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장안의 화제다. 드라마를 본 사람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다. 드라마의 개요를 아주 간략하게 말하면, 학교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사람이 19살에 멈춰있는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기 위해 자신의 온 생을 걸어 복수를 하는 이야기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학창시절은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고 친구들과 우정을 쌓아가는 시간들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겨우 목숨만 부지하여 생존해내거나 목숨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시간일 수도 있다. 조금씩 인식이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그 속에서 어떤 권력관계가 만들어지고,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들마저 용납되는지 주의 깊게 개입하지 못하고 있고, 만에 하나의 확률로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리더라도 그 징계의 수위가 솜방망이보다 가벼워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의 징계-봉사활동, 출석 정지, 심리치료, 강제전학 등-를 받는 것으로 끝난다.
생존자가 그 시간을 견뎌내고,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가해자에게 죄에 합당한 처벌이 필요하다. 나에게 죄를 지었지만 그 사람 역시 그 죄의 대가로 합당한 처벌을 받는다는. 어떻게 보면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믿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증거로 말이다.
<더 글로리> 속 주인공 동은에게는 가족도, 학교도, 경찰마저도 동은의 편이 아니었다. 온 몸에, 온 영혼에 피해를 입은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모두 바쳐 복수를 선택한 것은 그녀가 살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폭력의 정도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는 맞거나 돈을 빼앗기는 등 물리적인 폭력은 당하지 않았다.
누구도 나와 이야기하려 하지 않아 교실에서 며칠동안 말 한 마디를 하지 않았고, 먼저 다가가면 괜찮을 거라는 누군가의 말에 먼저 다가갔지만 나에대한 적개심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또 어떤 이들은 1m 남짓한 거리에서 나의 행동과 말투를 따라하며 내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나를 조롱했다. 그 때의 느낌을 표현하면 차가 엄청 많이 다니는 시끄러운 8차선 도로 한 가운데에 혼자 서있는 느낌이었다.
몇 번 용기를 쥐어짜내어 주변 어른들에게 이야기해 볼 생각은 했지만, 돈을 빼앗거나 때린 적은 없었기에 상황을 전혀 모르는 학교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내가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그들이 믿지 않을까봐 무서웠고, 말하더라도 상황이 바뀌지 않거나 오히려 더 큰 보복이 기다리고 있을까 두려웠다. 뇌가 무력감에 잠식된 상태라 다른 학교를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나는 내가 끝나지 않는 이상 내 세상은 이곳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5년이 넘는 기간동안 나의 시간도 17살, 18살, 19살에 머물러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온 생을 걸어 그들에게 복수를 하기보단 내가 처한 상황에서 우선 살아내야 했다. 나의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해도 바깥의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기에 대학생활을 해야했고, 취업을 하고 일을 해야 했다. 그렇게 10년이 흐르고 난 지금에서야 1~2년쯤 전부터 나의 시간이 다시 흐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더이상 진물이 흐르지 않고 딱지가 생겼음을.
그리고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다. 나에게 전부같았던 그 세상은 사실 어항만큼이나 작아서 그 세상을 나와도 아무 일이 생기지 않음을. 아니 오히려 나를 위해서라도 밖으로 나오면 더 넓은 강이나 바다가 있음을 나는 이제 어렴풋이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