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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사이 Jul 13. 2021

화를 내는 사람이 무서울 때

나는 화를 내는 사람을 볼 때면 불안에 시달린다.

나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어도, 나와 전혀 관계없는 문제여도 혹은 모르는 사람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아도 심장은 당장 큰 일이라도 난 것 마냥 달음박질치고, 식은 땀이 이마를 타고 흐르며, 다리는 도망치지도 못하게 얼어버린다.


나에게 화가 이렇게 극도의 불안을 가져오게 만든 일은 나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대가족처럼 보였던 우리 가족은 고부갈등이라는 시한폭탄을 늘상 껴안고 살았다.


할머니와 엄마는 폭력과 싸움 그 어느 사이쯤에서 늘 큰소리가 오고 갔고, 나는 그 모든 상황을 일상으로 보며 폭력을 경험했다. 베셀 반 데어 콜크가 저서 <몸은 기억한다>에서 말한 것처럼 집이 곧 전쟁터가 될 수 있음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배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누군가와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하진 않는다. 다만 화내는 사람을 무서워하고, 나 스스로 화를 내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몸을 낮출 뿐이다.

그러나 나만 몸을 낮춘다고 화를 경험하지 않고 살 수는 없었다. 어디에나 갈등은 있었고 갈등이 깊어지면 화를 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린 시절을 탓하는 일은 이미 했고, 과거때문에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변명은 더이상 하고 싶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저 현재의 나를 위로하는 방법뿐이었다.

내 탓이 아니야.


탓이나 변명에 메이지 않고 그저 불안한 지금의 나를 위로하는 일. 그것만이 지금의 나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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