 고춧가루 3스푼, 고추장 1/2스푼, 진간장 5스푼, 청주 2스푼, 다진 마늘 1스푼, 설탕 1스푼, 참기름 1/2 스푼, 후춧가루 약간을 넣어 준비한다.


넉넉한 크기의 냄비 안에 양파와 감자를 깔아 놓은 후 고등어를 그 위에 올려놓고. 무의 단 맛이 고등어에 베일수 있도록 고등어 위에 무를 얹어 두었다.


오늘 저녁 고등어조림 어떠세요?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따로 담아둔 쌀뜨물을 부은 후 양념을 넣었다.

이제 센 불에 10분, 중불에 5분 동안 끓이다가 대파와 청양고추를 넣고 물이 자작해질 때까지 약불에 조리기만 하면 된다. 중간중간 불 조절을 하면서 비는 시간을 이용해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리니 맛있는 냄새와 함께 요리가 완성되었다.


갓 지어진 뜨끈한 밥과 고등어조림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왔다. 혼자 먹는 식탁에서 이 정도면 더할 나위 없는 진수성찬이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쌀밥을 숟가락에 가득 퍼 담고 그 위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고등어를 젓가락으로 발라 얹은 후 입속으로 직행하였다.


비린내를 잡아 거북하지 않은 고등어의 맛있는 냄새가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만족스러운 향기에 취하며, 무의 단맛이 가득 배어있는 고등어의 속살을 흰쌀밥과 함께 씹으니

양념과 섞여 매콤 달콤한 맛들이 혀끝에서부터 행복을 전달한다.

'이거지, 이게 행복이지!'


첫 번째 행복을 목구멍으로 넘긴 후 붉은색으로 물든 투명한 무를 집어 먹었다.

잘 익어 부드러워진 무는 아직 몸 밖으로 배출시키지 못한 단맛을 힘껏  발산하였다.

매력적인 달달함에 고백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너무 맛있다.


다음으로 감자를 집어 먹었다. 보들보들한 속살들이 흩어지며 고소한 달콤함을 가득 채워줬다.

탄수화물은 역시 옳다.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만의 즐거움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양념 한수저를 쌀에 쓱쓱 비벼 먹었다. 양념으로 무장한 쌀밥의 군단들이 내 혀를 공격하지만 방어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이런 맛있는 공격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밥 한 공기를 후딱 해치우고 뒷정리를 한 뒤 천 원짜리 구구콘을 입에 물며 소설책을 읽었다.

그리고 아내가 부탁한 집 청소를 한 후에 브런치에 올릴 글을 작성하였고. 저녁으로는 치킨과 맥주를 먹으면서 영화 한 편을 즐겼다.


가족이라는 집합체 안에서는 개개인의 균형 있는 삶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그만큼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고, 게임하기, 시 쓰기, 영화와 예능 보기 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을 가족 속에서 너무 싱겁지도, 너무 짜지도 않게 알맞은 간을 맞춰가는 중이다.


오늘 하루도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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