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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사이 Mar 19. 2020

두려움은 방지턱이 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다'는 다짐이 필요한 이유

처음 글을 쓰며 가장 무서웠던 부분은 '내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쓸 능력이 될까?' 하는 생각두려움이다. 작가의 서랍에는 항상 3~4편의 완성된 글이 있었지만 발행 버튼을 누르지 못해 묵혀두었다. 그러다가 매일 줄을 타는 곡예사의 심정으로 오도가도 못하며 글을 발행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에 지쳤고, 그 지침끝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겠어 라며 한 줄기 합리화를 얹어서 글을 한 편, 한 편 발행하기 시작했다. 꾸준히, 그리고 계속 글을 쓰다보니 나의 글쓰기 실력에 대한 부담은 견딜 수 있을만큼으로 점차 줄어갔다. 그러나 곧 다른 두려움이 생겼다.


나는 '옳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도,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 나의 목표이자 바람이 나의 무지에 대한 두려움을 일게 했다. 내가 모르고, 무심코 쓴 단어나 문장이 누군가의 상처를 건드리진 않았을지 혹은 내 생각의 편협함으로 인해 누군가의 아픔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진 않았는지 걱정하게 되었다.


저렇게 많은 집들 사이에는 집의 수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을텐데. 나는 내 인생만을 살아보았기 때문에, 내가 살아보지 못한 그리고 생각해보지도 못한 누군가의 슬픔이나 아픔을 내 마음대로 표현하게 될까봐 두려워졌다. 그 어떤 고정관념도 편견도 없다면 좋았을텐데.


그러다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산문집의 한 문장을 알게 되었다.

성숙한(계몽된) 인간이 갖고 있는 감수성이란, '젠더 감수성' 이나 '인권 감수성'이라는 개념에서 그 용례를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들을 이해하고 행여 그것에 대한 잘못된 지식/믿음이 '차별'의 근거로 작동할 수 있는 상황을 예방하거나 비판할 줄 아는 민감함을 의미한다. 이런 감수성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나에게 그것이 없다는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와 고통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상시적으로 품고 있다는 것이다. 


한 문장을 더 인용하자면,

'폭력이란? 어떤 사람/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모든 태도.' 더 섬세해질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기를 택하는 순간, 타인에 대한 잠재적/현실적 폭력이 시작된다.


이 두 문장이 두려웠던 나를 위로해주었다.

내가 예민하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라 내가 목표를 향해 올바르게 걸어가고 있기 때문에 두려워했던 것이었음을. 까마득한 과거의 사람들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죽는 사람을 보고 우리가 높은 곳을 무서워하게 된 것처럼, 내가 가지게 된 무지에 대한 두려움은 떨쳐내어야 할 것이 아니라 내가 편협해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방지턱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나의 무지가 폭력으로 변하지 않도록 '나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다'는 생각을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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