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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사이 Nov 23. 2019

가족이 되는 일,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것

영화 <미쓰백>을 보고.

생물학적으로 가족은 태어나보니 있는 존재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가장 큰 상처를 주는, 남보다 못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미쓰백과 지은이에게 생물학적 가족은 그런 존재들이었다.


'세상이 어찌되려고 이러는지.'라는 말이 생각날 만큼 3살, 5살, 10살 때릴 곳도 없는 아이들을 때려 죽이고 있다.  심지어 아동학대의 76% 친부모에 의해 발생한다. 모성애나 부성애라는 것이 아이가 태어나면서 당연히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엄마아빠가 아니라 그냥 어른과 아이, 사람과 사람으로만 대했더라도 그렇게 행동하진 않았을텐데 싶다.


미쓰백은 어린시절 친모로부터 아동학대를 당했고 그러다 버려져 보육원에서 자랐다. 이후 성폭행을 당했지만 가해자가 돈있고 빽있는 집안의 아들이라 정당방위조차 인정받지 못했다. 순탄하고 편한 인생을 살아본 적 없는 그녀의 삶, 그랬기에 더더욱 미쓰백은 지은이를 보며 외면할 수 없던 것 아닐까. 자신의 과거가 생각나서, 그리고 너무도 힘들었던 자신처럼 살아가게 될까봐.


나는 미쓰백이 아니고, 그녀의 삶을 살아보지 않았기에 그녀가 지은이를 어떤 마음으로 봤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녀는 다 버리고 떠나려 했던 자신의 계획을 취소할만큼 지은이가 눈에 밟혔고,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작은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미쓰백"이라고 부르는 것을.


"이런 나라도 같이갈래?"


미쓰백이 지은이에게 묻는다. 아마 "이런 나라도"라는 말은 자신이 겪었던 모든 일들을 말하는 것이겠지. 미쓰백은 끊임없이 고민한다. 지은이에게 물어보거나 자신을 버렸던 친모의 환영을 보면서 "엄마, 이런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까?"라고 묻는 모습을 보면 지은이를 책임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걱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장면에서 미쓰백에게, "그런 사람이라서,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동학대와 같은 일을 겪지 않았어도 지은이의 아픔에 공감하며 아이를 지켜주고 싶은 보호자가 되어주려는 그 마음으로 충분했겠지만, 같은 아픔을 겪었기에 그래서 더 충분하다고.



화 속 이런 장면이 있다.

화장실에 갇혀 지내다보니 화장실에 들어가는 일이 두려운 지은이를 위해, 미쓰백은 자신도 윗 옷을 벗어서 등에 있는 상처를 보여주며 말한다.

미쓰백 : "(상처를 보여주며) 봐. 너나 나나." "나는 무식해서 너한테 가르쳐 줄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어서 줄 것도 없어. 대신 니 옆에 있을게. 지켜줄게."
지은 : "(미쓰백을 안아주며) 나도 지켜줄게요."

어른이 아이를, 그리고 아픔을 겪었던 사람이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을 외면하지 못해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다.


가족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은 어떤 것일까.


누군가의 엄마, 그리고 가족이 되어주고 싶다는 것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곁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아닐까. 갈 곳이 없어서 거리로 내몰리지 않고, 험한 세상을 혼자 살아가지 않도록 함께 있어주고 싶은 그런 마음.


낳았지만 책임지지 않았고, 학대까지 한 부모를 벗어나 서로를 선택한 미쓰백과 지은이는 서로를 지켜주며 함께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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