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집중력과 작업기억. 그리고 스트레스 호르몬
예전에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낼까 하는 이야기를 아내와 나눈 적이 있었다. 영어를 한 살이라도 빨리 접하게 하는 것이 아이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는 많은 부모들이 있다. 그들의 선택이 아이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부모의 자기 불안에서 기인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부모의 불안으로 이뤄지는 조기교육의 문제와 부모가 기대하는 내 아이의 Resilience를 주제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조기교육. 아이들의 평균 발달 시기보다 이른 시기에 학습을 가르치는 것
학습을 가르친다는 것은 배울 내용의 선택권이 학생이 아닌 교사에 있다는 것이며, 이는 아이의 자율성을 제한한다. 특히 정서적 자기조절 능력이 부족한 유아기 아이들에게 인지적 학습을 시키는 행위는 모든 학생의 내면에 갖고 있는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본능(자율성-self determination- theory 참조)'을 제한하므로 부적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를 촉진한다.
이러한 코르티솔 호르몬의 분비는 학습과 관련된 부위인 전전두엽 피질을 키우려는 조기교육의 목적에 반대로, 오히려 편도체를 부정적으로 자극한다. 코르티솔 호르몬의 지나친 분비는 편도체를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드므로 전전두엽 피질은 이를 통제하지 못하고, 결국 정서조절이 자꾸만 불능 상태로 빠지고 만다. 이렇게 실패한 정서조절 경험의 누적은 정서조절 관련 뉴런들의 미엘린화(능숙한 정서조절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뇌신경작용)을 방해한다.(데이비드 월시의 '10대들의 사생활' 참조)
아이들은 야외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아야 한다. 특히 자연을 가까이하는 것이 좋다. 왜 그럴까?
아이들은 어른에 비해 감각이 예민하다. 예를 들면 힘을 강하게 써야 할 때와 약하게 써야 할 때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고, 시각을 활용하는 것이 좋은지 청각을 쓰는 것이 나은지 아직 몸으로 인식하여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감각이 예민하다는 것은 변화에 대한 반응을 의미한다. 이 말에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변화에 대한 반응은 주위 환경을 의미한다. 그럼 잠깐 변화에 대한 반응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것이 힘들다. 왜 그럴까?
아이의 주의를 끄는 물건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아이들의 주의를 끄는 사물이 없을까? 앞서 아이들은 변화에 대한 감각이 예민하여 이에 잘 반응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집안에 있는 사물은 전부 고정되어 있는 사물이다. 다시 말해 생명체가 아닌 것이다. TV, 컴퓨터와 같은 가전, 가구, 장난감등은 전부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변화하지 않는 사물에 대한 '주의'를 '지속'하지 못한다. 장난감을 사주면 금세 싫증을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밖으로 나가면 눈에 보이는 많은 사물이 움직인다. 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아이들의 주의를 끈다. 그런데 도시에 있는 많은 사물은 변화하지 않거나, 명멸을 반복한다. 그러나 자연에 가면 다르다. 대다수의 사물이 조금씩 천천히 변화하고 있으며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우리가 자주 가는 산이나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계속해서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 않은가. 아이들은 이렇듯 천천히 제자리를 지키며 변화하는 생명의 움직임에 반응한다.
이러한 생명의 움직임에 아이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이의 자율성을 높여준다.
아이 스스로의 반응이기 때문이다. 캠핑을 가거나 혹은 자연 속에 들어가서도 아이들이 장난감 없이 잘 노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아이들은 능동적 주의력이 높아진다. 주의를 끄는 사물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능동적 주의력이라면 이에 반대되는 것이 바로 수동적 주의력이다. 부모가 사주는 장난감, TV나 컴퓨터를 통해 제공되는 영상에 빠져 사는 아이들은 타인이 제공하는 사물에 주의력이 주로 반응하는 것이 익숙해져서 학령기에 들어가면 자연에 가서도 더 이상 반응을 하지 않는다.
다시 조기교육으로 돌아가 보자.
발달에 비해 이른 시기에 이뤄지는 교육은 아이의 유능감을 제한한다.
이는 비고츠키의 근접 발달영역에 반한다. 자신의 발달 시기에 할 수 없는 과제를 부여받으면 아이들은 실패와 좌절을 '주로' 맛보게 되고, 이는 아이의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낮아진 유능성은 이후의 동기부여 과정에도 매우 부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나는 할 수 없다.'는 무기력이 뿌리 깊게 자리하기 때문이다.
지능에는 학습에 의해 축적되는 결정 지능과 작업기억, 주의 조절, 억제 조절 능력과 관련이 있는 유동 지능으로 나뉜다.(리처드 니스벳의 '무엇이 지능을 깨우는가' 참조) 결정 지능은 평생에 걸쳐 누적되므로 삶의 지혜로 활용된다.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어른들에게 여쭤보면 자신의 과거 경험을 이야기해주는데 이 이야기의 바탕이 바로 결정 지능이다. 반대로 유동 지능은 십 대 후반을 절정으로 서서히 낮아지는데, 예를 들면 나이 들어 책을 읽으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한 번 들어서는 잘 기억할 수 없는 것은 작업기억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또 젊은 사람들은 설명서를 보고 금방 이해하고 과제를 해결하는 반면에 나이가 들수록 직접 보여주거나 같이 하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는 주의 조절 억제 조절 능력의 부족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유동 지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부위가 바로 해마다. 해마는 기억, 학습, 동기와 관련이 깊다. 조기교육은 발달에 비해 이른 시기에 이뤄지는 인지적 교육인데, 이는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의 분비를 높이므로 해마를 위축시킨다. 이 호르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인지적 교육을 거부하는 현상(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등교 거부하는 등의 행동)이 일어나는데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아이의 해마를 공격하는 유치원에 보내야 하므로 부모로부터 확장되어야 할 아이의 관계성이 무너진다.
IQ와 학업성취의 상관계수가. 32이고 자제력과 학업성취와의 상관계수가. 67이다. 그렇다면 아이의 자제력 다시 말해 자기조절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어야 한다. 자기조절 능력을 키우는 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조기교육이다. Masten과 Reed가 말한 Resilience의 보호요인 중 개인 내적 요인이 있다. 그 개인 내적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정서적 자기조절이다. 정서적 자기조절을 잘하는 아이들이 역경이나 시련을 잘 이겨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이 이른 시기에 아이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키우겠다는 목적 아래 조기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미명 아래.
그러나 조기교육은 아이가 가진 근본적인 Resilience 보호요인을 망가뜨릴 수 있다.
아이 스스로 학습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을 침해하고, 발달에 맞지 않는 학습으로 유능성을 해치게 되며, 아이 스스로의 성장을 방해하는 과정을 강요하는 부모로부터 관계성을 공격받기 때문에 아이가 가진 자존감이 훼손되고, 이로 인해 모든 일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더구나 이 과정 속에 아이의 해마는 위축되거나 성장을 멈추고,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높은 수치로 지속적으로 분비되어 아이의 면역력까지 떨어뜨린다. 그래서 자주 아프거나, 알레르기성 질환에 쉽게 노출되고, 다시 이는 학습과 관련된 주의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내 아이를 위한 교육을 하고 싶다면... 많은 돈을 들여 조기교육을 하기보다는 함께 시간을 나누고, 자연 속에 여러 친구들과 같이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하는 영어 유치원 따위에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덧글.
여기서의 아이들이란 주로 유, 초등(저학년)을 뜻합니다.
관련기사 둘.
1.
2.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872909&memberNo=10234477&vType=VERTICAL