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채워주는 법
분명 저 음식을 다 못 먹을 거라는 걸 나는 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 것 먹겠다는데 굳이 말리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와이프는 미역국을 사랑한다.
미끌미끌한 촉감의 미역도 와이프는 보들보들해서 좋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표현이지만 아들을 낳고 3개월 내내 먹던 미역국은 지친 몸을 회복시켜주었고 자식을 나은 기쁨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음이기 때문에 가능한 표현이라고 본다.
주말이 끝나고 새로운 월요일 찾아왔다. 새벽일을 마치고 매일 수십 번씩 생각하는 거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오늘 뭘 먹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국거리용 소고기가 눈에 들어왔다. 어제 미역국을 먹었음에도 추운 날씨에 장을 보러 가기 귀찮은 마음에 와이프에게 오늘 저녁으로 미역국이 괜찮은지 물어봤다.
나 : 자기야 오늘 저녁에 미역국 할까?
와이프 : 미역국 너무 좋지!!
나 : 어제 먹었는데 괜찮아?
와이프 : 난 미역국만 먹고살 수도 있어!
배고픔에 잠에서 깬 나는 주방으로 가 큰 냄비에 미역을 넣고 태블릿을 열어 '런닝맨'을 틀었다.
나는 유재석 MC님이 나오는 예능은 꼭 챙겨보는 편이다. 게스트를 챙기고 고정멤버들의 장점을 부각해주는 진행이 좋기도 하지만 프로그램에 임하는 유재석 님의 자세를 존경하기 때문에 항상 예능을 보며 배우고 있다.
중불에 올려둔 냄비 위에 참기름을 두 바퀴 두르고 냉장고에 있던 국거리용 소고기를 볶는다. 소고기 겉면이 살짝 익을 때쯤 미역에 물기를 손으로 꾹 눌러 제거하고 냄비에 넣어 같이 볶아준다.
볶는 과정에서 나는 5분 이상 충분히 볶아 미역의 겉면을 살짝 태운다. 여러 번 미역국을 해본 결과 그렇게 하면 국물에서 더욱 깊은 맛이 난다는 걸 알았다.
다 볶은 후에 물을 넉넉히 넣어주고 소금 한 꼬집과 국간장 두 스푼을 넣고 다진 마늘 반 스푼을 넣는다 그리고 더욱 감칠맛을 내기 위해 까나리 액젓 반 스푼을 넣고 20분간 국물을 우려내면 완성된다.
밥그릇 한가득 밥을 담고 냉장고에서 깍두기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얼마 전 와이프를 보러 온 처제가 시어머님께서 담그신 거라며 푸익은 깍두기와 덜 익은 깍두기를 가져왔는데 내 스타일인 푹 인은 깍두기를 쵸이스 했다.
밥을 한가득 퍼 입안 가득 채우고 뜨거운 미역국에 델까 조심조심 흡입하였지만 용광로처럼 뜨거운 국물에 입안에서 좌우로 밥알을 뒹굴며 뜨거움을 입 밖으로 분출시켰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진정이 되지 않아 재빠르게 깍두기를 집어넣어 씹었다.
그제야 걸쭉한 국물에서 나오는 미역국의 짭짤함이 느껴졌다. 짭짤함 뿐만 아니라 다진 마늘과 참기름이 어우러져 고소함을 더했고 급하게 집어넣은 푹 익은 깍두기의 시큼함과 매콤함이 혀를 자극시켰다.
맛있다.
밥을 반공기 정도 비웠을 즘 깍두기만으로는 아쉬워 배추김치를 꺼내왔다. 미역국을 먹은 후 배추김치를 먹으니 배추만의 아삭함과 시원함에 더욱 다양한 맛을 선사했다.
이제 국에 밥을 말아먹을 차례이다.
쌀에서 나온 전분으로 더욱 걸쭉해진 미역국은 미역죽을 연상케 했다.
걸쭉해진 국물이 혀 전체를 감싸면서 더욱 감칠맛을 만들어 냈고 김치와 한층 더 어우러진 조합이 되었다.
'어흐~~!!' 몸 안에 건강함이 가득 채워지는 느낌을 받으며 국밥 한 그릇을 다 먹은 아저씨처럼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점심을 먹고 집 정리를 한 후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저녁에 와이프와 아들이 왔고 미역국을 보고 싫어하는 아들과는 반대로 와이프에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이미 내 입으로 검증을 끝마친 미역국을 저녁으로 먹으며 와이프는 행복한 저녁식사를 하였다.
와이프에게 부족한 것은 나에게 있고 나에게 부족한 것은 와이프에게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함께 하는 것을 택했고 미역국처럼 서로를 채워가며 좀 더 걸쭉한 인생을 만들어 가고 있다.
오늘 하루도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