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이 무엇인지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
-아들, 아빠 이름이 뭔지 알아?
-알지. 근데 왜 물어?
-왜 묻냐고? 너처럼 초등학교 다니던 때가 생각나서.
-무슨 생각이 났는데?
-옛날에 친구들이 아빠를 놀렸거든.
-왜 놀렸는데?
-이름 때문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성 때문이야.
-성?
-응. 천 씨라고. 천 씨가 상놈의 성이라는 거야. 옛날에는 양반과 상민이 있었던 거 알아?
-응, 알아. 근데 왜 상민이 아니라 상놈의 성이라고 불러?
-옛날에는 상민을 상놈이라고 함부로 불렀어. 그래서 양반의 성이 아니라 상민의 성씨를 가졌다고 아빠 보고 상놈이라고 놀렸어.
-와 속상했겠다.
-아빠 시골이 어딘지 알지?
-거제도잖아.
-그래, 거제도. 아니 거제도 옆에 가조도라는 작은 섬이야. 옛날에 할머니 할아버지랑 고모랑 삼촌이랑 다섯이서 다 같이 버스 타고, 고속버스 타고, 또 버스 타고, 배 타고 가야 했던 곳이지.
-힘들었겠다.
-아니, 참 좋았어. 오가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사촌 형이랑 누나랑 친척 어른들이 우리를 잘 대해 주셨거든.
-어른들한테 친구들이 상민의 성이라고 놀린다고 말해봤어?
-아니. 사실 상민의 성이 아니더라고.
-그걸 어떻게 알았어?
-한 번은 할아버지 방에서 할아버지랑 둘이서 이야기할 때였어. 아마 겨울이었나 봐. 화로에 뭘 구워 먹은 장면이 생각나거든.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까주시다 말고 갑자기 작은 농 구석을 뒤지시더니 족보를 꺼내시는 거야.
-족보? 족보가 뭐야?
-음... 아빠의 아빠를 뭐라고 불러?
-할아버지.
-할아버지한테도 아빠가 있을까? 없을까?
-있겠지.
-그렇게 조상과 자손들을 적어놓은 책이야. 아빠의 할아버지가 그 책을 보여주시더니 우리 조상이 임진왜란 때 이여송이랑 같이 내려온 천만리 장군이라고 하시더라. 기억하고 싶었어. 학교 가서 친구들에게 말해 주려고. 난 너희를 일본으로부터 구하러 온 명나라 장수의 후손이라고.
-그래서 말했어?
-응. 근데 학교 가서 이야기를 했더니 안 믿더라.
-왜 안 믿어?
-증거를 가져와 보라는 거야.
-증거? 족보?
-그래, 족보. 그럼 족보를 가지러 다시 거제도를 다녀와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러다 다음 명절이 되었고 아이들 사이에서 양반과 상놈을 가르는 미성숙한 짓거리의 유행은 사라졌어.
-왜? 아빠가 뭐라고 했어?
-아니. 선생님이 그런 거로 차별하는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거든. 그럼 못 배운 사람이 되는 거라고.
-양반이니 상민이니 따지는 게 사람을 차별한다는 말이야?
-그렇지. 너는 어떻게 생각해?
-선생님 말이 맞다고 생각해.
-시간이 지나고 아빠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만약 학교가 없었다면 나는 어디에서 양반 출신과 상민 출신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걸 배울 수 있었을까?
-그러게. 선생님 덕분에 배웠네.
-만약 지금이 조선시대이고, 내가 상민이라면 학교에 다닐 수 있었을까?
-아니, 그럴 리가 없겠지.
- 양반이니, 상놈이니 하며 친구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걸 처음 배운 곳이 어디였어?
- 학교.
- 그래, 바로 학교였다는 걸 기억해야 해. 친구들이 아니었으면 성씨로 양반과 상민을 구별하는지도 몰랐을 테고, 학교가 아니었으면 양반과 상민을 차별하는 것이 사람답지 못하다는 것을 배우지 못했을지도 모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