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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Dec 05. 2022

이것만 먹고살 수 있어 미역국

누군가를 채워주는 법

특별한 음식이란, 단순히 어떠한 날을 기리기 위해서가 아닌. 개개인이 가진 각별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어렸을 적 맞벌이로 일하시던 어머님이 큼지막한 냄비에 카레를 만들어 놓으시면, 학교에서 돌아와 형과 함께 며칠 내내 먹었던 기억이 머릿속에 액자처럼 걸려있다. 어린아이 두 명이 서로 의지한 시간 때문인지 그때 먹던 카레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일요일 점심.

코로나의 극심한 고통으로  잊혔던 맛있는 냄새가 교회 안을 채우면서 비워져 있던 공간도 사람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목사님 말씀에 경청했겠지만 오랜만에 맡는 정겨운 냄새에 끝날 때까지 집중이 어려웠다.


나 : 자기야 일로와. 우리도 빨리 밥 먹자.

와이프 : 어머~!! 너무 맛있겠다.!! 진짜 너무 배고팠어.

어? 저거 혹시 미역국이야??

나 : 미역국 맞네.

와이프 : 아... 오늘은 조금만 먹으려고 했는데 미역국이면 많이 먹어야겠다.


와이프는 밥을 한차례 담은 식판 위에 미역국을 바라보며 밥을 한 주걱 더 담았다.

'다이어트한다며?'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고 했지만 구태여 벌주를 마실 필요는 없기 때문에

다시 목구멍으로 삼키며 평화라는 실리를 챙겼다.

분명 저 음식을 다 못 먹을 거라는 걸 나는 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 것 먹겠다는데 굳이 말리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와이프는 미역국을 사랑한다.

미끌미끌한 촉감의 미역도 와이프는 보들보들해서 좋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표현이지만 아들을 낳고 3개월 내내 먹던 미역국은 지친 몸을 회복시켜주었고 자식을 나은 기쁨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음이기 때문에 가능한 표현이라고 본다.


주말이 끝나고 새로운 월요일  찾아왔다. 새벽일을 마치고 매일 수십 번씩 생각하는 거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오늘 뭘 먹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국거리용 소고기가 눈에 들어왔다. 어제 미역국을 먹었음에도 추운 날씨에 장을 보러 가기 귀찮은 마음에 와이프에게 오늘 저녁으로 미역국이 괜찮은지 물어봤다.


나 : 자기야 오늘 저녁에 미역국 할까?

와이프 : 미역국 너무 좋지!! 

나 : 어제 먹었는데 괜찮아?

와이프 : 난 미역국만 먹고살 수도 있어! 


배고픔에 잠에서 깬 나는 주방으로 가 큰 냄비에 미역을 넣고 태블릿을 열어 '런닝맨'을 틀었다.

나는 유재석 MC님이 나오는 예능은 꼭 챙겨보는 편이다. 게스트를 챙기고 고정멤버들의 장점을 부각해주는 진행이 좋기도 하지만 프로그램에 임하는 유재석 님의 자세를 존경하기 때문에 항상 예능을 보며 배우고 있다.


중불에 올려둔 냄비 위에 참기름을 두 바퀴 두르고 냉장고에 있던 국거리용 소고기를 볶는다. 소고기 겉면이 살짝 익을 때쯤 미역에 물기를 손으로 꾹 눌러 제거하고 냄비에 넣어 같이 볶아준다. 

볶는 과정에서 나는 5분 이상 충분히 볶아 미역의 겉면을 살짝 태운다. 여러 번 미역국을 해본 결과 그렇게 하면 국물에서 더욱 깊은 맛이 난다는 걸 알았다.



다 볶은 후에 물을 넉넉히 넣어주고 소금 한 꼬집과 국간장 두 스푼을 넣고 다진 마늘 반 스푼을 넣는다 그리고 더욱 감칠맛을 내기 위해 까나리 액젓 반 스푼을 넣고 20분간 국물을 우려내면 완성된다.



밥그릇 한가득 밥을 담고 냉장고에서 깍두기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얼마 전 와이프를 보러 온 처제가 시어머님께서 담그신 거라며 푸익은 깍두기와 덜 익은 깍두기를 가져왔는데 내 스타일인 푹 인은 깍두기를 쵸이스 했다.


밥을 한가득 퍼 입안 가득 채우고 뜨거운 미역국에 델까 조심조심 흡입하였지만 용광로처럼 뜨거운 국물에 입안에서 좌우로 밥알을 뒹굴며 뜨거움을 입 밖으로 분출시켰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진정이 되지 않아 재빠르게 깍두기를 집어넣어 씹었다.

그제야 걸쭉한 국물에서 나오는 미역국의 짭짤함이 느껴졌다. 짭짤함 뿐만 아니라 다진 마늘과 참기름이 어우러져 고소함을 더했고 급하게 집어넣은 푹 익은 깍두기의 시큼함과 매콤함이 혀를 자극시켰다.

맛있다.


밥을 반공기 정도 비웠을 즘 깍두기만으로는 아쉬워 배추김치를 꺼내왔다. 미역국을 먹은 후 배추김치를 먹으니 배추만의 아삭함과 시원함에 더욱 다양한 맛을 선사했다.

이제 국에 밥을 말아먹을 차례이다.

쌀에서 나온 전분으로 더욱 걸쭉해진 미역국은 미역죽을 연상케 했다.

걸쭉해진 국물이 혀 전체를 감싸면서 더욱 감칠맛을 만들어 냈고 김치와 한층 더 어우러진 조합이 되었다.

'어흐~~!!' 몸 안에 건강함이 가득 채워지는 느낌을 받으며 국밥 한 그릇을 다 먹은 아저씨처럼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점심을 먹고 집 정리를 한 후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저녁에 와이프와 아들이 왔고 미역국을 보고 싫어하는 아들과는 반대로 와이프에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이미 내 입으로 검증을 끝마친 미역국을 저녁으로 먹으며 와이프는 행복한 저녁식사를 하였다.  

 


와이프에게 부족한 것은 나에게 있고 나에게 부족한 것은 와이프에게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함께 하는 것을 택했고 미역국처럼 서로를 채워가며 좀 더 걸쭉한 인생을 만들어 가고 있다. 


오늘 하루도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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